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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료(20251220)

by 장완주

오늘 논문자격시험을 보았다. 이제 정말 '토요일에 학교 가기'는 끝이 났다. 지난 주에 종강회식을 하면서도 실감이 안 나길래 오늘 시험이 남아있어서 그런가보다 했었다. 그런데 시험이 끝나고도 무슨 마음인지 잘 모르겠다. 오히려 딸은 토요일 낮에 엄마랑 같이 밥 먹는 게 어색하다고 했다. "엄마는 어제 밤을 꼬박 새고 졸려서 그럴 거"라며 웃었다. 사실... 딸이 그렇게 얘기를 해서야 뒤늦게 생각했다. 아 맞다... 종강이지.


집에 와서 잠을 좀 자고 저녁에는 딸의 과외 교재를 사러 교보문고에 다녀왔다. 임윤찬의 CD를 세 개 샀다. 딸과 말다툼을 했고, 집에 와서 빨래를 돌렸다. 딸은 내가 상처주는 말을 했다며 듣는 사람이 무슨 마음일지 왜 모르냐고 쏘아붙였다. 내 마음도 모르겠는데... 그냥... 아직도 졸려서 그런 거라고 웃어주면 안 되나... 토요일에 집에 있는 거... 진짜 별로다.


2025년 마지막 주인 다음 토요일은 밀린 아들 면회를 가고, 2026년부터는 토요일이 정말로 아무 날이 된다 . 빨리 뭔가 채워야겠다는 강박이 생긴다. 주중에는 직장에, 주일에는 교회에, 내가 어딘가 묶여있는 것이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일이다. 그동안의 평화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노트북을 펼쳤다. 유튜브에서 임윤찬의 사계를 듣는다. CD를 샀는데 플레이어는 없어서 말이다. 사계를 들으며 나도 지난 두 번의 봄여름가을겨울을 되짚어본다. 앞으로 돌아올 새로운 사계도 떠올려본다. 학교에 가지 않는 토요일, 논문을 쓰지 않는 밤을 어거지로 상상한다. 감정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책을 더 읽을 지도 모른다. 수전 손택의 책들을 읽고 싶다.

운동을 할 지도 모른다. 이제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으니까.

글을 쓸 지도 모른다. 어, 벌써 쓰고 있노.

무슨 소리냐, 학워논문 써야지.


실감이 안 나는 게 아니라 수료가 싫었던가보다. 첫 학기의 첫 논문 과제는 교수님의 한숨을 받고, 지난 11월에 냈던 마지막 논문은 학회에서 상을 받았으니 썩 잘 버틴 2년이었다만, 좀더 들볶이고, 질투하고, 복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제미나이와 투닥거리고, 교수님의 빨간 글씨 메모를 받으면서 말이다. 남들이 들으면 '그냥 하면 되지 않냐'고 하겠지만... 나는 나를 잘 안다. 부끄럽지만... 스스로 동기부여가 잘 안 되는 나를, 누군가에게 들볶이고 누군가를 질투하는 것이 가장 큰 동력인 나를 말이다.


내일 예배때 졸지 않으려면 빨리 자야 하는데 밤 늦게까지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만 반복하고 있다. 기말과제 때문에 밤을 샐 거라던 딸의 방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난다.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수료라니, 진짜... 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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