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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킨파크, from zero

by 장완주

2017년 7월, 체스터가 죽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댓글에 누군가가 ‘듣보’라고 적어 놓았던 그는 나에게 ‘모든 것’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어떤 면에서는 가족이나 친구보다도 말이다. 단지 좋아하는 록스타라고만 표현할 수가 없다. 그는 내가 울고 싶을 때, 내가 죽고 싶을 때 곁을 지켜주었다.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무거운 영혼, 모두가 외면하고 싶어하는 흉한 상처를 지겨워하지 않고 품어준 것은 린킨파크, 체스터 베닝턴이었다.


‘체스터도 저렇게 살고 있는데, 나도 힘을 내야지.’

‘체스터가 하고 있으니까 나도 할 수 있을 거야.’

‘아무도 몰라도 괜찮아. 체스터는... 내가 모르는 내 마음도 알고 있어.’


지하철로 편도 두 시간이 넘는 장거리를 출퇴근하던 때, 아침에는 로스트로포비치의 바흐 무반주 첼로 조곡을, 저녁에는 린킨파크를 들었다. 내 모든 저녁의 BGM이었다. 수시로 들락거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도 늘 체스터가 같이 있었다. 무의미한 응원이 아니라 같은 심연을 겪어본 사람이 내미는 메마른 손이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은 내게 너무 잔인했다. 아버지가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날, 살기 위해서 해마다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애를 쓰는 그 날 그도 자살했다. 눈에서 물줄기가 쉬지 않고 흘렀다. 얄팍한 문학적 표현이 아니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데 눈물만 주룩주룩, 오히려 웃을 수도 있겠다 싶은 이상한 눈물이었다.


카톡 프사를 린킨파크의 앨범 재킷에서 체스터의 사진으로 바꾸었다. 아버지의 영정사진은 묵은 짐 안에 꽁꽁 감췄는데 말이다.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일까봐(있긴 하지만) 아버지의 사진은 프사에 걸 수 없었으나 체스터는 괜찮을 것 같았다. 어차피 ‘듣보’라서 아무도 신경 안 쓸 거고, 혹시라도 그를 아는 사람은 팬인가보다 하고 말겠지. 나는 체스터 뒤에 아버지를 숨겨두었다.


서너 번 추하게 운 적이 있다. 이 새끼가 나만 놔두고 갔어. 그럼 다 거짓말이잖아. 살 수 있다고 해서 살았는데, 옆에 있어준다고 해서 버텼는데, 가버렸어! 그때는 감정과 괴리된 눈물이 아니라 정말로 울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공부하다가 iridescent 쯤에서 찔찔 짜고 있었는데 딸이 봐버렸다. “그만 해, 지겨워.” 그 말이 아버지가 아닌 체스터를 향한 것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2017년 이후 린킨파크는 활동하지 않았다. 다행스럽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다. 보고 싶기도 하고, 볼 까봐 두렵기도 했다. 유튜브에서 최신 클립을 찾아볼 때도 있었다. 뭔가가 나오면 마음이 덜컥, 하는데 대부분은 트리뷰트이거나 옛 음원이나 영상을 새롭게 만든 것들이었다. 몇 년 전에 마이크 시노다가 단독으로 무대에서 노래하는 영상이 떴다. 눈을 감고 one more light를 부르는 그의 얼굴에 그리움이 가득했다. 청중들이 체스터의 이름을 불렀다. 마이크는 눈을 감은 채 감사인사를 했다. ‘체스터의 이름을 불러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새로운 린킨파크를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2024년, 체스터가 간 후로 7년이 흘렀다. 간간히 린킨파크 멤버들의 소소한 티키타카 영상이 올라왔다. 다들 조금 나이가 들었고 조금 변해 보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처럼 그립고 반가웠다. 마이크가 작업하는 영상도 올라왔다. 새 앨범이 나왔다. 에밀리 암스트롱... 여성 보컬이 합류했다. 노래를 들어보았다. 나쁘지 않았다. “엄마, 린킨파크 내한 온대요. 예매 해드려요?” 아들이 물었다. 망설였다. 가지 않기로 했다.


마이크 시노다는 길고 충분한 시간을 나에게 주었다. 쫓기듯 숨차게 서둘러 끝내야 했던 아버지의 애도와는 달랐다. 밴드에게 7년의 쉼은 얼마나 긴 시간일까. 그 사이에 롭(드러머)은 밴드를 떠났다. 친구의 죽음과 탈퇴를 견디며, 마이크는 서두르지 않았다. 기나긴 시간을 같이 버려주었다. 함께 잃은 사람들만이 함께 가질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린킨파크의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는 내 마음은 진심이다. 어디서 체스터 판박이를 데려오지 않은 것도 고맙다. 그들은 체스터의 자리를 대체하거나 지우지 않기로 한 것이다. 나는 에밀리의 목소리에서 체스터의 흔적을 찾지 않아도 된다. 에밀리는 과거의 노래들을 부르겠지만, 그건 이제 에밀리의 노래, 새로운 린킨파크의 노래이다. 새 앨범의 제목은 from zero, ‘無로부터’이다.


나는 체스터와 다른 길을 가기로 했다. 살아서 체스터의 faint를, 체스터의 numb을, 체스터의 in the end를 들을 것이다. 그것은 노래가 아니라 그 자신이고, 내가 기댔던 것은 노래가 아닌 그의 아픔과 슬픔과 애씀과 갈망과 위로였다. 린킨파크는 노래에 실존을 투영하는 밴드다. 하여 에밀리는 새로운 노래를 부를 것이다. 그것이 에밀리의 마음, 에밀리 자체이기를, 린킨파크의 또 다른 진심이기를 바란다. 그게 나의 마음이 아니라도 괜찮다. 이제 괜찮다. Move on, we've gone through good mourning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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