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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서 고생은

by 장완주

큰 아이가 롯데리아에서 처음 일하기 시작한 것은 열여섯 살, 중 3 나이였다. 선전포고하듯 내민 미성년자 근로 동의서를 써주었더랬다. 올해 스물세 살이니까 햇수로는 8년, 수능을 준비하던 2년 정도를 빼면 6년 가까이 한 곳에서 일하고 있다. 워낙 유동인구가 많은 위치라서 우리 시에서 가장 바쁜 매장이고, 단체주문도 많이 들어오는 곳이다. 딸은 매 학기마다 월요일이나 금요일 공강을 사수하고 주말을 낀 최소 3, 4일은 집에 내려와 종일 일한다. 학교와 알바를 병행하며 일주일에 하루도 쉴 날이 없다. 시험기간, 혹은 가끔 한 번씩 주말에 뮤지컬이나 야구를 보러 가는 날은 미리 시프트를 빼기도 하지만, 어린 시절에 부모의 몰락을 몸으로 겪은 탓인지 거의 쉬지 않는다. 말로는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 그래서 딸은 주중에 끼어있는 공휴일에나 부담 없이 쉴 수 있다.


학교 근처에서 알바를 구해보라고 했지만, 오히려 거긴 대학생들이 많아 더 경쟁이 치열단다. 게다가 여긴 오래 일했기 때문에 딸의 일정을 고려해서 주말에 고정으로 시프트를 짜주는데, 낯선 곳에서 그런 배려를 받긴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말 알바를 하는 거라면 차라리 엄마 집에 와서 걸어 다니는 거리로 다니는 것이 낫다며 주중 수업이 끝나면 세 시간 가까이 전철을 타고 집으로 온다.


"그리고 내가 거기서 주말에 일하면 엄마를 볼 수도 없잖아. 엄마도 주말에 학교 가고 출근하는데..."


딸은 이번 학기에 목요일 밤에 내려왔다가 월요일 밤에 올라간다. 나는 최대한 스케줄을 조정해서 아이를 라이드하고 먹을 것을 챙긴다. 이제 둘째 녀석도 누나가 일하는 롯데리아에 합류했다. 금요일 저녁부터는 두 아이가 모두 집에서 주말을 보낸다. 데려다 달라고 하지도 않고, 걸어갈 만한 거리이긴 하지만, 나는 굳이 롯데리아 앞까지 데려다주고 출근을 한다. 간혹 내게 주말에 밥 먹자고 하는 언니들에게 "애들 밥 챙겨야 돼요."라고 대답하면 당연하게 중고등학생 자녀가 있는가 보다 짐작들을 하다가 그 '애들'이 스무 살이 넘은 것을 알면 내가 마치 금쪽이 엄마라도 되는 양 눈을 흘기기도 한다.


"아유, 다 큰 어른인데 제 밥 하나 못 챙겨 먹을까 봐?"

"그게 아니라 종일 서서 일하고 진이 빠져서 오는데 미안해서 그래요."

"하긴... 에이, 아니야.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잖아."


나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 하는 말이겠지만, 그걸 넙죽 받을 만큼 나는 당당하지 못하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을, 고생하는 당사자가 스스로를 다독이느라 할 수는 있을지언정, 그 고생에 책임 있는 사람이 하는 건 안 될 일이다. 그저 덜 힘들기를, 아프지 않고, 다치치 않기만을 바랄 뿐.


얼마 전에는 주중에 휴일이 끼어있길래 모처럼 내가 서울로 올라갔다. 사나흘마다 한 번씩 체해서 밤잠을 설치는 아들을 데리고 선배네 한의원에 가서 약을 짓고,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런데 저녁 무렵 딸이 갑자기 복통이 심해지더니 계속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구토를 했다. 아픈 아이를 혼자 버스에 태워 할머니댁으로 보내고, 아들은 학교 기숙사로, 나는 집으로 다시 세 식구가 뿔뿔이 흩어졌는데 마음이 온전했을 리 없다. 그 와중에 딸은 "나 한 번도 이러지 않았는데 하필 오늘 탈이 났네. 엄마가 비싼 거 사줬는데... 미안해. 걱정 마." 한다.


다음날 한의원에서 전화가 왔다. 안 받겠다는 약값을 접수대 간호사 선생님에게 억지로 떠넘기고 왔더랬다. 선배는 웃음과 결기를 적절히 섞어놓은 느리고 차분한 말투로, "요새 공무원 돈 많이 버나봐?"라며 농을 치더니 벌써 약을 지어서 아침에 아들 기숙사에 택배로 보냈다고 알려주었다. 내가 다녀간 후 바로 약을 달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나이도 어린 녀석이 왜 이렇게 속을 다 버렸냐."

"... 네?"


진맥을 해보니 속에 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렇다는 얘기다. 선배는, 철없던 젊은 시절부터 알고 지낸 지가 30년이 다 되어가는 허물없는 사이이다. 말을 돌려하는 성격이 아닌 것도 잘 안다. 나는 아이들의 요즘 스케줄을 대충 얘기해 주며 다 엄마 잘못 만난 탓이리고 했다. 생활의 궁핍을 변명하는 옹색함으로 차마 말을 맺지 못하자 선배도 내 마침표를 잠시 기다리는 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음...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또 그 얘긴가 싶었을 때 이어진 말은 이랬다.


"완주야,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들 그러지만, 그거 다 젊은 애들 착취하려고 지어낸 얘기야. 젊을 때 고생하면 나중에 골병들어. 알바는 경험 삼아하는 거지, 이렇게 몸이 축날 정도로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러는 선배도 몸 사리지 않는 일 중독자이다. 20여 년 전에 한의원을 개원한 후로 명절에도 찾아오는 어르신 환자들이 있다며 365일 진료를 쉬지 않았다.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은 간호사 없이 혼자서 진료를 하고, 요새 명절 당일엔 쉬는 모양이지만 그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휴일에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예전 한의원에는 아예 진료실 뒤편에 따로 살림공간이 있어서 약을 다리느라 24시간 한의원에서 지내는 날도 많았다.


고생은...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안쓰럽지 않고 미안하지 않은 고생, 타인을 자유롭게 성장시킬 양분이 되는 고생. 나를 이모라 부르는 선배의 두 아들들은 그런 아버지 덕분에 일과 삶이 서로 다투지 않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아버지의 인생을 닮아갈 것이다. 선배는 아버지의 고생에 동참하거나 보상하지 않아도 되는 독립적이고 낙천적인 청년들로 자식들을 키웠다. 생계가 막막해서 최저시급에 몸을 내던지는 내 아이들의 청춘은, 그런 선배가 보기엔 미래를 허물어 지금을 버티는 위험한 소모였던 것이다. "지금은 알바보다는 더 나은 경험을 쌓는 데에 시간을 써야 될 때가 아니냐..." 선배는 약 잘 챙겨 먹으라는 당부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통화하느라 사무실에서 잠깐 나왔었는데, 한동안 사무실로 돌아가지 못했다. 복도에서 한참을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젊어서 고생하면 골병이 든다는 말은 그저 오지랖 넓은 꼰대 선배의 잔소리만은 아닐 것이다. 한의사로서 하는 얘기겠지. 구내염과 복통을 달고 사는 비쩍 마른 아들과, 롯데리아에서 퇴근하자마자 과외를 하러 가느라 내 차 안에서 허겁지겁 허기를 때우는 딸을 떠올렸다. 모처럼 비싼 초밥 먹었다가 뒤집어진 속은 좀 가라앉았을까... 문득 얼마 전에 딸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누구는 신문사 인턴시험 때문에 휴학을 했고, 누구는 교환학생을 준비하고 있고, 누구는 이제 로스쿨 진학을 목표로 학원을 다닌다고 했다. "나도 시간이 좀 있었으면... 근데 나는 시간도 내돈내산 해야 돼." 했었다.


정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라이드뿐일까... 아무리 고민해도 6년 차 공무원인 나에게는 무엇 하나 허락되는 옵션이 없다. 무력감에 지친다. 어제는 딸을 과외 장소에 데려다주면서 그 앞에 있는 롯데리아(또!)에 들어가 새로 나온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주었다.


"나 오늘도 이거 60개쯤 만든 거 같아. 맛있네."

"처음 먹어 봐?"

"응."

"급하게 먹지 마, 속병 나은 지 며칠 되지도 않았잖아."


딸은 아이스크림을 다 먹자마자 테이블에 거의 눕다시피 허물어졌다. 어제 오늘 진짜 개 바빴어, 하며... 평소에는 나를 보자마자 그날의 진상 손님 썰을 한두서너대예닐곱 개쯤 격하게 토로하는데 그럴 힘도 없어 보였다. 무력감에, 죄책감에, 서글픔에...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아이의 볼을 감쌌다. 보드랍고 귀여운 볼살을 자꾸 쓰다듬었다.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는지 딸이 말했다, 나 아기 때로 돌아가고 싶어.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 젊어서의 고생으로 지금의 너에게 시간을 줄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그 고생은 기꺼이 사서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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