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생존일기

아파도 어른이 되도록

by 장완주

마흔 즈음에 세 번째 석사 과정을 시도하면서 한 학기를 다녔던 학교에서 대학 동창 Y를 우연히 재회했었다. 학부 때는 그와 거의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다. 대학 4년 간 친하게 지낼 그룹이 형성되는 1학년 1학기를 완전히 겉돌았던 나는 어느 그룹에도 속하지 않는 아웃사이더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Y는 만난 적이 없었고, 아주 가끔 건너건너 소식을 들었던 것이 전부였다.


뜻밖에 대학원을 함께 다니게 되자 꽤 친해졌고, 내가 PTSD 진단을 받아 치료를 시작하고 대학원을 그만둔 후에도 Y는 종종 내게 연락을 주었다. 당시에는 새로운 사람들과 지인 이상의 친밀한 유대로 넘어갈 때, 나의 이상한 성향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오해나 갈등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하는 차원에서 아버지의 사건과 나의 심리적 불안정을 이야기하곤 했다. 강박에 가까운 의무감이었다. “일종의 개조심 표지판 같은 거야.” 나는 자조하며 Y에게 말했다.


Y는 처음 내 얘기를 들었을 때 울었다. 강남역 지하 환승구역의 우동집에서 같이 점심을 먹으며 대학을 졸업한 후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압축해서 업데이트할 때였다. 냅킨으로 눈물을 닦으며 “어떻게 버텼냐”고 한숨을 쉬었다. 나는 새로운 ‘친구’들의 눈물에서 적쟎게 위로를 받곤 했었다.


그러나 Y는 사실 나에게 위로보다는 쓴소리를 훨씬 많이 해준 친구이다. 나같은 불쌍한 사람에게 아무도 쉽게 하지 못하는 소금같은 말들을 참 조심성 없이 막 뿌린다. 나는 Y가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나에게 안부 카톡을 보낼까… 마지못해 보내는 건데 내가 눈치 없이 답장을 하는 건가? 나를 떠났던 다른 친구들처럼.


”굳이 그런 얘기를 계속 할 필요가 없어.“


수원역 부근에서 만나 카페에서 당근케이크를 먹다가 Y가 나에게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아마도 아버지 이야기를 또 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아버지의 죽음으로 결혼 초반부터 켜켜이 쌓인 남편에 대한 분노와 상처, 억울함에 대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내가 아프다는데, Y는 큰 눈을 더 크게 뜨고 나에게 ‘그 이야기를 남들한테 해서 니가 좋을 게 없다‘고 했다. 그러더니 예의 그 심드렁한 표정으로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움찔했다. 왜 내가 이런 말을 들어야 하나, 나는 피해자인데. 역시 사람들로부터 이해받는 데에는 한계가 있구나...


Y와 헤어져 집에 올 때도, 밤에 자려고 누웠을 때도,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계속 그 말이 생각났다. 굳이 할 필요가 없다... 좋을 게 없다... 말은 자꾸 가지를 쳤다. 굳이 이해받을 필요가 없어, 굳이 친해질 필요가 없어, 굳이 불쌍하게 보일 필요가 없어, 굳이 상처만 쳐다볼 필요가 없어, 굳이 그들을 비난할 필요가 없어, 굳이 이런 대화로 시간을 버릴 필요가 없어... Y의 말은 한 글자로, "뚝!"이었다. 넘어져서 정강이를 깨먹고 주저앉아 엉엉 울다가 어른에게서 "뚝 그쳐!"를 들은 아이처럼 서러웠다.


그러나 그것은 아이가 어른이 되는 순간이다. 마음 속에 서러움과 하소연을 가두고, 터져나오는 울음을 막느라 가슴이 아프도록 숨을 참는 그때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나는 새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습관처럼 하던 고해성사를 멈췄다. 쉽지 않았고, 오랜 시간이 걸렸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도 나는 나의 트라우마에 도취되어 있었다. Y의 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저앉아 속울음을 끅끅거리고 있던 그 고집스런 아이가 이제 상처에서 눈을 들고 땅에서 겨우 엉덩이를 떼고 있다. '뚝 그친 아이'를 보았기 때문이다. Y가 뚝 그치라고 나무라 주었다면 E 주사님은 그걸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었다.


올 초에 옮긴 부서에서 만난 E 주사님은 40대 중반인데, 큰 수술을 세 번 받았다. 자기 생계를 오롯이 책임져야 하는지라 휴직을 계속할 수가 없었고, 조금 배려를 받아 지자체의 별도 조직인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텐데, 여전히 먹을 때마다 쉽게 체하고, 조금만 운동을 하면 발목뼈에 무리가 간다. 거의 끼니마다 소화제를 먹는 것같다. 세상이 억까한다고 여길 법하다. 그러나 그는 굳이 자신의 이야기를 우리지 않는다.


그는 뚝 그치고 일어나 있었다. 자신을 비련의 주인공으로 만들지 않았다. 남들의 호기심을 채워주지 않았다. 올해 다른 이유로 수술대에 오르면서도 예전의 일들을 이어붙이지 않았다. 수술 잘 됐대요? 하고 물으니 유착이 생각보다 심해서 대장을 꽤 절제했다고 배가 많이 따끔거린다 했다. 나는 더 들어줄 준비가 돼 있었는데, 그런 나를 고마워하면서도 저 괜찮아요, 하며 씩 웃어버린다. 그리고 끝내 제 몫을 한다. 물론 E 주사님도 이곳에서 많은 배려를 받았다. 하지만 그가 겪었던 고통을 동정해서가 아니라, 자기 몫을 해내려는 그의 열심에 내미는 손길들이었다. 넘어져서 크게 다친 아이가 일어나보려고 애를 쓰니까 붙잡아주고, 의자에 앉혀주는 선한 마음들이었다.


나는 그를 통해 그때 Y의 말로부터 자라났던 모든 가지에 달린 쓰디쓴 열매들을 보았다. 맞다, 굳이 주변 사람들에게 이해받을 필요가 없다. 되돌아보니, 내가 아버지의 이야기를 한 것이 정말 관계를 진정성있게 시작하고자 했던 순수한 의도였더라면 그 이야기는 한 번만 했어야 했다. 부끄럽지만 그러지 않았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우연히도' 방아쇠를 당기는 사건이 생겼고, '사실은...'으로 시작되는 레퍼토리를 반복할 기회를 얻었다. 다시 그들의 위로를 얻고나면 나는 트라우마 뒤에 숨어서 내 취약함과 미숙함을 이해받았다. 어린아이였다.


다친 사람이 더 열심히 살아야 하고, 주변 사람들을 더 배려해야 한다는 글로 읽힐까봐 조심스럽다. 다친 사람에게 '뚝 그쳐!'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따끔하게 나를 나무라준 Y를 여전히 좋아하고 고마워하지만, 정말 나를 일으켜세운 것은 E 주사님이었다. 먼저 일어선 그가 있었기에 나도 무릎에 힘을 줄 수 있었다. 인사발령으로 오늘 마지막 인사를 하게 될 그를 생각하며, 어제 이 글을 썼다. 나를 일으켜주어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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