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공무원의 1년 생활

by 장완주

어릴 때 공무원이 되었더라면 알지 못했을 것들인데, 자식뻘 되는 동기들과 입직하고 보니 새삼 공무원의 손이 미치지 않는 세상사가 없다. 특히나 지방직 공무원은 휴일 노가다 만랩이다.


봄에는 산불경계근무를 한다. 기후가 건조해서 불이 나기도 쉽고 번지기도 쉽다. 행여 산불이라도 나면 진짜 전투 개시다. 산불을 끄는 데 동원되는 것은 소방관만이 아니다. 의용소방대라고, 동네에서 의협심 깨나 있는 중장년이 꽉 잡고 있는 조직이 투입되며, 인해전술로 몰려가는 건 역시 공무원이다. 작년에 우리 동네에서 꽤 큰 산불이 났는데 시 직원들이 교대로 산에 올라가 소방헬기에서 쏟아내는 물을 맞으며 잔불을 발로 밟아 껐다.


이어서 화접 농활이 있다. 과수원에 가서 꽃을 솎아내고 인공적으로 수정을 시키는 인간 꿀벌이 된다. 모내기 안 하는 게 다행이랄까. 아, 예전에는 했다고 들었다. 선배 주사님들의 ‘라떼는 말이야’를 들어보면 정말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무용담이 즐비하다. 지금은 기계가 사람보다 빨라져서 사람 손이 필요치 않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화접도 곧 그렇게 될까? 드론(drone, 수벌)이 정말 벌의 임무를 할 수 있는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바란다.

여름부터 가을까지는 태풍과 홍수를 대비해 비상근무 조를 짠다. 강우량에 따라 소집되는 직원 비율이 달라진다. 요즘은 강풍 때문에도 불려 나간다. 역시 작년의 일인데 강풍 때문에 전 직원이 토요일에 출근해서 종일 청사에서 대기하고, 감사실은 실제 출근한 직원들 명단을 체크하러 돌아다녔다. 정작 직원들은 출근하다 사고 나고, 주차한 차가 강풍에 쓰러진 나무에 파손되고 손해가 상당했는데 그런 건 전문용어로 노카운트, 공무원의 재산상 손해는 공식적으론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을엔 비상근무에 더해서 농산물 수확철이라 또 과수원이나 밭에 나간다. 때로는 주중에도 동원된다. 고구마를 캐러 한번 나가본 적이 있는데 새마을 부녀회 회장님이 막걸리를 준비해 주셨더랬다. 일 시작하기도 전에 낮술을 먹고 취해서 광란의 호미질을 했던 기억이 난다.


겨울은 농한기라 별일이 없나 싶지만 가축 전염병이 유행하는 시기라서 차량 방역 초소 근무와 폭설 비상근무가 있다.


그밖에도 공무원 시험 감독관 근무가 매년 두 번쯤 있고, 선거철엔 공보물 발송 작업, 투표사무, 개표 사무가 있다. 부서에서 특별근무가 특정인에게 몰리지 않도록 순번을 정해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자원자를 우선 투입하긴 한다. 아무래도 당직 같은 일상적인 휴일근무까지 포함한다면 휴일에 소집되는 비율은 일반적인 직종의 사기업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근무 첫 해, 연간 스케줄이 이렇다는 걸 미리 알려주는 이도 없었다. 주변에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이도 많지도 않아서 아무 사전 정보가 없었는데 예고도 없이 훅훅 치고 들어오는 새로운 명목의 이런 휴일 근무들은 ‘또? 헐... 또?’ 이런 느낌이었다. 이제 해를 두 번 넘기고 나니 어느 정도 예측이 되어 그러려니 한다. ‘어차피 맞을 매’라 생각하며 나름 골라서 손을 들어 자원하기도 한다. 별도의 수당이나 대체휴무도 없이 그야말로 ‘까라면 깠던’ 라떼 선배들에 비하면 지금의 휴일근무 여건이 많이 개선된 것에 다행스럽기도 하다.


금년 봄에는 코로나 사태로 비상근무가 몇 가지 더 추가되었다. 비상대기뿐만 아니라 일요일에 종교시설의 집회 여부를 확인하고, 매일 자가 격리자를 일대일로 관리하는 것도 공무원의 몫이다. 최일선인 읍면동사무소는 조만간 코로나와 관련된 각종 수당 지급 업무가 더해질 것이다. 집에서는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에게도 전보다 두 배, 세 배의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게다가 선거가 있는 해인지라 그 어느 봄보다 더 바쁘고 진 빠지는 4월을 보내고 있다.


며칠 전, 공무원 연가보상비가 국민 재난 소득 재원 마련을 위해 전액 삭감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실 일반 직장인들에 비하면 공무원의 연가보상비는 매우 적은 금액이다. 공무원은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근로기준법 상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매우 적은 금액, 그리고 그 금액조차 받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다. 이런 걸 아무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공무원이라는 집단의 이 잔잔한 침묵은 참 신기하다.


공무원이 이토록 많은 일을 한다는 걸 공무원이 되기 전에는 미처 몰랐던 일이다. 아무도 요란떨지 않고 그냥 이게 내 일이려니 한다. 언젠가 옆과 과장님이 우리 팀장님에게 뭔가 위로하시면서 몇 번을 쓰셨던 단어가 생각난다. 아마 그 말이 공무원 조직에 딱 어울리는 말일 듯하다.

‘묵묵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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