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공시생의 수험기

쌤들 감사해요.

by 장완주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공무원 시험을 본 것은 오직 생계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대학 시절 행정고시를 진로 선택지에서 제일 먼저 지워버린 이유도 바로 그 생계 때문이었다. 시험공부 기간을 버틸 만한 밑천이 없었다.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은 사기업에 취직하는 것이었다.


전공을 싫어하거나 어려워했던 것은 아니다. 고 3 때 담임 선생님께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행정학과'를 추천하시면서 나에게 "니 성격에 아주 잘 맞을 것"이라고 하셨더랬다. 수학을 안 해도 버틸 수 있는 전공이라는 거였는지, 아니면 과도한 의협심의 징후를 보셨던 탓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선생님 말씀대로 나는 무난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놈의 의협심 탓에 마지막 회사를 급하게 퇴사해버린 후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이직은 점점 가능성이 적어졌고, 경제상황은 계속 악화되는데 이제 갈 만한 포지션도 쉽게 나지 않았다. 집 앞 학원에서 밤에 영어를 가르치고 그걸로 모자라자 낮에 식당 서빙을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여기서 밀리면 그 다음은 어디지?'


친구는 꾸준히 공무원 시험을 보라고 재촉하는 중이었다. 공부하는 동안 버틸 돈이 없으면 대출을 받아 빌려주겠다며. 학원에서 일한 지 1년쯤 있다가 밀려나자 나는 결국 시험을 보기로 했다. 마른 수건 쥐어짜가며 모아놓은 돈으로 얼마간은 살아낼 수 있었다. 공시 준비를 하고 있던 이웃 홈스쿨 딸내미에게 전화를 해서 과목을 확인하고 공부 방법을 물었다. 요즘은 무조건 공**란다. 그게 뭐야? 무슨 학원 이름이 그래? 2017년 9월 4일, 프리패스를 결제했다. 2년 간 모든 강의를 들을 수 있다고 했다. 선생님을 결정한 후 기본서 교재를 주문했다. 9월 6일 한국사 교재가 도착했다. 이제... 진짜 시작인 건가... 중능겅가...


한국사부터 들었다. 목표는 9급. 7급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1년 커리큘럼 중에 이미 모든 과목의 기본서 강의가 다 끝난 시점이라 하루에 몇 강씩 몰아 들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영어는 듣지 않았다. 그해 7월에 TOEIC을 보고 점수를 확인했으니 시험 직전에 모의고사만 풀기로 했다. 아침 여섯 시 기상, 밤 열두 시 취침, 낮에 식당 알바하는 시간을 빼고는 종일 집에서 인강을 듣고 공부를 했다.


살림은 두 아이가 맡아서 했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 "1 년만 준비해보려는데 어떻게 생각해? 많이 힘들 수 있어."라고 물었을 때, 오리는 말했다. "내가 1 년 동안 엄마 키워줄게. 걱정 말고 공부해." 구니도 그랬다. "엄마가 좀 편하게 살 수 있다면 당연히 해야지." 중3, 중1 두 아이는 내가 시험을 볼 때까지 장보는 것과 화장실 청소만 빼고 모든 집안일을 다 했다. 나는 오리가 "엄마, 밥 먹어." 하면 식탁에 앉아서 밥을 목구멍에 후루룩 밀어 넣고 먼저 일어나서 다시 책상에 앉았다. 내가 공부하는 내내 오리는 “다음엔 뭐 해 먹지?”를 입에 달고 살았다.


9월 말쯤, 12월에 지방직 추가 채용시험이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되었다. 목표는 2018년도 시험이었지만 연습 삼아 응시해서 손해 볼 건 없었다. 일하던 식당에 얘기하니 사장 언니는 “그럼 공부해야지.” 하고 월말까지만 일하라고 했다. 10월부터는 공부만 했다. 원서 접수를 하고 한국사에 이어 국어, 행정법, 행정학을 차례로 듣고 행정법은 도저히 모르겠길래 다른 선생님의 기본강의를 한 번 더 들었다. 그리고 기출문제도 모두 풀었다.


아침 여섯 시부터 밤 열두 시까지 꼬박 앉아만 있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식당에서 일하며 붙은 근력이 의외로 도움이 되었다. 종일 앉아 있어도 허리가 아프지 않았다. 몸은 바뀐 스케줄에 빠르게 적응했다. 기상시간 알람 울리기 직전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세수도 안 하고 무조건 거실 책상에 앉아서 인강부터 켰다. 세수는 아침 먹고 양치할 때 한꺼번에. 하루에 인터넷 서핑은 30분, 낮잠도 일정한 시간에 딱 15분, 정신이 돌아와 보면 역시 알람이 울리기 직전이었다. 밤에는 아무리 조바심이 나도 12시 10분을 넘기지 않고 누웠다. 머리 대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시험이 다가왔다. 자꾸 망설여졌다. 아무리 연습이라지만 겁이 났다. 11월 학원 모의고사 시험지를 풀었을 때 행정법, 행정학은 과락이었다. 공부가 너무 부족했다. 중간에 괜히 페이스 흐트러지는 건 아닌지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마음의 갈등과는 무관하게 공부는 계속했다. 틀린 기출을 다시 풀고 벽에 포스트잇을 덕지덕지 붙이고, 말도 안 되는 두문자를 만들며 암기했다.


시험 전날까지도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정말 어쩌지 못해 간 것이다. 식당 사장 언니는 나를 불러다가 삼계탕을 먹였다. 행여나 시험 날 탈이라도 날까 봐 시험 이틀 전에 말이다. 그러니 어떻게 도망을 가나. 12월 9일, 나는 한숨을 쉬며 시험장에 도착했다. 교실 맨 마지막 자리에 앉아서 둘러보니 모두 같은 사인펜을 두 개씩 갖고 있는 게 보였다. 이마트에서 산 내 것만 달랐다. 교실 모의고사를 한 번도 안 봤으니 그것도 겁이 났다. '내 것은 규격에 맞지 않는 건가?’ 이제 와서 어쩔 수 없다. ㅠㅠ


시험은 100문제, 100분이다. 낯선 OMR 카드에 답을 옮겨 적다가 한국사 11번 문제를 빼먹고 말았다. 시간은 7분 남았다. 급히 손을 들어 답안지를 다시 받아 옮겨 적었다. 머릿속에서 심장이 쿵쾅거렸다. 빠르게 옮겨 적고 나니 종이 울리기 1분 전이다. 손이 계속 떨리고 온몸에서 열이 났다. 답을 제대로 옮겨 적었는지 미처 확인도 하지 못했다.


시험장을 빠져나와 차에 도착하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여전히 심장이 쿵쾅거렸다. 내 인생에 이렇게 긴장해본 건 정말 처음이었다. 대학입시 때도 이렇지 않았다. 오리에게 출발한다고 전화를 하고, 식당 언니에게도 전화를 했다. "언니, 밥값은 못할 것 같아. 그래도 너무 고마워. 다시 열심히 할게." 언니는 연신 고생했다며 전화를 끊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오리가 문 앞에서 "엄마, 고생했어!!! 짠!!!" 했다.

딸이 차린 밥상, 저 테이블이 내 책상이기도... 와... 나 발로 찍었었나... 집이 좁아서 그런 걸로...ㅠㅠ


내가 아침에 나가자마자 벌떡 일어나서 그때부터 차린 밥상에는 호박전, 두부조림, 닭갈비, 잡채, 계란말이 등등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 카드도 적어놓고, 가랜드도 걸어놓고... 나는 그만 긴장하고 겁먹었던 걸 모두 잊고 한바탕 크게 웃고 말았다. 귀여워!!! 하면서. 눈물의 도가니탕을 기대했던 딸은 나의 웃음에 당황해서 김이 팍 새 버렸단다. 엄마가 원래 그런 걸 잘 못해서... 미안... 어린 딸이 아침부터 그 상을 차리려고 전날 저녁에 장을 봐다가 방에 숨겨놓고 있었다 한다. 이 녀석은 대체 누굴 닮은 건지... 딸 덕에 나는 아주 편안하게 긴장을 풀고 답안이 배포되기 전의 시간을 수다로 보낼 수 있었다.


정답 안이 뜨자 나는 내 시험답안을 학원 사이트에 입력하고 엔터를 누른 후 내 점수를 확인했다. 사실 점수는 의미가 없다. 내 점수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감도 없었다. 그러고 나서 아이들을 데리고 성남으로 차를 몰았다. 공시를 보라고 나를 들들 볶았던 친구네 집으로 보고를 하러 간 거다. 다시 시험 준비를 하려면 그날이 아마 유일하게 얼굴을 볼 수 있는 날일 것이었다. 아이들은 자기네끼리 놀고 어른들은 맥주를 마셨다.


친구와 친구 남편, 셋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공** 합격예측 서비스에 들어가 내 예상 등수를 확인했다. 2등? 뭐라고? 모두가 공** 수강생은 아니니 등수에 3을 곱해서 선발인원 안에 들면 안정권이라고들 했다. 우리 지역은 아홉 명을 뽑았다. 어, 나 그럼 6등인데...


그렇게... 나는 합격을 했다. 물론 필기 다음에 면접시험이 남아있었고, 문제에 대한 복수정답 시비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합격했다. 9월 6일에 시작한 공부는 12월 9일에 끝났다. 생각보다 빨리, 많이 빨리 끝났다. 누군가가 나에게 '합격후기 올리지 말라'라고 했다.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얘기였다. 맞다, 인정한다. 절박함 외에는 공유할 만한 수험 노하우가 딱히 있지도 않았다.


이 글은 합격후기가 아니다. 자랑질도 아니고 염장질도 아닌, 그저 나의 수험생활의 기록이다. 간혹 "공부 얼마나 했냐"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정말 집요하게 묻는다. "1년 좀 안 걸렸어요."라고 하면 "그럼 몇 개월 했어요?"라고 말이다. 결국 사실대로 대답하면 "짜증 난다."라고 한다.


유일하게 가진 재주라곤 지독하게 앉아서 공부하는 것뿐이었으니 너무 뭐라 하지는 말아주었으면 한다. 하루에 열여섯 시간씩 공부했다. 가능하냐고? 돈을 대출받아 빌려주겠다던 친구의 설레발이 무서웠던 탓도 있었고, 갈수록 허옇게 말라가는 아이들을 보는 것이 괴로웠던 탓도 있었을 거다.


2월에 도청에 가서 면접을 보고 나와 주차해둔 차에 탄 순간부터 집까지 운전해오는 한 시간 동안 나는 정말 어린애처럼 엉엉 울었다. 아무도 보지 않고 듣지 않는 곳에서, 울다가 좀 잠잠해지나 싶으면 또 서럽게 눈물이 났다. 암기하고 문제 푸는 공부는 어떻게든 하겠는데 면접은 도저히 자신이 없었더랬다. 나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을 모른다. 겁이 나서 공격적이 되는 나 자신을 너무 잘 안다. 막막하게 혼자 준비하며 몇 번을 떨어지는 꿈을 꾸었던 그 면접이 끝나자 왜 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말이다.


지금은 그 공부했던 기간에 내가 어땠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시험 봤던 날 딸이 써준 카드도 어디 뒀는지 잊어버려서 며칠 전에 된통 혼이 났다. 혼나도 싸다. 기억나는 건 행복했다는 것뿐이다. 공부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한 과목도 빠짐없이 재미있었다. 어쩌면 내 인생의 마지막이 될 혹독하고 치열한 공부의 시간, 내 한계를 만져보고 무너뜨려 보는 시간, 더 잘하고 싶어서 애가 탔던 시간.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나에게 새로운 삶의 무게를 얹어줄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들어서기 전에, 내가 유일하게 할 줄 알고 그토록 목말랐던 공부를 실컷 할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한 시간이었다.


나의 수험생활은 그러했다.

매거진의 이전글늦깎이 공무원의 1년 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