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란이 되었던 인물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불편하신 분은 읽지 않으시기를 권합니다.
소설가 박범신 선생을 만난 적이 있었다. 전에 일하던 회사의 사장님과 절친이라 직원 대상 특강에 강사로 초빙한 때였다. 통상 강의를 의뢰하는 측에서 주제와 대강의 목차를 요청하는데 그 강의는 사장님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요청하는 입장인 나도, 요청받은 분도 딱히 주제를 정할 수가 없었다. 아무런 합의된 사항 없이 강의를 진행하게 되었다.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어떤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을 강의에 모셔보면 사전에 주제를 조율해도 그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드물고, 아무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도 진국 같은 강의를 하시는 것을 더러 보았기 때문이다. 그날 박범신 선생은 '결핍'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었다. 자신의 모든 창작활동의 원천이 바로 결핍이라고 말이다.
유명한 작가가 되신 지도 오래이고, 마침 당시에는 <은교>가 영화로 만들어진 후였으므로 굳이 우리 사장님이 강연료를 챙겨주지 않았어도 여유롭게 집필하고 계셨을 터였다. 강의 중에도 그는 '작가로 살기에는 너무 풍요로운' 삶이 불만스럽다고 얘기했다. 결핍이 사라지자 창작이 힘들어졌다며 결핍을 위해 이혼을 결심했었다고 말했다. 평범한 사람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사고인 건 분명하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아내를 깨우러 갔다 한다. "나 글을 써야 돼. 결핍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이혼뿐이야. 우리 빨리 이혼하자."라고 말하려고 말이다. 선생의 '결핍 어쩌고' 하는 얘기가 그저 장난스러운 투정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개 월급쟁이로 창작과는 거리가 먼 일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냥 그 갈증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러나 선생은 잠든 아내의 얼굴에서 무엇을 보았다고 했다.
"우리가 함께 잃은 것들을 보았어요."
함께 얻은 것, 함께 이룬 것만이 보였더라면 이혼을 했을 수도 있었지만, 그동안 함께 잃은 청춘, 함께 겪은 실패와 고통을 본 순간 결코 아내와의 이혼을 말할 수 없었다고 선생은 말했다. 결국은 이혼 대신 서울 집을 떠나서 시골에 작은 독거의 공간을 두고 홀아비처럼 지내며 집필하는 것을 택했다는 것이다. 정말 내가 강의 준비 차 전화를 드렸을 때마다 선생은 그 '시골'에 있었다.
함께 잃은 것. 그것 때문에 이리도 서설이 길었다. 함께 잃은 것... 함께 잃은 것... 함께 잃은 것... 왜 이렇게 이 말이 슬프고 부러운지 모르겠다. 함께 잃을 사람, 함께 울 사람, 함께 아플 사람, 함께 저물 사람... 워낙 외로움[孤]을 타고난 팔자라고 하니 부러 탐내지는 않지만 그런 사람을 가져본 적 없는 인생이 서럽고 공허한 것을 인정한다.
직장을 잃고 닥치는 대로 알바를 하던 시절에 잠시 커피숍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테이크아웃 주문을 창가에서 받는 구조라서 주문대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며 책을 읽곤 했다. 어느 날 나보다 한 여남은 살 많아 보이는 여자분이 창밖에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이가 몇이에요? 생일은? 태어난 시 알아요?" 교회를 다니지만 그냥 물어보는 대로 다 말해주었다. 어차피 사주, 점, 신수, 궁합 이런 거 맹신했던 엄마한테 숱하게 들었으니 새로울 게 없었다. 공부하고 계신다는데 뭐 재료가 되어 드려도 나쁠 건 없지 않나.
"혼자서 고생이 많으시겠네요."
"네?"
"누굴 만나도 똑같을 거니까 너무 원망하지 말아요. 그냥 팔자가 그래요."
"아... 네."
그 말이 아니었어도 원망한 적은 없었다. 혼자 버는 것이 억울한 적도, 그걸 탓해본 적도 없었다. 다만 혼자 잃는 삶이 서글펐다. "죽을 때까지 일해야 하고, 죽을 때까지 외로울 사주"라고 누군가도 그랬었다. 내 사주에 딱 맞는 배우자가 그 사람이었을 뿐이다. 뭐 '니 잘못 1도 없다'라고 면죄부 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런 거야 나 아니라도 하나님이 이미 주셨겠지. 다행인 것은 내가 외로움을 '앓는' 사람은 아니라는 거다. 죽을 때까지 외로울지언정 죽을 만큼 외롭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이렇게 밖에 못 살 거라면 추해지고 싶지는 않다.
글을 쓰고 보니 이런 건... 팔자이기도 하고 유전이기도 한가 보다. 아버지도 죽을 때까지 일하고 죽을 때까지 외로웠는데 말이다.
함께 잃은 사람, 함께 잃는 사람, 함께 잃을 사람.
그런 이를 가졌다면 정말 축하받을 일이다. 진심으로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