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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완주 Jun 24. 2020

고마웠어.

내가 가진 가장 오래된 물건은 2000년 겨울에 산 플리스 맨투맨 티셔츠다. 결혼 전에 남편이 사주었다. 옷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인데 내가 늘 어두운 색 옷만 입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백화점에 데리고 가더니 아주 진한 주황색 몸통에 카키색 소매가 달린 옷을 골라주었다. 20년 동안 겨울마다 입었는데, 여전히 가장 자주 입는 옷이다. 2001년에 혼수로 샀던 그릇들이 아직 쓸 만하게 남아있고, 2002년 딸을 낳고 산후조리할 때 조리사 파견업체에서 준 작은 나무상자가 다른 용도로 쓰이며 남아있다. 실제로 사용하는 물건 중에 오래된 것을 꼽으라면 그 정도다. 합가, 분가, 이사 등등으로 가구나 가전은 모두 바뀌었다.


그러고 나서는 2006년에 구입한 SM3 자동차다. 부부 공동 명의로 샀던 우리 가족의 첫 차. 오늘, 그 차를 말소시켰다. 폐차장에서 끌어가기 전에 내부의 물건들을 정리하는데 정말 차를 험하게 탔구나 싶었다. 물건을 잘 관리하는 방법을 모르기도 하거니와 특히 완전 차알못이라서 엔진오일이나 겨우 교환하는 정도였다. 앞뒤 범퍼는 움푹 들어가 있고, 차 안은 새삼 난장판이었다. 


그리고 앞 시트 뒷면에는 뒷좌석에 탄 아이들이 신발을 신고 발길질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카시트에 앉아서 다리를 쭉 뻗으면 앞좌석에 발이 닿는다고 얼마나 좋아들 했었나 모른다. 그래서 발을 달랑거리며 시커먼 신발 자국을 찍어놓은 것이다. 뒷좌석에 오래도록 카시트를 두 개 놓았다가 지금은 아이들이 앞뒤로 나란히 앉으면 무릎이 걸리적거려서 뒤로 밀겠다, 아니다 당겨 앉아라 하며 투닥거리고 뒷좌석에 앉은 아이는 45도 틀어서 앉아야 그나마 다리가 불편하지 않다고 한다.


큰 아이가 다섯 살 때 사서 올해 폐차를 하기까지 20만 킬로미터를 달렸다. 이 차로 전국에 강의를 다니며 아이들을 키웠다. 좀 더 잘 관리했더라면 2~3년은 더 탈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이 없다. 최근 뒷바퀴 한쪽의 차체에 유격이 생겼는지 덜컹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커브를 돌 때 뒷바퀴가 밀리는 느낌이 들었다. 체감 상으로는 위험한 상태였다. 2년 전에 아이들을 태우고 운전하던 도중에 길 한복판에서 갑자기 차가 서는 아찔한 경험이 있었다. 어두운 국도에서 아이들이랑 같이 좌회전 차선으로 차를 밀고 보험사에 전화를 했다. 나중에 견인하러 오신 아저씨가 '고속도로였으면 다 죽었다'며 정말 다행이라고 하셔서 등골이 오싹했었다. 다시 그런 일이 있을 때도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모를 일이다. 이제... 결단해야 했다.


새로 차를 산 것이 아니라서 주변에선 너무 빨리 폐차한 게 아니냐고, 고쳐서 좀 더 탈 수 있지 않냐고들 했었다. 그러나 대책은 없지만 조금 일찍 폐차를 했기에 아름다운 기억으로, 아쉬운 마음으로 기억하는 거라고 결론짓는다. 행여라도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나는 차도, 나도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폐차장 사장님이 오셔서 차를 끌고 가시는 걸 뒤에서 보았다. 늘 내가 운전을 하니 내 차가 어딜 가는 뒷모습을 볼 일이 없었는데 어쩐지 혼자서 나를 떠나가는 듯한... 마음을 뭐라고 표현하기가 어렵다. 완전 싸패는 아닌가 보다. 살아있는 누군가와 이별하는 것 같은 애틋함에 조금 놀랐다. 며칠 전에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기념 드라이브라도 하자고 했을 때는 "기름 없어." 하고 시큰둥 넘어갔는데 말이다.


오후에 다시 사장님이 오셔서 말소 증명서를 주고 가셨다. 시스템에 들어가 보니 '말소'라고 빨간 글씨가 찍혀있었다. 이제 자동차로서의 기능을 다 하고 마침표를 찍었다. 물건에 별 애착이 없으니 지금은 잠시 아쉽다가 금세 그 감정은 잊겠지만 아이들을 위해, 아이들과 함께 20만 킬로미터를 달려준 나의 좋은 차를 잊지는 않을 것 같다. 그동안 정말 고생했다.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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