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바람 소리에 새벽잠을 깼던 날이 있었다. 빗소리에 불안해하며 선잠이 들었는데 바람이 베란다 창문을 아주 멱살잡이를 해댔다. 알루미늄 섀시라서 힘도 약한 애를... 한참을 베란다에 서서 머리채 잡혀 끌려다니는 나무들을 보았다. 어쩌지? 나 출근하다가 날아가는 거 아니야? 하는 말도 안 되는 걱정을 속엣말로 구시렁대었다. 그럴 리가 있나. 그냥 출근이 하기 싫었던 걸로...
그러다가 퍼뜩 떠올랐다. 아... 공무원이지... 느닷없는 이 직업적 자각은 아직 몸에 배지 않은 현재의 직업적 요구와, 익숙한 과거 습성의 작은 충돌이다. 예전 같았으면 비가 너무 많이 오는 날 출근을 짼다 해도 그건 개인의 선택일 뿐인 문제였겠지만, 지금은 그랬다간 돌 맞을 수도 있다. 나는 이제 재해를 피해 다닐 수 있는 '국민'의 신분이 아니다. '국민'이 재해를 피할 수 있도록, 바람이 많이 불고 비가 많이 오면 더더욱 기를 쓰고 출근해야 직업이다..
'지방직' 공무원의 업무가 그러하다. 이것이 바로 선거로 지자체장과 의원을 뽑는 민선의 위력이다. 올해는 휴가 갔던 직원들에게도 복귀 명령이 떨어졌었다. 만약 내 자식이 공무원이 되겠다고 한다면 꼭 국가직 시험을 보라고 할 거다. 국가직도 그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만 말이다.
올해 유난히 아주 많은 비상근무들이 추가되었다. 부서별로 순서를 정해 차출되는데도 워낙 종류가 많다 보니 엄청 자주 돌아온다. 지지난 주에는 코로나 비상근무로 KTX 역사에 지원을 나갔다. 해외에서 입국한 사람들의 귀가 차량(자차나 콜밴) 안내였다.
입국자들을 위해 요즘 KTX 하행선은 맨 뒤의 17, 18 호칸을 통째로 비우고 다른 승객을 타지 못하게 한다. 공무원들은 KTX역에 대기하고 있다가 카톡으로 '이번 기차에 다섯 명'이라는 식의 알림이 뜨면 그 칸에 타고 온 입국자들이 일반택시나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도록 플랫폼에서부터 역사 외부까지 일렬로 이동토록 하고, 그 중간에 일반인과 동선이 엮이지 않도록 확인하는 일, 자차가 없는 입국자들에게 콜밴을 수급하는 일을 한다. 내가 일했던 날은 덥고 습했다. 방호복을 머리까지 둘러쓰고 방진마스크를 쓰고 플랫폼을 오르내리며 오후 두 시 반부터 밤 열한 시 반까지 아홉 시간 동안 일했다. 무덥고 지쳤다. 그러나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거기까지만.
어제 친한 언니가 저녁 근무를 나간다길래 최대한 세세하게 알려주고, 걱정이 되어 톡을 날렸더니... 이렇게 사진과 톡이 왔다. 내가 근무할 때 페이스 실드는 없었는데 이제 그것도 추가됐나 보다. 어제도 무척이나 더웠는데 자정까지 잘 버텼으려나.
지난주에는 수해복구 지원을 나갔다. 내가 나간 읍사무소에는 40명이 배치되었고, 중앙에서 오시는 높은 분께 보여드릴 현장 설명판 만드느라 재 차출된 인원을 제외하고 4개 조로 편성되어 흩어졌다. 우리 조의 임무는 농가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 댁이 침수되어 물에 젖은 가재도구를 끌어내는 일이었다. 도착해보니 이미 서울 사시는 따님 부부가 젊은 아들 둘, 딸 하나를 데리고 오셔서 집을 정리하고 계셨다. 그러나 큰 가구는 꺼내질 못하시니 여럿이 달려들었다. 그 집에서 끌어낸 가재도구가 10톤이 넘은 듯하다. 무덥고 비 맞고 지쳤다.
그러나 한 사람의 팔십 년 인생을 모조리 끌어내는 일에, 마음 상하실까 봐 서두르지 않고 재촉하지 않고 거칠지 않고 힘든 내색하지 않으며 일했다. 우리에겐 폐기물이지만 그들에겐 추억이다. 할머니의 따님은 짐을 옮기고 버리는 일을 빨리 결정해주려고 애를 쓰셨지만, 그래도 가끔 머뭇거리셨다. 딸을 불러 사진을 찍어놓으라 한 후에 버리는 물건도 꽤 되었다. 수해는 그렇게 한 가족의 추억을 먹어치웠다.
이번 주는 원래 주중에 폭우 비상대기 근무가 있었고, 수해 피해 기업체 조사 출장이 있었다. 다행히 폭우가 그쳐서 비상대기는 해제됐고, 출장은 과장님이 대신 가주셨다. 전 직원이 널뛰기하듯 이 시국을 지나고 있다. 오늘 아침 비상회의 때 들으니 수해현장 복구가 아직 한참 남아서 군부대 장병들은 금주 지나 다음 주도 계속 현장 투입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 토요일에 갔던 마을에도 우리 아들 같은 청년들이 비를 쫄딱 맞고 여기저기서 일하고 있었다. 이제 날도 더운데 오늘도 장병들은 포도밭의 토사를 치우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말에는 연휴기간에 비 예보가 있어서 내내 비상회의가 잡혀있다. 간부들은 연휴 내내 나올 것이고, 회의자료를 담당한 직원들도 연휴 내내 나올 것이다. 나는 월요일 회의의 녹취와 당부사항 정리를 맡았고, 아침 8시까지 출근이다.
최근에 강원도에서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인공수초섬을 고정시키는 작업을 하던 선박이 전복되어 인명피해가 났다. 이제 갓 입직한 입장에서는 한탄보다는 안쓰러움의 감정이 더 크다. 여태 이렇게 숨어서 육탄전으로 '국민'의 안전과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공무원이라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나는 사실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일은 언제든지 나에게 일어날 수 있다. 민선체제 하에서 시민과 민선 지자체장에 대한 공무원의 지위는 글자 그대로 '공복'이다. 인공수초섬을 지키라는 것과 같은 지시가 내게 내려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친절뿐만 아니라 복종 또한 법에 명시된 공무원의 의무인지라 우리는 그 지시에 반드시 따라야만 한다. 그게 싫다면 공무원을 해선 안 되는 것이다.
지난번 산불 때 차가 전복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정말 등골이 서늘했었다. 만약 나쁜 소식이 들려온다면 내가 정말 견딜 수 있을까 싶었다.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동안 계속 상황을 묻는 전화가 오는데, 상황을 알 수 없었던 몇십 분동안 너무 익숙한 공포에 떨었다. 눈 오는 새벽 출근하다가 고갯길을 내려올 때도 차가 도는데 본능적으로 자식들 생각이 났었다. 나이 든 시 직원들은 모두 죽다 살아난 무용담 한 두 개씩은 갖고 있다. 웬만한 건 어디 자랑할 것도 못 된다.
비상이 없는 주말을 기다린다. 시민들이 평안한 주말. 시민들이 안전해야 공무원도 주말에 쉰다. 코로나도, 수해도, 아무 사건도 없는 주말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