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말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2024년 8월 초.
내 생일이 다가왔다.
생일은 나에게 트라우마가 되었기 때문에 최대한 오늘만큼은 마음 편하게 잘 지내자고 다짐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좋아하는 그레이 아나토미를 봤고, 교통사고를 당해서 폐차를 해야 하는 아빠를 도와서 오빠와 함께 짐정리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초밥도 먹고, 오빠들이 선물해 준 책과 폰 케이스도 뜯어봤다.
그리고 이 과정을 글로 남겨서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연습을 했다.
이번 생일은 ‘운동도 해봐야겠다!’라는 생각에 헬스장에 가서 운동도 했다. 집으로 가니 엄마랑 작은오빠가 돈 관련해서 말을 하고 있었다. 흑기사 얘기도 하는 것 같았다.
샤워하고 나왔는데, 엄마가 얘기했다.
오늘 흑기사가 죽은 거 같아
자살암시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내 생일 전날, 엄마와 흑기사는 이혼을 했고, 이혼 이후에 엄마에게 50만 원을 빌려달라고 했지만 빌려주지 않아서.. 자세한 내용은 못쓰겠다. 아무튼 본인이 약을 먹었단다. 죽으려고. 유서를 썼고 그 이후로 흑기사는 연락이 끊겼다.
준비해 놓은 케이크를 불려고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화장실로 달려가서 후드득 쏟아지는 눈물을 막았다. 아니, 눈물은 멈출 수가 없었다. 갑자기 너무 슬펐다. 모든 것들이.
앞서 말했다시피, 생일은 나에게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2022년, 엄마가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 날이 내 생일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엄마를 매우 증오했고 모든 연락을 받지 않았을 때였다. 안 좋은 기억들이 모여있는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 하루를 정말 잘 살아보려고 노력했는데.. 진짜 노력했는데... 나에게 상처를 가득 준 사람은 허무하게 자살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필 내 생일날, 케이크를 불기 전에 이런 얘기를 꺼낸 엄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는 건가.
그가 죽고 난 이후로, 나는 자살충동이 생기기 시작했다. ‘상처 주던 사람이 사라졌으니 오히려 다행인 거 아닌가?’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이게 막상 겪으면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쉽지가 않다. 무조건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연예인이 자살을 해도 많은 사람들이 기사를 보며 영향을 받는데, 나는 내가 실제로 봤던 사람이자 엄마가 사랑했던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꽤 괴롭다. 특히나 미성년자인 내가 감당하기엔 더 버거운 일이었다.
결국 나는 더 이상 버티질 못했고
결혼식 대소동이 일어난 날, 첫 번째 자살시도를 했다.
To Be Continued.
*빠른 연재를 위해서 다음 화는 일요일에 올라갑니다.
이 브런치북을 완재한 뒤에 "열일곱, 정신병동 응급입원기"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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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올릴 글은, 죽음을 결심했던 한 사람의 처절한 병원 기록이자 삶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스포를 드리자면, 이 브런치북의 에필로그는 해피엔딩입니다. 아픈 이야기가 가득하지만, 그 끝은 비극으로 남지 않으니 너무 무겁게만 받아들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요즘 저는 ‘자살유족’ 혹은 ‘자살생존자(Suicide Survivor)’에 대해 자주 생각합니다. 죽음 가까이까지 갔다 돌아왔기에, 그들에게 더 마음이 가는지도 모르겠네요. 특히 ‘자살생존자’라는 단어는, 사랑하는 사람을 자살로 떠나보내고 깊은 상실과 변화를 겪은 이들을 뜻합니다. 때로는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이, 떠난 이의 아픔만큼이나 깊고 오래 지속된다는 걸 압니다.
자살 생존자는 자살을 하려다 실패하고 살아남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가족이나 친구를 자살로 잃은 후에 남겨진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재난이나 참혹한 참사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두고 '생존자'라 부른다. 자살로 친구나 가족을 잃은 자살 유가족들을 전문가들이 자살 생존자라고 부르는 이유는, 자살 유가족들의 심리적인 고통이 재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 책 <슬픔은 발효중>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않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해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겠지만 적어도 오늘을 버텨낸 당신이 조금 덜 아프고, 아주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