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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우울증 치료의 시작과 과정

정신과는 처음입니다만?

by 디엔드

지난 화 | 8. 선생님, 저 고등학교 안 갈래요

그렇게 나는 우울증 환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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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에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을 경험했고, 타이레놀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아서 정말 힘들었다. 두통이 생기니 시야가 흐린 증상이 나타나서 안과에도 가봤지만 별 이상이 없다고 신경과에 가보라고 했었다. (항우울제 복용 이후로는 시야 흐림 증상이 한 번도 없었다.) 그 이후에는 침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고, 정말 갑자기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러다 정신과에 예약을 잡았는데, 이건 마지막 발버둥 같은 거였다.


누군가 이 고통에서 해방해줬으면 하는 마음.

두 달 넘게 대기를 했어야 했고, 3개월간 나는 하루하루가 너무 지옥 같고 몸에는 무거운 추를 달아놓은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정말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병원에 갔더니, 검사결과지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고도의 스트레스
중증 수준의 우울감
가벼운 불안상태
수면의 질이 안 좋은 편
심한 정도의 사회불안 증상
양극성 장애 증상은 없음

무기력한 증상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당장 약물치료가 필요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첫 항우울제 복용은 정말 재앙이었다. 지금까지 경험한 것 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다. 항우울제 한알이랑 위보호제 한 알을 먹었는데,


1. 불면 (평소보다 더 못 잤다.)

2. 속 쓰림 + 메스꺼움

3. 구토

4. 심장 두근거림

5. 식욕 부진


이 다섯 가지 증상이 한 번에 나타난 것이다........


처음 약물치료를 하는 사람이 부작용이 강하고, 안 맞는 약을 복용하게 된다면 그 이후 정신과 약에 대한 거부감이 정말 심해진다. 나는 ssri 계열의 약들이 안 맞았다. 일주일간 너무 고통스럽게 지낸 탓에 앞으로 바뀔 약에 대해 저항감이 커졌고, 꾸준히 약을 복용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브런치에 우울증에 대해 찾아보면서 (브런치 작가님 중에서 정신과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분들이 많아서 그 당시의 나에게 엄청 큰 힘과 도움이 됐다.) '이건 도대체 무슨 병이지..' 싶었다.




첫 우울증 치료는 10개월 간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나는 꽤나 성실한 우울증 환자였다.

초반에는 집에서 50분 거리의 병원임에도 맞는 약을 찾기 위해 빠지지 않고 갔다. 진심으로 나아지고 싶었다. 다시 힘들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리고 '우울증에 걸리면 어떤 느낌인가요?'라는 질문에 나는 어떤 답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을 했던 적이 있다.

내가 느낀 바로는, 온몸을 젖은 이불로 덮고 있어서 너무 무겁고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마음은 조각조각 깨진 게 아니라 갈기갈기 찢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 곪아버려서 진물이 흘러넘치는, 뼈가 부서지다 못해 으스러진 느낌을 느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압도되는 기분과 생을 마감하고 싶을 정도로 아픈 마음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괴롭다.


우울증은 우울하다는 것뿐만 아니라 공허한 감정, 무기력, 수면 패턴 망가짐, 끊임없이 죽고 싶어지는 등 다양한 양상이 나타난다. '나'라는 세상이 모두 무너진 듯한 감정을 느끼는데 그 순간은 정말 힘들다…. 비극적 이게도 차라리 죽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해지는 삶이다.


어떤 말을 하더라도 제대로 표현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내가 당시에 쓴 일기를 공유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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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1. 13

요즘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눈을 뜨자마자, 밥을 먹으면서도,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죽고 싶다. 근데 어떻게 죽어야 할지, 죽은 뒤의 과정은 어떨지. 너무 복잡하다.


이런 생각도 들었다. 죽고 싶다는 말이 뇌를 너무 지배해서 오히려 뇌가 으스러지고 뒤틀린 거 같다는 생각. 그러나, 나는 지금 행동으로 옮길 자신은 없다. 나도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난 분명 무기력함에 병원을 갔고 약을 복용했지만, 무기력함이 나아지니까 생을 마감하고 싶다. 이유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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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3. 6

어느 순간부터 생긴 공허는 채워지지 않고 나를 아프게 만든다. 공부는 혼자만의 고독한 싸움이고, 우울을 극복하는 과정 또한 고독한 싸움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너무 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정처 없이 떠돌지만 답이 없는 문제들이다. 힘든데 왜 힘든지 모르겠다. 그래서 매번 최종적인 답은 자살로 도출된다. 죽으면 모든 게 끝날 것 같아서, 죽으면 편해질 거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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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3. 25

질펀하다: 주저앉아 하는 일 없이 늘어져있다.


요즘의 나는 질펀한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아니 이렇게 죽어가는 건가?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힘들었고 너무 빨리 무너져버린 내 모습을 직면하는 건 괴로웠다. 아픈 만큼 성장한다던데, 아픈 만큼 더 감당하기 힘들어지는 거 같다. 이게 성장통이라면 차라리 성장을 멈추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어떤 긍정도 와닿지 않았고 의욕도 없다.


나는 지난 경험을 통해서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믿지 않기로 했다. 시간이 흐른다고 내가 변하는 건 아니다. 변화는 스스로 만드는 거고, 시간은 고통이라는 녀석을 더 키우거나 줄여줄 뿐이다. 힘들었던 시간을 겪으며 내가 가장 두렵다고 느낀 건 끊임없는 추락이다. 낙담의 골짜기에서 오래 머물다 보면 돌이킬 수 없고 끝이 안 보이는 터널에 갇힌 기분이 든다. 끊임없는 추락은 자존감, 성취 욕구, 목표의식 그리고 나 자신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지금 그 경계에 서있는 기분이다.

한번 나를 놓아버리면 정말 돌이킬 수 없을 것 같다. 난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누군가 나를 구제해 줬으면 좋겠다.


점점 무너지고 있는데, 마음이 부서져버리고 있는데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다. 내가 의지할 건 자기 전에 먹는 약 몇 알뿐이다. 이젠 항우울제도 효과가 없는 거 같다. 진짜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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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7. 15

요즘의 나는 죽고 싶지도 않고, 살고 싶지도 않다.

솔직히 말해서 삶에 미련한 것들이 많아서 겨우 삶을 영위하고 있는 상태이다.

누군가 나를 죽여줬으면 좋겠다. 억울한 죽음도 좋으니 나를 죽여줬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너무나도 안타깝고 아픈 죽음이 많다. 왜 나에겐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걸까. 행복하고 선한 사람들 대신에 내가 죽는다면 서로에게 좋은 일일 텐데. 여전히 혼자 죽을 용기는 나지 않는다. 언젠가는 이 용기가 생기겠지? 이런 생각을 하는 나도 참... 자기혐오가 극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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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7. 29

7월은 유통기한이 지난 삶을 살아내고 있다. 이젠 상해서 소화시키지 못할 시간들을 꾸역꾸역 밀어 넣었기에 탈이 났고 아팠다. 지난 과거에 마음을 쓰는 건 미련한 일이라고 했던가, 다가올 미래에 대한 무의미한 행위라 했던가. 그 시간 동안 나는 그저 내 삶을 방임하고 있었고 현재의 고통이 끝나기만을 바랐다. 난 언제쯤 고통에도 의연해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난 언제쯤 정말 괜찮아질 수 있을까? 희망이라는 게 존재하긴 할까? 슬프고 슬프다. 마음은 찢어지는 걸 넘어서 누군가가 망치로 때리고 있는 것 같다. 너무 감당하기가 힘들다..




주로 부정적인 순간에만 글을 썼지만 분명히 나아진 순간도 있었다. 약을 복용한 지 5개월 정도 지났을 땐 무기력이 많이 회복됐고, 이후에는 수능을 준비하기 위해서 독학재수학원에 들어갔다.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살았는데 문제가 있었다. 공부를 하는데, 취침 전 약을 먹고 일어나면 아침마다 필름이 끊기는 느낌이 들었다. 플래너 계획 짜고 눈을 떠보면 조교 선생님이 나를 깨웠거나, 점심시간이 되었다.


처음엔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약 부작용이었고, 그 이후 나는 임의로 단약을 했다. 정신과 약은 임의로 단약을 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피로, 두통, 어지러움, 구역질 증상이 나타나서 학원을 못 가고 응급실이나 내과를 정말 자주 갔다. 처음엔 학원이 추워서 ‘냉방병에 걸린 건가..?’싶었지만, 알고 보니 단약 부작용이었다.


필름이 끊기는 기분을 몇 번이나 느끼고, 여전히 나아지지 않는다는 생각과 회의감으로 가득 차 있을 때..

나를 충격에 빠지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채업자에게 협박 문자가 오는 것이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



To Be Continued.



p.s

처음에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가, 다른 병원에선 조울증 2형을 진단받았다가, 현재는 상세불명의 기분(정동) 장애를 진단받은 상태입니다. 여전히 극복하는 과정 중에 있지만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느리지만 굳세게 나아가는 중입니다.


그리고 최근 들어 새로운 독자님들이 많아지셨는데, 제 글을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서 보답하고 잘 지내는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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