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사람의 방향

by 라일락

글을 처음 쓴 건 편지였다. 친구 사귀는 법을 잘 몰랐던 나는 말걸고 싶은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파란 색종이에 쓴 편지를 본 엄마는 “우리딸 잘했네” 하며 방긋 웃어주었다. 잘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느낌, 그건 굉장히 힘이 나는 일이었다.


이후로 대회를 다니며 글을 썼다. 야외에서 백일장이 있을 때면 엄마는 내가 눈부시지 않도록 양산을 씌워주곤 했다. B4 종이에 글을 적어내기 전엔, 딸의 글을 읽으며 “정말 아름답다”고 말해주곤 했다. 대회에서 상을 타는 건 안중에 없었다. 잘했다, 아름답다, 그 한 마디면 됐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심경이 복잡한 글을 썼다. 내 글에는 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자주 묘사됐다. 창작수업 때 자신이 쓴 글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면 변명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제가 정말 죽고 싶은 게 아니라요. 저는 너무 살고 싶은데, 그러다 보니 이렇게 쓴 것 같아서…”

‘청춘’이라는 제목으로 쓴 시에는 자기 몸에 생채기를 내는 사람을 그렸다. 동아리 시화전 때 쓴 것이라, 간단히 시화를 그려 학교 캠퍼스에 놓아 두었는데 데이트하던 남자친구가 내 글을 보고 싶다고 했다. 글을 읽어본 남자친구는 웃으며 장난스럽게 “참 잘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내 글의 어떤 점을 칭찬한 것일까. 알 수 없었지만 오랜만에 잘했다는 말을 들으니 참 좋았다.


회사에 들어간 후로는 자주 답답했다. 퇴근 후에 소설가가 진행하는 창작 수업에 등록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뭐든 물어보라는 그에게 “잘 써야겠다는 마음 때문에 한 줄도 못 쓰겠다”고 말했더니, 글쓰는 이에게 그건 있을 수 없는 말이라고 했다. 글쓰기에 좋은 컨디션 같은 건 없다고. 망할 것 같아도, 망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도 그냥 묵묵히 써야 하는 거라고. 마지막 수업 전, 소설을 제출해야 했는데 결국 나는 한 줄도 쓰지 못했다. 그는 나를 가르쳤을 때보다 훨씬 더 유명한 소설가가 되었고, 나는 여전히 한 줄도 쓰지 못했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이유는 글을 쓰고 싶어서다. 물론, 몸이 아프다는 표면적 이유가 있었지만 병원에 다니면서 견뎌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냥, 아침에 일어나면 자꾸만 내가 원하는 방향과는 반대 방향으로 한 발씩 나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을 혹처럼 달고 다녔다. 아파서 잠깐 누워 있으니, 한 발짝도 더는 내딛기 싫어졌다. 그때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며칠 전에 썼던 글 네 개를 모아서 브런치에 올렸었는데, 작가가 된 것을 축하한다는 알람이었다.


일이 끝나고 업무용 노트북 대신 껌뻑거리는 개인용 노트북을 소파쿠션 위에 올려두고 썼던 글들을 찬찬히 읽어봤다. 나는 생생한 글을 좋아하는데, 썩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고 미팅요청이 왔는데, 내 글이 아닌 ‘7년차 콘텐츠 에디터’라는 직업에 대한 강연 요청이었다.


아직도 한 글자도 쓰지 못하고 있다. 잘 쓰고 싶지만 쓰자마자 망했다고 느낀다. 그런데도 언제나 쓰고 싶다고, 써야만 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이라고 자문하면 답이 없다. 남편은 가까운 것부터 써보라고 했다. 네가 좋아하는 것부터 욕심을 내려놓고 써보라고. 고양이나 제주도 같은 것들. 제주도 히끄네 집에 갔다. 제주도에서 고양이를 써볼까 하고. 그런데 히끄와 주인장을 보는 순간, 난 안 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무엇을 써야 할까. 어떻게 써야 할까. 장강명 작가는 글쓰기란 자전거 타기를 배우는 것과 다름 없다고 했다. 처음에는 엉망진창이지만 하루 이틀 쓰다보면 중심이 잡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그 말을 듣고 무작정 글쓰기 모임을 찾아봤다.


팔로우해뒀던 동네책방의 이름을 찾아내, 먼저 전화로 연락을 했다. 인스타로 찾고 전화로 연락이라니. 그럼에도 주인장은 불쑥 다가온 사람의 요청을 환대로 받아주었다.

방향을 찾고 싶다. 내 스스로가 “참 잘했다”고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그것이 글쓰는 사람의 길이라면 더욱 좋겠다.


(202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