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져, 굿모닝!

by 라일락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수요일 수업시간,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파왔다. 수업을 듣다 말고 교실을 뛰쳐나오면 복통은 조금씩 잦아들었다. 이후로는 수요일마다 말썽이었다. 아침 조회 시간에도 배를 잡고 쓰러지기 일쑤였고, 체육시간에는 운동장을 뛰다가 울면서 양호실로 갔다.


양호실로 갈 때마다 양호 선생님은 침대에 깔아둔 전기장판을 따끈하게 데워두고 배 이곳저곳을 눌렀다. 어떤 날은 위경련, 어떤 날은 소화불량, 또 어떤 날은 원인 모를 복통. 날마다 진단은 달랐지만 웬일인지 똑같은 약을 먹었다. 데굴데굴 구르다가도 양호실 침대에 누우면 잠이 잘 왔다. 푹 자다가 쉬는시간이 끝나는 종소리가 울리면 터벅터벅 교실로 돌아가곤 했다.


잘한다는 내과는 물론이고, 할머니때부터 다니던 절 스님에게 가봐도 뾰족한 진단은 나오지 않았다. 화요일 밤에 자려고 누우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일은 알 수 없다지만, 나는 누구보다도 내 내일을 훤히 알 것만 같았다.


거의 1년을 꼬박 아팠다 나아지기를 반복했다. 배가 아프다는 나를 ‘똥싸개’라며 짓궂게 놀리던 남자애들의 관심도 시들해질 무렵, 나는 괜찮아져 있었다. 언제부터, 어떻게 괜찮아진 걸까. 스무 살 무렵에서야 소리 소문 없는 바람처럼 한바탕 복통이 나를 지나갔음을 알았다.


고2때는 자주 책상 위에 쓰러졌다. mp3 플레이어를 귀에 꽂고 “난 혼자죠. 비내리는 오늘~”로 시작되는 노래를 듣고 있으면 어김없이 눈물이 났다. 얼굴과 책상 사이, 내게 온전히 허락된 5센티미터의 공간에서 나는 뜨거운 숨을 토해내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한바탕 울고 나면 시원해졌다.


첫 회사를 그만두고는 침대 위에 돌보지 못한 식물처럼 자빠져 있었다. 남자친구가 도어락을 열고 들어와 밥을 차려주면 밥을 먹고 다시 누웠다. 잠이 오면 자고, 안 오면 멍하니 TV를 봤다. 퇴사하면 밥도 잘 먹고 볕도 잘 쬐면서 식물처럼 나를 돌봐주기로 다짐했었는데. 암실 속 콩나물대가리처럼 하루하루 머릿속 생각만 늘어갔다.


아팠고, 어두웠다. 따끈하고, 야릇했다. 달콤하고, 지루했다. 열 살 무렵부터 나는 쓰러질 줄 알았다. 너무 많은 흙을 먹었다 싶으면 스스로 흙을 게워내는 꽃게처럼, 나는 툭툭 쓰러졌다 일어나길 반복했다.

요즘은 쓰러지다 못해 기세 좋게 누워 지낸다. 출근 시간, 안방 베란다 창문으로 바삐 오가는 차들을 바라본다. 누워 바라보는 차는 옆으로 게걸음을 친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 반대쪽으로 눕는다. 쓸데없는 좋은 꿈을 꾼다. 이번에는 별로 일어나고 싶지가 않다.

쓰러진 그대로 굿모닝!


(20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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