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튼, 뜨개질

by 라일락


H는 남편 친구의 아내였다. 남편을 따라 친구의 집들이에 가서 그를 두 번째로 만났다. 임신테스터와 아이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며 그는 방긋 웃었다. 나는 차에 오르기 직전까지 원고를 매만지다 온 참이었다. 집들이가 끝나고 집으로 오자마자 마감에 매달려야 했다. 그는 능숙한 손길로 전복을 손질했다. 처음 보는 치즈에 꿀과 견과류를 올려 술안주를 만들어주었다. 무슨 치즈라고 했는데, 네모난 슬라이스 치즈만 먹어 온 내게는 생소하고 놀라운 맛이었다.


아이가 생긴 걸 안 날, 남편과 시어른들에게 몰래카메라를 한 영상을 보여주며 부부는 웃었다. 한참을 이어지던 주식 이야기가 끝나고 자리를 파할 무렵, 그는 내게 선물을 건넸다. 계란후라이와 식빵 모양의 수세미였다.

수세미를 뜰 시간이 있는 그가 미치도록 부러웠다. 사실 ‘이런 거 만들 시간 있어서 좋겠네’ 하며 속으로 궁시렁댔다. 나만큼 바쁘지 않은 사람들을 따가운 눈초리로 바라보던 때였다.

아무도 내게 휴식시간을 반납하며 일하라고, 그런 직장에 다니라고 말하지 않았음에도 그 무렵, 나는 자주 억울했다.


번아웃이라는 펀치를 세게 맞고 퇴사한 후, 수세미실과 바늘을 샀다. 유튜브를 찾아 ‘코바늘 왕초보’를 검색하고는 무턱대고 뜨개질을 시작했다. 당연히 잘될 리 없었다. 실을 몇 번이고 풀어야 했고, 우여곡절을 거쳐 완성한 결과물은 스스로도 ‘에계?’ 싶을 만큼 초라했다. 그가 계란후라이와 식빵 세 쌍을 만들 때까지 보냈을 시간에 새삼 경의를 표했다.


풀었다 엮었다 한 뜨개실이 라면보다 뽀글해졌을 즈음, 사람들에게 간단한 선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동생에게는 곱창 머리끈을, 일을 준 편집자에게는 티코스터를 선물했다. 우리집 고양이에게는 빨간 케이프를 목에 둘러주었다.



내게는 아직 아무것도 주지 못했다. 아침부터 유튜브를 보며 뜨개질에 매달리지만, 내놓을 만한 결과물은 없다. 뜨개질 파우치에 온갖 조각들이 쌓인다. 잔뜩 오그라든 티코스터, 바구니를 뜨려다 바닥만 남은 원형 조각, 네모 모양으로 떠서 쿠션커버를 만들고자 했지만 요상한 다각형 모양이 되고만 조각들까지. 망측한 결과물을 숨기고 다시 명랑하게 실을 사러 간다.


하루종일 고개를 푹 숙이고 있으니 어깨목이 저린다. 무엇보다도 눈의 통증이 극심하다. 옆에서 남편이 말이라도 시키면 도끼눈을 뜨고 쳐다본다. 중간에 그만두면 코 순서를 까먹고 몽땅 풀어야 하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TV를 보며 뜨개질을 할 수 없다.




어려서부터 엄마는 뜨개질을 잘했다. 집의 커튼도, 내 보라색 원피스도, 책가방도 모두 엄마가 떠준 것들이었다. 결혼하고 나서는 신혼집에 둘 소품들을 뜨기 시작했다. 테이블보, 소파커버, 공기청정기 덮개까지 모두가 엄마의 작품이다.


엄마가 불쑥 내민 선물을 불쑥 받고는 ‘이걸 또 어디다 써야 하나’ 고민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눈이 아파 죽을 뻔했다’던 엄마의 말을 요즘은 온몸으로 실감한다. 소파커버를 들여다 보고 있으면 엄마의 눈길과 손길이 그려진다. 한 단은 한길길뜨기, 다음 단은 한길길뜨기 두 코와 사슬뜨기… 행여나 잊을까 실을 꼭 붙들고 보냈을 엄마의 시간도 함께 그려본다.


끈기가 고약하게 없는 나는 어떠한 취미도 3개월을 채우기 어렵다. 봄에는 식물을 키우겠다며 잔뜩 들여놓고는 여름이 지나지 않아 마대자루에 죽은 화분을 모두 버리고, 마카롱 식객이 되겠다며 동네 마카롱을 사 모아 놓고는 제풀에 지쳐 그만두었다. 3년을 신처럼 떠받든 요가, 8년을 계속하고 있는 독서모임이라는 취미도 물론 있지만 그 사이에 버려진 취미들이 산처럼 등 뒤에 쌓여 있다.


뜨개질은 나를 스쳐지나가 등 뒤에 척 하고 쌓이는 취미가 될까. 긴 시간 두고두고 좋아하는 일이 될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맹렬한 기세로 매달리는 걸 보면 후자에 가깝겠다고 생각하지만, 열렬히 사랑하다가 어느 순간 그 손을 맥없이 놓아버린 취미들도 많기에 큰 기대는 않는다.


다만, 쇼핑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나의 소유욕을 충족시키려 조바심을 내며 엮어갈 뿐이다. 시간의 결과물을 손으로 잡을 수 있다는 ‘만짐의 쾌감’도 무시할 수 없는 뜨개질의 매력이다. 한 코 빼뜨고 네 코 뜨고, 두 코 비우고 다시 네 코 뜨고…


오늘의 시간은 어떤 모양일까. 해괴망측한 괴물 같아도 한번 ‘풋’ 웃고, 소중한 고물처럼 주머니에 담는다.


(20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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