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 말

by 라일락

우리는 다양한 말에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는 건 자신이 하는 말이다.

모든 말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된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때도 자신만은 듣고 있다.

사람은 자신의 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붙여 말하자면, 말이 그 사람의 세계를 만든다.

『책이라는 선물』, 와카마쓰 에이스케



어떤 사람이 책의 힘을 빌려 그러더군요. 사람은 자신의 말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요. 나는 글의 힘을 빌려 그래봅니다. 세상에는 평생 자신을 벗어날 수 없는 말도 있다고요.


나의 머릿속에는 큰따옴표가 있습니다.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문장은 혼잣말이 되지 못해요. 그 안에 무사히 들어간 문장 중 아주 일부는 발화되지만, 대부분은 따옴표의 목적지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안에서 술처럼 삭아들고 맙니다.


위장들도 따옴표 안에서만 말을 해요. 배고프다, 그러지 못하고 “배가 고프네요” 그러죠. 그러면 뇌가 말합니다. “저는 이럴 때 보통 밥을 먹는데요.” 도대체 누구더러 들으라고 하는 말일까요?


혼자 걸어갈 때에는 내 속의 누군가가 나의 인터뷰어가 됩니다. 무슨 질문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쉴 새 없이 대답을 해요. “정해진 건 없죠. 저는 정답을 싫어하거든요.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우리 엄마는요…”

잠시 숨을 돌렸다가 이번엔 또 이렇게 말합니다. “일이란 건 참 우스운 일 같아요. 퇴근할 때면 매번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그러면서 또 아침마다 몸을 일으키는 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몰라요...”


가끔은 잘 보이려고 없는 말을 꾸며내요. “요가를 잘하는 사람은 몸이 유연한 사람이 아니라, 몸을 움직이면서 자기 자신을 살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저는 일주일에 세 번은 요가를 하는데요. 조금이나마 나를 들여다보게 하는 시간 같아요.” 세상에. 무슨 대답이 이렇죠? 집에 있는 요가매트는 썩어 문드러지기 일보 직전인데요.


나 역시 ‘내 목소리로 말하기’를 실천해보려고 애써본 일이 있습니다. 아랫배에 힘을 주고 고요하게 ‘배고프다’, ‘잠온다’, ‘외롭다’고 말해봤죠. 그런데 공허했어요. 아랫배에서 외친 말이 귀까지 들리지가 않더군요. 마치 음식처럼 소화되는 말 같았어요.


나는 누구 들으라고 끊임없이 말을 하는 걸까요. 나의 화자, 그건 혹시 허공에 떠 있는 당신일까요.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에게 냉철하고, 궁금해하는 건 많지 않으며, 내 얘기를 거의 듣지도 않는 당신이요. 당신 들으라고 나는 순한 목소리로, 가끔은 헤헤 웃고, 자주 나를 꾸며가면서 말 거는 걸까요.


내 말 듣고 있나요? 나, 말 배우기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나요? 엄마란 말을 발음하기도 전부터 엄마도 아닌 누군가에게 “엄마라고 부릅니다”라고 말하게 했나요?


나를 처음 봤던 문학회 친구는 그러더군요. “언니 에고 세지?”

처음으로 당신의 이름을 알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우리말로는 ‘자아’라고 한다면서요.

에고, 한 번이라도 대답해보시죠.
자아, 한 번의 기회를 드릴게요.


한 번이라도 “ㅇㅇ”이라고만 대답해주시면 내 말은 거추장스러운 따옴표 따윈 훌훌 벗어버리고, 그제야 세상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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