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는 일

by 라일락

어릴 적. 백일장에서 시제가 주어지면, 흰 종이에 제목을 큰 글자로 썼다. 그다음, 상상을 했다.

내 머릿속에 커다란 광산이 있으며, 광부들이 그 안에서 광물을 캐낸다는 생각. 광부들이 톡 튀어나온 내 이마를 마주보고 서서 날카로운 도구를 콕콕 찍어댄다. 머릿속 광산이 제법 깎이고, 광부들의 도구 끝이 내 이마뼈까지 왔을 때쯤, 글이 쏟아진다. 그러면 나는 먼지처럼 후두둑 떨어진 글을 받아냈다. 그런 다음, 행과 연을 나누어 글자들을 배열했다. 그것이 시였다.


대학시절. 내가 한심해서 견딜 수 없거나, 누구한테 말하기도 조심스러울 만큼 쓸데없는 생각이 떠올랐을 때 글을 썼다. 지나칠 수 없는 풍경을 봤을 때도 휴대폰에 후루룩 기록해뒀다. 남자친구에게 차였을 때는 소설 속 남자주인공의 이름을 전 남자친구의 이름과 한 글자만 다르게 해서, 아주 나쁜 놈으로 만든 소설이 실린 문집을 그 애 집 우편함에 넣어두기도 했었다.


사회인이 되어서도 쓰는 사람이 되었다. 보도자료를 쓰고, 가끔은 어지러운 원고를 다시 쓰다시피 썼다. 지금은 인터뷰에서 나눈 이야기를 목소리가 다 들리도록 생생하게 받아적는 일을 한다. 대개 만남은 즐겁지만, 글쓰기는 고되다.


마감날이 정해지면 TV를 보거나 단잠을 자며 빈둥빈둥 보낸다. 마음은 늘 무겁다. 마감 전 날이 되면 노트북을 켜두고 한참 인터넷 쇼핑을 한다. 물을 마시고, 거실을 빙글빙글 돈다. 꼭 똥 마려운 강아지 같다. 그러다가 안방에 누워 잠을 청해본다. 잠은 오지 않고, 모로 누워서 집을 짓는다. 이 문장으로 시작해서 저 문장은 저 단락, 그 아래 단락에는 다시 이 문장… 머릿속 메모장에 휘리릭, 글의 골조가 세워진다.


빠르게 몸을 일으켜 메모장 파일에 생각한 걸 그대로 옮겨 적는다. 그런 다음, 첫 문장부터 튼튼하게 다시 짓는다. 글 쓸 때 나는 고집스럽고 고지식한 건축가가 된다. 벽돌을 하나하나 단단하게 쌓아 올리듯, 첫 문장부터 열을 올린다. 조사가 걸리거나, 접속사가 맘에 차지 않으면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지 못한다. 초고를 한 번에 써내려간 후 두 번 세 번 고치면서 쓰면 훨씬 수월하다는데, 그게 잘 안 된다. ‘이’와 ‘은’은 다르고, ‘그런데’는 ‘하지만’으로 대체될 수 없다. 다음 문장이 앞 문장과 벌어진 틈없이 꼭 들어맞는다고 느낄 때의 쾌감. 그것을 자양분 삼아 글을 이어간다.


하지만 단락은 다르다. 다음 단락에 이르면 좀 쉬어가야 한다. 20대 때는 앉은 자리에서 글 한 편을 쭉 써내리곤 했는데, 30대가 되고나서부터 체력과 집중력이 달린다. 부엌으로 나와서 엄청나게 단 초콜릿을 한 입 베어 물어야 한다. 그러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처음부터 다시 읽는다. 이어가려면 처음부터 다시 알아야 하니까.


대략 반 나절을 이렇게 보낸다. 글의 흐름이 끊어질 땐 아예 처음부터 글의 구조를 다시 짓기도 하고, 단락이나 문장의 순서를 뒤바꾸거나 단어를 바꾼다.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찍으면 산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기분으로 커서를 내린다. 이상하게도 이 때 군더더기가 대량 발견된다. 수술방에 들어선 집도의처럼 칼을 집어들고 사정없이 튀어나온 부위를 잘라낸다. 뎅강. 글의 허리가 잘려나간다.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할 때 칼을 접고, 글을 이메일로 보낸다. 모니터를 끄고 방을 나선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해 온 일, 어쩌면 앞으로도 쭉 하게 될 일은 ‘낳는 일’이다. 놀고 있는 순간, 자고 있는 순간에도 무겁게 품고 있다가 때가 되면 방으로 들어가 낳는 일. 낳고 나면 다시 가벼워지는 일. 만들고, 품고, 낳고, 떠나는 일을 반복한다.


시간을 들인 만큼 결과물이 꾸준히 나오는 일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만들고, 만들고, 만들고, 완성하는 일 말이다. 그런 일은 애석하게도 길게 해내질 못한다. 규칙적이고 부지런한 일의 리듬을 배운 적이 없어서다. 나는 앞으로도 무엇이든 길게 앓고 짧게 낳는 일로 돈을 벌어야 하나 보다.


(2021.12)

작가의 이전글밤의 윙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