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시가 넘으면 아파트의 불이 빠르게 꺼진다. 새벽 세 시를 넘기면 우리집 거실에서 마주 보이는 동에는 서너 개의 불빛이 켜져 있다.
“나 아직 여기 있어요”.
이제는 얼추 몇 곳의 좌표를 그릴 수 있을 만큼 그들의 위치를 대략 알고 있다. 맨 왼쪽 라인에는 부엌 불이 켜져 있는데, 두 시쯤 설거지하는 이의 손이 보인다. 고단한 일과를 마무리하는 손.
어떤 이의 불빛은 형광등처럼 밝고, 어떤 이의 불빛은 타다 만 초처럼 어렴풋하다. 저마다의 온도로 모르는 이에게 안부를 전한다. 나도 커튼을 열고 빛으로 말을 한다.
“나 오늘도 여기 있어요.”
예전 회사의 맞은편에는 오피스텔이 있었다. 야근하는 날, 저녁을 먹고 오면 내내 어둑했던 오피스텔에 불이 켜져 있었다. 캣타워에 앉아 무심히 내 쪽을 쳐다보던 고양이도 집사와 함께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밤이 될수록 밖은 더 밝아졌다. 집으로 돌아와 쉬는 이들의 달콤한 피로가 골목에 가득했다. 나는 꿋꿋하게 일하는 사람으로 남아, 연신 키보드를 두들겼다.
그들과 나의 사이가 생각보다 가깝다는 걸 알게 된 건, 살던 집 계약이 끝나고 맞은편 오피스텔로 집을 보러 가서였다. 내가 한 번쯤 바라봤을 법한 그 집 창에선 회사의 모습은 물론, 일하는 이들의 모니터까지 고스란히 보였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그들은 일하는 이의 모니터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도 했을까.
코로나19로 회사에 나갈 수 없던 때에는 메신저가 불빛을 대신하기도 했다. 늦은 밤, 메신저에 접속하면 일하고 있는 동료들의 이름 옆에는 초록불이 켜져 있었다. “뭐해요?” 물으면 “...일락님도?”라는 답장이 왔다. 눈에 보이지 않는 통신망 사이로 전해지던 지지직하는 공감의 전기! 동료 이름 옆의 불이 꺼질 때까지 마음이 든든했다. “저는 먼저 가요” 한 마디를 남긴 채 동료 옆 불이 꺼지면, 깜깜한 밤 홀로 길에 남겨진 듯한 호젓함이 들기도 했다.
요즘은 밤늦게 운전 연습을 한다. 차선도 제대로 맞출 줄 모르는 초보여서, 차가 많은 낮을 피해 자정이 넘으면 도로로 나선다. 차가 사라진 도로에는 불빛이 더 잘 보인다. 아무도 건너가지 않아도 신호등은 불빛을 바꾸고, 내 동선을 궁금해할 이가 없어도 오른쪽 왼쪽 깜빡이를 번갈아 켠다. 그나마 빛이라도 있어서 외로움이 덜하다. 낮에는 공포의 대상이었을 차들이 슬쩍 그리워질 때쯤, 사이드미러에 비친 차 불빛을 보고 안도한다.
야경은 야근으로 만들어진다는 말이 머릿속에 남아 있다. 알지 못하는 이들의 수고로움이 모여 만들어내는 경치. 그걸 알고 보면 서울 구석구석이 달리 보인다. 강남과 종로에는 전체가 불켜진 건물들이 꽤 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집에 가지 못하는지 생각하면 섬찟해진다. 낮보다 밝은 야경보다는 드문드문 눈을 맞출 수 있는 빛이 반갑다. 잠들지 못한 이들이 서로에게 전하는 밤의 윙크.
(202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