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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락 Feb 20. 2022

모월모일

※성북구 책방 '부비프'에서 매주 수요일 열리는 온라인 글방에 참여해 쓴 글입니다. 매주의 글감과 필자의 글, 짧은 모임 후기를 올립니다.


이번 주 글감

행복에게 덩치가 있다면 분명 아주 작을 것이다.
눈 밝은 사람만 찾을 수 있을 만큼.
<모월모일>, 박연준

지난 주 모임에 참석을 못 해서 같이 모임하는 Y님이 글감을 대신 보내주었다. '행복'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는데, '모월모일'이라는 책 제목을 보고 문득 어제 발견한 엄마의 육아일기가 생각났다. 한두 줄 남짓한 엄마의 일기에 상상으로 살을 붙이고, 내 얘기를 이어 써보았다.



1988.12.26. 마지막 생리 시작

서른한 살의 마지막 주말. 결혼하지 않은 이로 맞이하는 며칠 남지 않은 하루. 언제나 그랬듯 다섯 동생과 한 방에서 잠자리에 들려다 팬티에 묻은 흔적을 확인한다. 누군가의 아내, 며느리가 되는 것도 낯선 지금, 누군가의 엄마라는 말은 더더욱 아스라이 멀다. 남편이 될 남자를 만난 지는 채 6개월이 되지 않았다. 친구의 소개로 다방에서 만나, 몇 번 데이트한 후 결혼을 결정했다. 남자에겐 신시가지의 정원 딸린 집이 있었다. 그 집의 대부분이 빚이었다는 건 결혼을 준비하면서 알게 되었다. 어쨌든 곧 그 집의 안주인이 되어, 하루라도 빨리 칠순이 넘은 어머니께 손주를 안겨드려고 싶은 마음이다.


1989.01.08  배란일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배란기가 시작됐다. 부모가 되기 위해 손도 몇 번 잡아보지 못한 남자와 몸을 맞춘다. 매번 어색하고 당황스럽다. 시어머니가 함께 계신 방 두 칸짜리 집은 밖에서 본 것보다 더 만족스러웠다. 친구들은 가져보지 못한 넓은 거실과 테라스가 있는 빨간벽돌집. 나는 집을 사랑한다. 그래서 남자도 좋아하는 걸까.


1989.02.06  임신을 확인했다.

서른둘, 처음 갖는 아이다. 결혼 전의 바람대로 생각보다 일찍 엄마가 된다. 나는 어떤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나의 엄마는 자주 아팠고, 내가 스무살이 갓 넘었을 때 세상을 등졌다. 아이가 스무살이 넘으면, 지금의 나보다 나이가 많아지면 나는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알 수 없다. 그저 아빠의 판단력과 엄마의 성실함을 닮은 아이이기를 바랄 뿐이다.


1989.05.08  딸이 태어날까 두려움이 엄습한다.

남편과 서울 나들이를 다녀왔다. 노란색 한복으로 제법 부른 배를 감추고, 63빌딩 전망대에 올라 사진도 찍었다. 남편도 회색 양복에 선글라스로 한껏 멋을 냈다. 인화된 사진 속 우리는 들뜨고 즐거워 보인다. 하지만 나는 요즘 두려움에 가득 차 있다. 남편은 시어머니가 마흔 넘어 얻으신 유일한 아들이다. 아무 말씀 하시지 않지만 거실에서, 부엌에서 마주하는 어머니의 시선에는 기대가 담겨 있다. 머나먼 서울에서도 어머니의 눈동자가 나를 따라다니는 듯하다. 딸을 낳으면 어떻게 될까. 매일을 죄인처럼 살아야 하나?


1989.05.09  태동을 느꼈다.

미미한 생명의 움직임.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내겐 분명히 느껴진다. 내 안의 생명은 나에게 무언가를 끊임없이 말하는 듯하다. 혹여, 딸이어서 미안하다는 말이면 어떡하지? 나도 모르게 생명이 거는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어제는 어버이날이었다. 어머니가 다니시는 노인정에 베지밀을 한 통 사다 드렸다. 매일 옆집에서 3천원을 빌려 장을 보는 형편이라, 남편의 월급날까지는 살림이 빠듯하다. 그래도 며느리 노릇을 잘하고 싶다. 남편에게는 태동을 말하지 않았다. 아이가 하는 말을 남편이 알아들으면 어쩌나 조심스러웠던 탓이다.


1989.05.30  잉어를 고아먹었다.

시어머님의 배려이시다. 감사한 일이지만, 어쩐지 내게는 무언의 압박처럼 느껴진다. 요며칠 절에 불공을 드리고 왔다. 이유없이 스님에게 몇 번이고 혼도 났다. 불공을 열심히 드리면 혹시나 부처님이 성별을 바꿔주실 수도 있지 않을까? 모쪼록 저의 아빠를 닮은 아들이었으면 좋겠다.


2022.1.4 육아일기를 보았다.

본가에 들른 밤, 잠든 남편 옆에서 옛날 앨범을 들여다보다가 낯선 앨범을 하나 발견했다. ‘명가의 얼’이라는 제목이 한자로 쓰여 있었는데, 그 밑에 쓰인 예식장 이름이 낯이 익었다. 엄마아빠가 결혼 후 예식장에서 받은 앨범인가 보다. 두 사람의 본과 족보 등을 쓰는 란, 가훈과 가정의 목표를 쓰는 란도 있었으나 무신경하게 비워져 있었다. 중간 페이지 이후에는 내용과 관계없이 결혼식 사진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주름 하나 없는 고모들과, 기억나지 않던 얼굴의 할머니가 양복을 입은 아빠 옆에 서 있었다. 사촌오빠를 안은 둘째이모부터 초등학교에 다니던 막내이모까지 여섯 이모들이 웨딩드레스를 입은 엄마 옆에 자리했다. ‘앨범 네가 뭐라 하든 나는 사진을 붙이겠다’는 엄마의 귀여운 의지가 느껴져 웃음이 터졌다.

그러다가 ‘자녀 성장앨범’란에서  짧은 육아일기를 발견했다. 환영받지 못한 존재였음을 잘 알고 있는 내겐 소중한 기록이었다. 무엇이든 진득하게 하지 못하는 엄마의 평소 성격처럼 일기는 두 줄을 넘지 않았다. 그 마저도 1989년 5월 30일에 지난 기억을 돌이켜 남긴 듯했다. ‘자녀 성장앨범’ 앞페이지에는 확대된 내 돌사진이 붙어 있다.


2022.1.5 커튼을 샀다.

아빠를 따라 중앙시장에 들렀다. 그때 눈에 들어온 분홍색 레이스 커튼! 비상금을 가져오지 않은지라 아빠에게 급하게 돈을 빌려 계산을 했다. 네살 때 부엌을 찍은 사진에서 창문에 걸린 분홍 레이스 커튼을 보았다. 3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그 커튼이 내게 온 듯했다. 집에 돌아와 사진과 커튼을 함께 엄마에게 보여주었다.

“분명 내가 샀을 텐데…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 엄마는 기억을 더듬어도 아무런 기억이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커튼이 무척 예쁘다고.

내가 태어나기 한 달 전, 우리집 마당에서 찍은 엄마의 만삭사진도 보여주었다. “이때는 테라스가 있었네. 지금은 여기가 다 거실 자린데.” 엄마는 물끄머리 집을 바라보았다.

밤이 되어, 엄마의 일기를 조금 더 채워보았다. 엄마가 세워둔 앙상한 뼈대에 그나마 살을 붙인 나의 처음이자 유일한 성장기록이다. 정신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는데, 익숙한 얼굴이 문 밖으로 빼꼼 얼굴을 내민다. 나보다도 어렸던 엄마가 환갑을 훌쩍 넘어 나를 본다. 매일 똑같아 보이던 엄마 얼굴도, 듬성듬성한 엄마의 단발머리도 오늘따라 멀게 느껴진다.


내 이야기인 줄 알았다가 1989년이라는 연도를 보고 놀랐다는 반응이 재밌었다. 30년 사이에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는 걸 글을 통해 새삼 실감하게 됐다. 내가 아이를 갖게 되어 육아일기를 쓴다면, 서른살이 넘었을 때 나의 아이는 내 일기를 읽으며 낯설다고 느끼게 될까.

*

새해 첫 모임이라 본가에 다녀온 분들이 많아서 그런지 유독 가족, 그 중에서도 엄마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다. H님은 부산 본가에서 엄마와 보낸 시간을 떠올렸고, Y님은 영화를 보며 '엄마의 어린 시절이 내 앞에 불쑥 나타나면 어떨까'를 상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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