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는 아들이야."
"응, 아들."
병원에 왔다. 다니는 병원 의사 선생님은 3주 후에 오라고 하셨지만, 결국 3주를 참지 못하고 2주 만에 동네 병원에 아기를 보러 왔다. 아랫배에 젤을 바르고 초음파 기계를 갖다 대자 보이는 아기집. 어느새 배꼽 바로 아래까지 올라왔다. 아기의 몸은 이제 한 화면에 모두 잡히지 않는다. 머리와 심장, 팔다리까지 꼼꼼이 짚어주시던 찰나 내 눈에 들어와버린 그것.
“너무 잘 보여서 말씀을 안 드릴 수가 없네. 아들이에요.”
의사선생님 말처럼 그것은 초음파 화면 한가운데서 내 시선을 온통 빼앗고 있었다. 태반의 혈류가 좀 약하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말도, 아기는 주수에 맞게 크고 있다는 말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성별이 반전될 가능성은 없나요?”
“음… 거의 없죠. 10프로 이하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진료실을 나와 한 발을 뗄 때마다 내 발소리가 ‘아들’, ‘아들’ 하고 울리는 듯했다. 옆에 선 아빠 되는 이도 멍하긴 마찬가지.
“아들이래.”
“응, 아들.”
우리가 그렸던 인생 중에는 없던 장면이었다.
네 자매 중 셋째로 태어나 여중 여고 여대를 나온 내게 남자는 낯선 존재였다. 스무 살 무렵부터 “아주 만약에 내가 아이를 낳는다면 분명히 딸일 거야” 하고 말하고 다녔다. 내가 봐 온 언니, 동생, 친구 중 누군가(나는 아니었으면 했다)를 닮은 딸의 머리를 매일 빗어주는 상상을 했다. 꼬리빗으로 가르마를 타고, 하루는 양 갈래로, 하루는 높이 올려 묶어주는 상상. 아웃렛에 갔다가 유아용 빨강 컨버스를 보고 냉큼 같은 색깔 어른용 신발을 사 오기도 했다. 언젠가는 딸이랑 하얀 원피스에 맞춰 신겠다며.
남중 남고 공대를 나온 아빠 될 이는 나와 정반대의 성장기를 겪었음에도 같은 꿈을 꿨다. 그의 꿈은 딸의 손을 잡고 좋아하는 팀의 야구 경기를 보러 가는 것. (왜 꼭 딸과 야구 경기를 봐야 하냐는 물음에는 ‘딸밖에 상상을 못 해봤어’라고 답했다.) 두 살 터울의 여동생이 있는 그는 무심한 자신 대신 부모님의 생일과 결혼기념일을 챙기는 동생을 보며 ‘아들보단 딸’이라는 생각을 키워 왔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챙긴 적은 없다.)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 빨간불에 멈췄는데 건너편의 중딩들이 보였다. 그 중 눈에 띈 남학생 한 명. 발목까지 교복바지를 줄여 입고 킥보드를 타다가 땅을 향해 힘차게 침을 뱉었다.
“우리 애도 크면?”
“아…”
그 역시 같은 곳을 보고 있었다. 집이 아닌 성북동 방향으로 핸들을 틀었다. 공기 좋은 곳에서 밥 먹으면서 이야기를 좀 하다 가기로 했다.
“둘째?”
“둘째도 아들이면?”
“아…”
녹화해 온 초음파 영상을 돌려 보면서 서로의 걱정을 이야기했다. 남자로 태어나긴 했지만 초중고 내내 쉬는시간에 축구 몇 번 한 적이 없다는 그는, 남자 아이와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좋아하는 운동도 따로 없는데, 지금이라도 운동을 배워야 하나. 이 나이에 무슨 운동을 새로 배워서 가르쳐줘야 하나. 밤마다 줄넘기라도 같이 해야 하나 싶다고.
나는 내 인생에 들어온 낯선 남자와 어떻게 지내야 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화장실은 어떻게 처리해줘야 하며, 남자들의 감정변화는 어떻게 파악하는지, 옷은 어떻게 입히고, 대화는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을지를 가늠케 해줄 ‘남자애’의 데이터베이스가 전무한 상황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맘카페에 “아들 좋은 점”을 검색해봤다. 아들의 좋은 점을 알려달라는 게시글이 생각보다 많았고, 아들을 바라는 예비맘부터 아들과 살고 있는 엄마들의 댓글이 이어졌다. 그들이 말해준 아들의 장점은 이런 것들이다.
· 꾸미는 데 신경을 안 써도 돼요. 매일 티셔츠랑 바지 입히고, 가끔 멜빵바지로 멋내주면 된답니다.
· 삐쳤을 때 맛있는 거 해주면 바로 풀려요.
· 목욕탕이나 워터파크, 찜질방에서 아빠 손에 들려 보내고, 엄마는 혼자 여유롭게 씻고 나오면 돼요.
· 투정이 없어요. 초등학교 때까지는 엄마가 사주는 옷 군말 없이 잘 입어요.
· 이 험한 세상에 걱정을 덜 수 있다는 점이요. 아무래도 범죄의 위험이 덜하니까요.
제일 솔깃했던 댓글은 이것.
·좀 크면 장볼 때 짐을 자기가 들겠다고 해요.
짐을 들어준다! (이건 아빠 될 이가 말해준 아들의 장점이기도 하다.) 장 보고 돌아오는 길, 내 양 옆에 우뚝 선 아빠와 아들의 그림자를 상상했다. 내 인생에 없을 거라 생각했던 장면이 얇은 윤곽선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사실, 아들을 낳아도 내 인생에 그런 장면은 없을지 모른다. 세상엔 무던한 아들, 짐 잘 들어주는 아들만 있는 건 아니다. 매주 엄마와 쇼핑을 다닌 아들도 있으며(그는 친구의 남편이 되었다), 짐은 힘센 엄마에게 맡기고 가뿐하게 여친과 전화하며 걷는 아들도 있다(우리 이모와 그의 아들이다). 거의 모든 어릴 적 사진에 같은 바지만 입고 등장하는 딸도, 부모에게 바위처럼 무심한 딸도 있다(이건 내 얘기다). 아들도 딸도 그냥 사람이다. 수많은 사람 중 누가 우리에게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하늘도 모를 것이다.
“우리 애는 아들이야.”
“응, 아들.”
우리는 눈을 마주칠 때마다 서로에게 말한다. 새로운 인생으로 가자는 주문이다. 이제껏 예상했던 인생 말고, 어떤 일이 펼쳐질지 가늠도 안 되는 인생 속으로 가보자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 같은 땅으로 발디딜 준비를 한다. 안개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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