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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락 Apr 09. 2023

녹은 비누를 꼭 쥐는 마음으로

 

금요일 오후가 되면 시계 보기 바빴다. 괜히 화장실을 간답시고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회사 복도를 왔다갔다했다. 5시 59분부터 PC의 종료 버튼에 손을 대고 있다가 6시 정각이 되면 부리나케 PC를 끄고 하늘색 백팩을 맸다. 합정에서 김포공항까지는 지하철로 30분. 퇴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더 설렜다. 


그 시절, 나는 자주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짐은 이틀분의 옷가지와 간단한 세면도구면 충분했다. 한 달에 한 번, 가끔은 두 번씩 서울이 답답해질 때마다 짐을 쌌다. 숙소는 늘 게스트하우스. 홀로 여행자가 외롭지 않으면서도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데는 게스트하우스 만한 곳이 없었다. 여러 침대 중 내 몫의 자리에 백팩을 두고, 샤워를 한 후 골목길을 걸으면 시원한 공기가 덜마른 두피 곳곳으로 파고 들었다. 봉지에서 꺼낸 삼선 슬리퍼를 끌고 추리닝 바람으로 휘적휘적 걸었다.


늘 첫 번째로 예약전화를 걸었던 고양이정원 게스트하우스. 심각한 고양이 알러지가 있지만, 고양이 앞에선 바보가 되는 사람의 사심을 채우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어둑어둑해진 돌담길을 따라 단층짜리 주택에 다다르면, 창문에서 인간을 구경하던 고양이들이 맞이해주었다. 궁디팡팡을 사랑하던 럭키와 감자, 침대에 누우면 세상 시크한 표정으로 배 위에 올라와 꾹꾹이를 해주던 호야, 가끔씩 얼굴만 빼꼼 하고 나타나던 별양이와 앞발 하나가 없지만 이 집 고양이 중 제일 빨랐던 (아마도) 치즈까지 무려 다섯 고양이가 사는 집. 신발을 벗자마자 앞에 누운 감자의 엉덩이를 두드려주고, 빠르게 옷을 갈아 입고 알러지약을 먹었다. 그러고는 ‘또 누가 올까’ 생각하며 고양이들과 창문을 바라봤다. 말동무가 돼줄 친구 한 명만 오되, 너무 많은 여행자가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오랜만에 만난 이 고양이들을 독자치하고 싶었다.) 


이 곳을 찾는 여행자들 역시 고양이를 닮은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고양이들의 엉덩이를 두드리며 서로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대화했다. 시내에서 싸 온 음식을 나눠 먹거나, 근처에서 저녁을 함께 먹기도 했다. 먹으면서 아이가 다 된 표정으로 다섯 고양이들과의 추억을 이야기했다. (거의 대부분의 여행자가 나와 같은 단골들이었다.) 아침이면 식탁 위에 무심하게 차려져 있던 토스트와 양상추샐러드는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 똑같은 사과잼과 오리엔탈 드레싱으로 차려 먹어도 호야와 눈을 마주치며 먹던 그 공간의 맛이 나지 않는다. 2018년 2월 고양이정원 게스트하우스는 문을 닫았고, 세 달 후 고양이 집사가 된 나는 오랫 동안 다섯 고양이를 잊고 지냈다. 문득 다섯 고양이의 안부가 궁금해져 검색창에 고양이들의 이름을 차례로 검색해봤고, 서울로 이사한 사장님의 인스타를 찾게 되었다. 제일 큰 고양이였던 럭키는 지난해 별이 되었고, 호야와 감자도 열 살을 훌쩍 넘었다. 가끔씩 사장님의 인스타를 들여다본다. 아이들이 살아있음에 안도하면서. 


제주바다의 색이 바다마다 다르다는 걸 알아가던 때, 내게는 ‘금능부심’이 생겼다. 그때까지만 해도 협재해변 바로 옆에 있는 금능해변을 아는 사람이 드물었는데, 신기하게 협재해변에서 금능해변으로 넘어가면 바다 색이 달라졌다. 제주 서쪽으로 가는 날이면 사람들로 빽빽한 협재를 ‘훗’ 하고 지나쳐 금능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릴리스토리 게스트하우스는 성인이 되어 제주도에 처음 갔던 날 알게 된 곳이었다. 제주에 공주가 있다면 여기에 살 것만 같은 레몬색 건물이 눈길을 끌었다. 3년 후, 그 곳을 다시 찾았을 때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던 계절이었다. 유난히도 하늘이 맑은 날이었는데, 비가 한두 방울씩 내리더니 쓰고 있던 우산이 부서졌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비바람이 몰아쳤고, 온몸을 떨며 숙소로 들어갔다. 태풍 차바의 등장이었다. 


다음 날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모두 결항되었고, 몇 시간째 휴대폰만 붙잡고 있다 그만 마음을 놓아버렸다. 다행인지 백수였기에 돌아갈 회사는 없었고, 6인실 도미토리에서 혼자 이불을 뒤집어 썼다. 밤새 벼락 맞는 꿈을 꿨고, 눈 떴을 땐 온 방이 물바다였다. 게스트하우스 1층은 아침인데도 깜깜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주방에서는 사장님 부부와 여행자 한 명이 굽지 못한 식빵에 잼을 발라 먹고 있었다. 게스트하우스 대문 한 쪽이 날아갔고, 도로의 야자수는 죄다 뽑혔고, 사장님네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했다. 게스트하우스에 꼼짝 않고 있다가 버스가 다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시내로 나왔다. 터미널 앞 게스트하우스에 자리를 잡고, 동네 목욕탕에 들어갔다. 바닷물이 그대로 탕으로 들어오는 그 목욕탕에는 벌건 흙탕물이 가득했고, 흙탕물 안에서 동네 할머니들과 몸을 데웠다. 태풍이 지나가고 나서는 거짓말처럼 날씨가 더웠다. 오랜만에 지도앱에서 릴리스토리를 검색해봤다. 게스트하우스에서 펜션으로 업종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고 한다. 지도앱 리뷰에는 “아직 있나요?”라는 어느 여행자의 물음이 남겨져 있다. 


7년 사귄 남자친구와의 이별도 제주에서 했다. 시험이 끝났다는 전화를 받자마자 헤어지자고 했다. 처음 가보는 바닷가에서였다. 검은 바위가 많은 바닷가에서 전화를 끊고 낯선 길을 걸어 숙소로 왔다. 몸이 가벼워졌고, 이대로 노숙자가 되어도 행복하겠다는 마음이었다. 이날의 숙소 이름은 온더로드 게스트하우스. 이름처럼 버스를 내리자마자 대로변에 있는 곳이었다. 혼자 있기가 싫어 공용 거실로 나왔다가 혼자 책 읽고 있는 여행자에게 말을 걸었다. 

“저 오늘 헤어졌어요.” 

그는 놀란 기색도 없이 “그랬어요?” 하고는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을 조목조목 알려주었다. 

돌아가면 제일 먼저 집 비밀번호를 바꿀 것. 전 연인이 집 앞으로 찾아와도 절대 만나지 말 것. 행여 울며 매달려도 눈물에 약해지지 말 것. 몇 해 전 이별을 했다는 서른셋의 그는 오랫 동안 알고 지낸 언니 같았다. 우리는 도미토리에 있는 여행자들을 불러 모아, 게스트하우스 옆건물에서 맥주를 마셨다. 


해가 뜰 무렵, 언니와 나는 길 건너 바닷가로 왔다. 전 날 이별했던 그 바닷가였다. 일출을 보고, 동네 골목길을 같이 걸었다. 알고 보니 그 동네, 평대리는 너무나 아기자기한 동네였다.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왔을 땐 날이 완전히 밝았고, 체크아웃 전 언니에게 명함을 건넸다. (직장인은 연락처를 전달할 때 무조건 명함을 주고받아야 한다고 알고 있던 새내기 직장인 시절이었다.) 언니에게선 연락이 오지 않았고, 그의 얼굴도 이제는 잊혀졌다. 서울로 돌아간 나는 언니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집 비밀번호를 바꾸지 않고, 집으로 찾아와 울며 매달리는 전 연인과 재회했다. 언니가 이 사실을 영영 몰라서 다행이다. 


남편이 된 전 연인과 제주를 찾을 때마다 평대리에 꼭 들른다. 까만 바위 위에 올라 “우리 여기서 헤어졌어” 하고 매번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해준다. 세 번째쯤 평대리에 갔을 때, 온더로드 게스트하우스의 불이 꺼진 걸 발견했다. 2층침대에 누우면 동그란 창으로 당근밭이 보이던 그 집은 이제 기억 속에서만 갈 수 있다. 


수많은 여행지 중 여전히 제주를 제일 좋아하지만 이제 혼자 가는 일도, 게스트하우스를 찾는 일도 없다. 터미널 고기국수로 배를 채우고 혼자서 버스에 올라 어디든 다니던 그때의 내가 모르는 사람처럼 멀게만 느껴진다. 도미토리 바닥에 제주도 지도를 펴고는 여행자들에게 이곳저곳을 설명하던 낮, 처음 본 이들의 코고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던 밤, 온갖 알람소리로 잠 깨던 아침. 무심히 하루하루 지나다 보면 그때의 나를 모두 잃을까 봐 녹은 비누를 꼭 쥐는 마음으로 기록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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