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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코인 Feb 16. 2022

프롤로그:가난해서 여행 못 가본 알바생의 청춘기행(3)

  

  도무지 혼자서 대학등록금과 월세를 감당할 수 없었던 나는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가 없었다. 당시에 수능 실패 이후에 유사종교(*당사자가 단체 이름이 밝혀지는 것을 원치 않음)에 빠져 있던 누나는 국가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결국 진학을 포기한 나는 어차피 유명하지 않은 대학이라고, 내 까짓 게 무슨 대학이냐고 되뇌며 스스로를 깎아내리다가 돈이나 벌기로 마음먹고는 독서실 총무가 되었다. 한 달에 150시간 이상 카운터를 지키면서도 25만 원밖에 받지 못했던 그 일을 선택한 이유는 당시에 자존감이 바닥을 쳤던 내가 그나마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뭔가 부당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9개월 동안이나 계속했던 그 일이 내 알바 경력의 시작이었다.  

   

  그다음 해에는 운 좋게 학비가 저렴한 국립대학의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하긴 했지만, 그 뒤로도 알바는 쉬지 않았다. 대학과 대학원을 거치는 동안 야간 편의점, 구내식당, 고깃집, 전단지 부착 및 배부, 도시락 배달처럼 진입장벽이 낮은 알바부터 물놀이 안전요원, 토익사관학교 조교, 지역아동센터 선생님, 19금 웹 소설 교정, 어르신 생애출판사업 멘토 같은 비교적 희소한 알바들도 경험했다. 애써 찾아가서 보게 된 알바 면접에서 떨어진 적은 50번도 넘는다.


  처음 몇 년 동안은 불우한 가정형편이나 돈 때문에 하기 싫은 알바를 하는 스스로의 처지를 비관하다가 나중에는 그마저도 관두게 되었다. 살면서 한 번도 잘 풀리지 않았던 새로 계획한 소설들처럼 처지를 비관하는 태도도 실익이 없다는 생각에 버리고 만 것인지도 모르지만, 분명 그 이유가 다는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에 희망을 아예 품지 않고 살았던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는 알바를 그저 인생에서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기억으로만 치부해 버린다면 알바 하는 나 또한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돼버린다는 자각을 늘 갖고 있었다. 임금 미지급이나 근로계약서 거부, 구두 계약 파기, 폭언과 성추행 등 좀처럼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겪고 나서도 시간이 지나면 깨달음이 남을 거라고 되뇌며 스스로 위로하기도 했다. 각자 맡은 자리에서 성실하게 일하며 선한 영향력을 준 배울 점 많았던 사수들과 동료들을 만나고, 저소득, 한부모 가정 아동들과 애틋한 만남과 이별을 하고, 죽기 전에 유서 같은 글 한 편을 남기기를 바라시는 어르신들에게 글쓰기를 알려드리고, 때로는 상대방에게 상처 주는 짝사랑을 경험하면서 못난 자신을 반성하기도 했다.


  돌아보면 고생해서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느낄 수 있는 깨달음과 반성의 순간이 내게도 분명 있었다. 그동안 몰랐던 사회 문제를 체감하고, 고된 노동 끝에 늘 살아 있음을 일깨워주는 감정을 느끼고, 사회 안에서 내 고유한 위치를 찾아 진로와 직업을 바꿀 수 있었던 것도 다 알바 일을 통해 혹은 알바 현장에서 일어난 일들을 통해 배운 덕분이었다. 오랫동안 글 쓰며 살다 보니 현장에서 배우고 느낀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생각도 마음 한구석에 늘 간직하고 있었다. 이 글의 서론에서 밝힌 것처럼 특별한 감정과 영감을 꼭 지구 반대편으로 여행을 떠나야만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고 싶은 바람도 있었던 것 같다. 아마 그런 바람들을 애초에 마음 속에 품고 있지 않았더라면 오랜 기간의 집필 끝에 완성한 책을 세상에 내보이고 싶다고 결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결심이라는 거창한 표현을 쓰긴 했지만, 물론 28년의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열 가지 유형의 알바와 오랜 소설 쓰기 경력만을 가진 내 사연이 누구나 놀라고 감동 받을 만한 특별한 이야기라는 생각은 지금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내 딴에는 청춘의 우울한 시기를 여행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깨달음과 감정들, 그리고 편하게 해외여행 다니는 잘 난 사람들은 쓸 수 없는 나만의 고유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세상의 그 어느 책보다도 소중하다. 책을 읽은 독자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오래전에 내가 ‘여행의 이유’ 책을 읽고 불행을 긍정할 수 있는 힘을 얻었던 것처럼, 부디 내 책 또한 사람들의 삶의 여정에 작은 도움과 위로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게 중요하겠지만, 그럼에도 남들보다 특히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여운과 울림을 더 주는 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ps. 길게 쓰는 병이 또 도졌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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