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에세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코인 Apr 15. 2022

후기 : 애매한 컨셉과 솔직함 사이에서(1)

(*본문의 글은 '그냥 알바로 여행한 셈 치겠습니다' 저서에 수록된 완성본과 다소 차이가 있음을 알립니다.)


  작년 겨울에 내가 이메일로 투고한 여러 출판사 중 한 곳에서 출간에 관한 조건부 긍정의 답변을 받은 적 있다. ’회의 결과‘ ’출판사 성격‘ 운운하며 아쉽다는 말로 완곡하게 출간을 거절한 것은 다른 출판사들과 마찬가지였지만, 책의 확실한 컨셉을 잡고 수정한 뒤에 다시 보내주길 바란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 것이 한 가지 다른 점이었다. 열 줄 이내의 짧은 답장으로는 뜻을 다 헤아릴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답장 끝에 적힌 번호로 곧장 전화해 보았다.


  예상과 다르게 내게 답장을 보낸 사람은 출판사 대표가 아닌 ‘김xx 작가’(이후에 나눈 대화로 미루어 아마도 자수성가한 기업인이나 특정 분야의 스타 강사처럼 사회적 지위는 높지만 출간 경력은 부족한 의뢰인들의 청탁을 받아 원고의 컨셉이나 구성 등을 정해주거나 때로는 직접 손봐주는 일을 하는 어시스턴트 작가로 짐작 되었다)라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출판사 대표가 바꿔준 김 작가와 대화를 나눈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조금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내 원고를 순서대로 네 편 정도만 읽었다고 밝힌 김 작가는 전체 원고를 안 봐도 다 안다는 식으로 쉽게 판단하고 견적을 내려고 했다.


  “독자들이 서점에서 책 들었을 때 무엇을 가장 먼저 보는지 아세요? 책의 표지 디자인, 제목, 목차, 앞뒤에 간략하게 적힌 책 설명이에요. 그 순간에 훑어보고 이 책이 무엇에 대해 쓴 책인지, 자신의 관심사에 맞는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인지 파악한다고요. 근데 작가님이 쓴 원고는 컨셉이 분명하지 않으니까 독자들이 목차를 보는 순간 갸우뚱할 수 있다고요. 직관적으로 뇌리에 딱 박히는 문구로 설명되기에도 어려울 것 같고요.”


  얘기를 좀 더 들어보니 내 책이 뚜렷한 컨셉을 갖기 위해서는 모든 글이 ’알바 체험담‘으로 일관 되게 쓰이거나 프롤로그(여행 한 번 못 가본 알바생의 청춘 기행)의 컨셉에 맞게 대부분 다 역경을 이겨낸 긍정적인 이야기로 써져야 한다고 김 작가는 생각하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 일관된 컨셉을 갖기 위해 모든 글을 다 손보고 새로운 글들을 추가해야만 한다는 주장이었다. 김 작가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나는 조심스럽게 반문했다.


  “시중에 나온 에세이들 중에 뚜렷한 컨셉 없이 서로 연관성 없는 글 다발을 묶어서 잘 팔리는 책들도 본 것 같은데, 작가님은 그런 쪽보다는 일관된 컨셉, 주제를 갖고 쓰인 게 더 낫다는 말씀이시군요.”


  “말씀하신 에세이는 인플루언서나 유명 작가가 낸 책들이 아닐까요. 그런 책들은 작가 이름만 보고 사람들이 알아서 잘 사가는데, 작가님은 경우가 다르잖아요. 평대나 책꽂이에 놓인 수천 권의 책들 가운데 묻히지 않고, 최소한 비슷한 경험 가진 독자들이라도 물어 오려면, 뚜렷한 컨셉이 필요한 거죠. 출판계에서는 흔히 그물을 넓게 치면 물고기들이 죄다 빠져나간다고 말해요. 뚜렷한 컨셉으로 그물을 촘촘하게 쳐야 특정 독자들이라도 잡을 수 있는 거죠.”



  김 작가의 설명을 듣고 나니 역시 서로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는 생각이 좀 더 강하게 들었다. 나는 나대로 김 작가는 김 작가대로 주관이 확고하다 보니 나 스스로 강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을 내세워 설득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김 작가가 말한 ’첫인상이 좋은 뚜렷한 컨셉을 가진 책’을 만들기 위해 내키지도 않는 수정과 퇴고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나한테도 마음에 들지 않는 예술작품을 만들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겠느냐는 말. 그런 명언을 세상에서 누가 가장 먼저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뜻밖에 최근에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듣다가 알게 되었다. 예술에는 일가견이 없는 스님에게서 들은 말인데도 그 순간 마음에 확 와닿았던 이유는 어떤 예술이 좋은 예술인지 묻는 질문자의 사연을 듣고 명쾌하게 답변을 내린 스님의 통찰력에 감응해서였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단지 내 내면에서 듣고 싶었던 말이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문란한 인간을 가려낼 수 있다는 착각(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