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현 위치와 앞으로 만들어갈 변화에 대한 개발자의 생각
인간은 정말 가성비가 안 좋은 기계이다.
방대한 처리 능력에 비해서 능률이 아주아주 안 좋고, 쉽게 고장 나며 유지 비용도 막대하다. 대충 공장에서 찍어내고 전기만 넣어주면 수십 년은 거뜬히 작동하는 기계에 비해 인간은 일을 하기 위해 밥을 먹고, 교육을 받고, 지치지 않게 친구도 만나줘야 한다. 성능도 정말 처참하다. 연산 능력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수학자를 불러와도 다이소에서 산 2000원짜리 미니 계산기보다 빠르고 정확한 계산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기억 능력은 어떨까? 요즘은 손톱 만한 마이크로 SD카드에 1 테라바이트를 담을 수 있는 시대다. 이는 초고화질 사진 25만 장이나, 영화 250개에 해당하는 양이다. 20년 전에 우리가 흔히 썼던 CD와 비교하면 CD 약 20kg, 1400장 묶음에 저장할 수 있는 정보가 이 떨어뜨리면 찾기도 힘든 작은 칩 하나에 담긴다.
반면 우린 모두 1.5kg의 묵직한 저장 장치를 지녔지만, 이 콩알만 한 장치보다 기억을 못 하고 심지어 시간이 지날수록 데이터가 사라져 간다! 정말 끔찍한 저장 장치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있다고?
요즘 뉴스를 보면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볼 수 있다. 이 녀석들은 내가 평생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믿었던 것들을 해낸다. 사람처럼 대화하는 건 물론이며, 소설도 쓰고 그림도 그린다. 심지어 인간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특정 분야를 집중적으로 학습한 인공지능은 정말 인간의 영역을 초월한 듯 보인다. 언어를 학습한 ChatGPT의 지식이나 미술을 학습한 Stable Diffusion의 그림 실력을 보아하면 정말 허탈함이 느껴질 정도이다.
고도로 발달한 기술은 마법과 다르지 않다.
과거에는 인간의 감정이나 창의성은 절대 컴퓨터로 구현할 수 없을 것이라 여겼지만, 인공지능이 발전하면서 점점 컴퓨터의 연산과 인간의 생각과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라는 책에서는 기술적 특이점이라는 용어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극도로 고도화되어 지구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의 지능을 초월하는 순간을 특이점이라 한다. 이때가 되면 이제 인간은 인공지능의 작업물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인공지능은 종종 인간의 관념을 초월한 결과를 낸다. 장기를 예로 들자면 장기에는 수많은 포진이 있다. 포진마다의 상대법도 있으며, 상황별로의 좋은 행차법 등 어느 정도 공식이 정해져 있다. 이는 수천 년 간 장기를 해온 사람들이 이 때는 이 수가 승률이 좋더라라는 식으로 대대로 발전해 온 진화의 산물이다. 이런 공식이 수억 분의 일의 좋은 수라고 한다면, 인공지능은 그저 장기의 규칙을 설명받은 후, 막대한 연산량으로 천문학적인 경우의 수로 장기말을 움직여보면서 승률이 높은 가짓수를 골라낸다. 그렇게 수조 분의 일, 그 이상의 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굉장히 효과적이지만, 인간이 보기엔 정말 괴상한 수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수를 두고 무리수를 던지며 순간순간 실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지막 결과는 왠지 모르게 우리가 패배하는 것이다. 이 처럼 인공지능의 고도한 발전은 특정 분야를 더 이상 인간이 개입할 수 없는 영역으로 진입시키며 기술만이 기술을 발전시키고, 결과적으로 인공지능만이 할 수 있는 분야로 변모시키는 것이다.
이런 인공지능의 무서운 발전에 인류 멸망의 위기라며 당장 개발을 중지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이러한 발전은 우리에게 결국 풍요로움을 가져다줄 것이라며 환영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의 미래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필자는 결국 대부분 직업이 인공지능에 의해 사라지거나 크게 변하게 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수순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의 발전에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을 직업은 어떤 게 있을까?
아마 물리력이 필요하지 않거나, 적게 필요한 직업이 가장 많이, 먼저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인공지능은 소프트웨어이다. 여타 기계들처럼 공장에서 찍어내는 게 아닌, ChatGPT처럼 물리적인 실체가 없는 프로그램이다. 인공지능이 활약할 분야는 경찰, 인부처럼 물리력보다는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는 변호사, 판사, 약사 등이나 많은 연산량(=생각)을 필요로 하는 수학자, 회계사, 화가 등이 될 것이다. 연산의 양, 즉 직업의 난이도도 중요한 척도가 될 수 있겠지만, 직업별로 요하는 연산량의 차이는 컴퓨터의 처리 성능 관점에선 크게 의미가 없으므로 결국 시간문제일 것이다.
물론 물리력이 주가 되는 직업 중에도 수요가 많아 대체 됐을 때의 경제적 이점이 많은 청소부, 배달원 같은 직업은 지금도 대체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인공지능의 발전에 따른 것이 아닌 단순한 인력 -> 기계로의 단순한 하드웨어적 발전이다.
그래도 인간이 해야만 의미가 있는 직업은 절대로, 혹은 아주 오랫동안 대체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가수를 예로 들면 지금도 홀로그램이 무대에서 춤추고 공연하는 일본의 "보컬로이드"나, 한 때 여러 의미로(?) 화제였던 TV 프로그램 "아바타싱어"를 보면 현재에도 가수를 탈인간화하려는 움직임이 있고 미래에 혹시나 인공지능 가수가 주류가 될지도 모르지만, 아무래도 로봇이나 홀로그램보다는 사람이 무대에 서서 공연하는 것을 원하는 수요는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공장에서 만든 쿠키가 더 싸고 맛있지만, 수제 쿠키에 대한 수요가 끊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격투기를 좋아하는데, 서로서로 약점을 노리며 수 싸움을 하는 것, 좋아하는 선수가 점점 발전해 가는 모습을 즐기는 것이지 모든 것이 완벽한 로봇들의 철 조각 튀는 싸움은 별로 보고 싶지 않다. 이 처럼 인간이 불완전하기에 의미가 있는 직업 또한 오래 살아남지 않을까 생각한다.
글을 쓰면서 여러 자료를 찾아보니 생각보다 빠른 시일 내에 인공지능이 우리 삶에 큰 변혁을 가져다줄 것 같다. 산업혁명이 일어났을 때 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새로 생겨났던 것처럼 일자리의 패러다임이 뒤바뀔 것이다. 파일럿이라는 직업이 처음 생겨났을 때, 파일럿은 이륙할 때부터 목적지로 비행하여 착륙할 때까지 모든 과정을 수동으로 해내야 하는 고된 직업이었다. 시간이 흘러 오토파일럿(자동항법장치)이 개발된 후에는 대부분 비행 과정을 컴퓨터가 수행하고, 파일럿의 직무는 오토파일럿을 사용하고 수동 조종이 필요한 상황이나 비상 상황에 대처하는 것으로 변했다. 이처럼 오늘날의 직업들도 인공지능이 대부분 업무를 수행하고 우리는 그걸 관리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을까?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
사진출처
1) https://mashable.com/review/sandisk-extreme-1tb-microsd-card-review
2) https://www.elle.co.kr/article/70561
3) https://blog.naver.com/son2611/221928360995
4) https://papers.ssrn.com/sol3/papers.cfm?abstract_id=4389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