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공단의 밤
20년 전, 주말 밤 9시가 넘으면 성서공단 산업도로는 다른 세상이 되었다.
낮에는 공장 트럭들이 오가던 그 길이, 밤이 되면 배기음과 타이어 소리로 가득 찬 서킷으로 변했다. 가로등만 켜진 적막한 대로변에 하나둘 차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 공기가 달라졌다. 휘발유와 타이어 타는 냄새, 그리고 무전기에서 흘러나오는 지지직거리는 소리.
"SRT-6님, 카피되십니까?"
나는 크라이슬러 크로스파이어 SRT-6를 몰고 그곳에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예쁘장한 쿠페였지만, 속에는 메르세데스-벤츠 AMG의 심장이 뛰고 있었다. 3.2리터 V6 슈퍼차저. 330마력.
그날 밤, 포르쉐 카이엔 터보가 나타났다.
450마력짜리 괴물이었다. 차주는 자신만만하게 엔진을 공회전시켰고, 주변이 술렁였다. 누군가 내 차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크로스파이어? 저건 그냥 예쁜 차 아냐?"
신호가 떨어졌다.
슈퍼차저 특유의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와 함께 튀어나갔다. 카이엔의 450마력은 2.4톤의 거구를 끌고 가느라 허우적거렸고, 내 차는 가벼운 차체에 즉발 토크를 쏟아내며 앞서 나갔다. 백미러 속 포르쉐의 헤드라이트가 작아졌다.
400미터 지점, 나는 비상등을 켰다.
포르쉐 차주가 물었다. "마력이 더 높은데 어떻게..." 나는 짧게 대답했다. "무게당 마력비요."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날 밤 몇 대를 더 이겼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에 남는 건 승리보다,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이 엔진룸을 들여다보며 수군거리던 장면이다. 브랜드가 아니라 물리 법칙이 이기는 밤이었다.
그러다 멀리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상황 발생. 올 해산."
수십 대가 일제히 시동을 걸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나도 공단 골목길 사이로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심장이 뛰었다. 두려움인지 흥분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 밤의 배기음과 무전기 소리가 가끔 귀에 들리는 것 같다. 아드레날린이 판단력을 삼키던 그 순간들. 다시 돌아가고 싶은건 아니다. 하지만 그때의 나를 부정하고 싶지도 않다.
젊음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엔진을 끄지 못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