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역경에 항복하고 싶지 않다면
근대화의 흐름 속에서, 우리나라의 가장 큰 이데올로기는 일본이었다. 어느때보다 고통스러웠던 격동의 20세기를 겪으며 그야말로 폐허가 된 우리의 국토 옆에는 보란 듯이 각종 시장을 휩쓸며 호황 가도를 달리던 일본이 있었다. 어느 누구도 재기 불가능할 것이라고 보았던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우리는 '잘 사는 이웃 나라' 일본을 본보기로 삼아야 했다. 일본의 기술력을 따라잡기 위해서 그들의 기술을 배워야 했고, 배우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훔쳐서라도 가지고 와야 했다. 수많은 아버지 세대들의 노력으로 국내의 많은 기업들이 일본의 선도 기업들을 따라잡거나 앞서기 시작했고 마침내 세계 경제대국의 반열에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넉자를 올렸다. 그러나 화려했던 경제 성장의 이면에는 저출산과 고령화와 같이 현재의 일본이 겪고 있는 사회적인 문제 현상도 함께 뒤따랐고 그 실체가 천천히 수면 위로 드러나 더 이상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과거의 우리가 일본을 벤치마킹했던 것처럼 중국이 우리의 것들을 빠르게 흡수하며 무서운 속도로 쫓아오고 있는 지금의 상황 속에서 짧지 않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던 찰나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저자는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1940년대 초, 대학교를 졸업한 후 군에 입대하여 수년간 일본 제국군의 장교로 복무하면서 동남아 전선에서의 전투을 지휘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전쟁 포로가 되어 수용소에서의 생활까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국 군대가 패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냉소적이고 비판적으로 기술하였다. 참전 당사자의 시각에서 군 내부의 상황과 전장에서의 팽팽한 긴장감을 상세하게 그려낸 점 또한 개인적으로는 후한 점수를 주고 싶은 부분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한민국 현대사의 이데올로기의 한 축이 일본이었고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많은 시스템이 일본으로부터 차용되었다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의 해법을 원인 제공자인 일본에서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페이지를 몇 장 넘기기도 전에 당시의 일본 육군 조직 내에서 저자가 느낀 문제의식과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 내 조직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한계가 유사하다 못해 정확히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포로수용소에서 본토로 송환되는 인양선에서 만났다는 한 제대군인과의 대화는 자못 흥미롭다.
학교 졸업 후 바로 입대하여 전쟁터와 수용소에서의 경험이 전부였던 나는, 곧 돌아갈 '전후 일본 사회의 실정'이 매우 궁금했다. 제대군인 출신의 그는 지금 후생성 국가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이미 2년 남짓한 사회 경험을 한 '선배'였다. 그에게도 군대와 전쟁터밖에 모르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매우 좋은 인생 선배였고, 그의 설명은 귀에 쏙쏙 들어왔다.
그는 우선 육군 말단 조직의 실정을 주의 깊게 하나씩 짚어가며 간략히 말했다. "그야 뭐. 군, 사단, 연대라 해도 이들은 퍼져나가는 신경계 같은 존재이고 실제로 움직이는 단위는 제1선의 중대였죠. 소위 말하는 수족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실제로 이를 장악했던 것은 준위, 상사였고...(중략) 장교는 이들을 어떻게 자유자재로 움직일지 고민하는 거구요. 이를 위해 전술을 배우고 교육 훈련을 실시합니다. 그러나 이런 조직 자체가 당면한 적 또는 전쟁터에 적합한지 여부는 어느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어요."
이를테면 '자전'하는 조직을 어떻게 움직일 지에 대한 고민은 했을 지 모르나, 누구 하나 자전하는 조직의 내실이 과연 목적에 상응할 만큼 합리적인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위 ‘공전’을 하기 위해 명확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앞으로 전진해 나가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일상의 매너리즘에 빠져 변화를 귀찮아하고, 혁신을 외치면서도 기존의 틀을 고수하며 '자전'하는 것에 중심을 두는 우리 조직 내부의 태도와 같았다. 장기 말을 어떻게 움직일 지에 대해서의 고민은 있어도 근본적으로 말의 질을 바꾸고 새로운 기능을 부여해서 변화에 대처할 생각은 상상도 못 하였다는 저자의 말은 윗선의 '고지식함'을 꾸짖은 것일까, 아랫선의 '침묵'을 겨냥한 것일까.
뒤이어 기술되는 '누락', '사물 명령' 그리고 '기백'과 같은 단어들은 일본군이 미군에게 패퇴한 군부 조직 내의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꼽힌 단어들이다. 기본적으로 '누락'이라는 현상은 '숫자 검사'를 대하는 군의 태도에서 시작됐다. 일반적인 재고 정리(장부상의 숫자와 실제 물품의 숫자가 일치하는지 여부를 조사)와 유사한 이른바 '숫자 검사'의 문제점은 검사 그 자체보다는 검사내용과 의미 부여에 있었다. 숫자만 맞으면 된다는 태도를 취하면서 내실은 전혀 따지지 않는 형식주의, 이것이 고무줄 숫자의 근간이 되었다. 일본군 사전에 '분실했습니다'란 말은 없었다. 분실하면 숫자를 맞춰서(훔쳐) 와야 했고 숫자 검사 명령이 하달되면 '숫자가 맞습니다'라고 보고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다시 말해 숫자로 대표되는 전쟁 물자의 속성에 대한 조사나 전략적인 탐구에 그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고 상부에서 받고싶어 하는 내용의 형식적인 보고서를 올리기만 하면 그걸로 되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이것이 일본 육군 내에서 위아래로 망라하며 철저히 잠식해 들어간 고무줄 숫자였다.
"형식화된 군대에서는 '실질보다는 숫자, 숫자만 맞으면 다른 건 다 괜찮다'라는 사상이 위아래 할 것 없이 철저히 깔려 있다. 고무줄 숫자로 만들어진 비행장은 한번 내린 비로 인해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될지라도 참모본부의 도면에는 그럴듯한 비행장으로 그려졌다...(중략) 필리핀에 가면 무기가 있다는 말에 빈손으로 일본을 출발했지만 도착해보니 총 한 자루 없는 게 현실이다. 어쩔 수 없이 죽창을 든 군대가 되었다. 일본의 최고 작전조차 이런 식으로 숫자 중심이었던 것이다."
이와 유사한 일들을 오늘날 우리사회의 조직 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필드의 고객으로부터 전달되는 날것 그대로의 뜨거운 표현이 내부의 중앙 기구로 전달이 될 때 다소 민감하거나 누군가의 책임 소재를 가려야 하는 부분 등은 순화되어 모호하고 미적지근한 형태로 보고되고는 하기 때문이다. 나의 시각에서 이것은 의사 결정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이 분명함에도 조직의 '자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왕왕 행해지던 현상이었다. 저자에 의하면 일본군이 패망하게 된 원인 중에 하나임에도 말이다.
한편, '고무줄 숫자' 보고 뿐만 아니라 명령체계 역시 그 진위를 가려내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지휘관들은 ‘그 명령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마지막 순간까지 항상 의심해야만 했다. 당시에 천황의 군대 내에서 만연했던 '사물 명령'이 이를 잘 설명해 준다. '사물 명령'이란 보급품 지급처럼 점진적으로 위에서 말단까지 내려오는 명령이 아닌 또 다른 형태의 '명령'으로, 다시 말해 명령권자가 아닌 상관 개인이 명령권을 사유화 한 뒤 이를 근거로 자의적으로 내리는 명령이라는 의미이다. 좀 더 구체적인 형태로는 정식 명령권자는 전혀 모르는 일인데도 당당히 명령이란 명목으로, 때로는 구두로 때로는 정식 문서로 하달되는 경우를 말한다. 전후 전범 문제 처리에 있어서, 형식적으로는 명령이 당당히 발령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명령은 내린 적이 없다"라고 증언해서 '부하에게 책임을 전가해 살아남은 비열한 지휘관'으로 몰린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진보 중령은 정식 문서가 와도 소위 제 육감을 발휘하여 '누군가가 멋대로 만든 명령(사물 명령)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힌트는 바탄 전투가 끝났을 때 난데없이 포로를 죽이라던 '군 명령', 즉 '사물 명령'에서 얻었다. 오늘날에는 이 사물 명령 발령자가 최고 통수부 파견 참모인 쓰지 마사노부 중령이었다는 점이 밝혀졌다...(중략) 따라서 나 같은 사람들은 쓰지 마사노부가 전후 화려하게 복귀하는 모습에 형용할 수 없는 의아함과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배후에는 무언가 일본군이나 전후 사람들 모두가 지닌 약점이 있는 게 틀림없다...
업무 하달은 있었지만 하달된 업무 수행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의 사후 책임자는 없거나 엉뚱한 사람이라는 불편한 진실이 비단 우리 조직 내 문제만이 아니었다는 점에 나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의사 결정과 지시 하달이라는 권한에는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것임이 망각된 채 무분별한 권한의 남용과 양도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항상 아랫사람들이었다.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용케 화를 피할 수 있었으나 대부분은 그러지 못한 채 '굴림'을 당했다. 이것은 개인의 도덕성에 따른 문제이므로 조직 차원의 해법은 없다는 속 편한 결론의 이면에 무분별한 '사물 명령'의 수혜자가 비웃고 있는 듯하다.
이 수혜자들은 항상 나름의 권력을 계속해서 유지해 왔는데, 저자는 이런 사람들이 항상 유지해온 '권력'의 수수께끼에 대한 적절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일종의 허구 세계로 사람들을 끌어들여서 그 세계를 현실이라고 믿게 만드는 이상한 연출력이 그 답이라는 것이다. 이 연출력의 기본이 되는 것으로 '기백'이라는 묘한 단어가 등장한다. 이 단어는 당시 육군들 사이에서는 어떤 사람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기준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기백'이란 무엇일까. 일본어 사전 고지엔의 정의에 따르면 '그 어떤 것에도 굴복하지 않고 맞서는 강한 정신력'이다. 그러나 실제 이 '기백' 역시 유형화된 속이 텅 빈 표현 형식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아무런 의욕이 없는 병사라도, 전신에 긴장감을 주면서 정맥이 드러날 만큼 큰 소리로 말하고, 절도 있고 똑 부러진 동작으로 연기하듯이 과장된 군인 제스처를 하면 그것을 '기백'이 있다는 증거로 여겼다...(중략) 내심 다른 무엇을 생각하건 뒤에서 혀를 내밀건 간에 '연기·연출'만 잘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모든 게 통하는 사회였다...
분명,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그 어떤 것에도 굴복하지 않고 맞서는 강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연출로 만들어진 모습에 불과한 '기백 과시'는 이것과 전혀 관계가 없다. '연출된 기백'은 과장된 확신과 제스처, 그리고 무모하고 무의미한 '사물 명령'으로 이에 대한 반론을 사전 봉쇄하기 위해 끝없이 욕설과 비방을 계속하게 만들 뿐이다. 반면에, 진정한 정신력(기백)이란 이러한 기백 과시자의 압박을 태연하게 무시하고 욕설과 비방에도 눈길도 주지 않으며 몇 번이고 도전해서 완벽을 향해가는 노력이라고 저자는 정의한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정신이 가장 부족한 '기백 과시자'들이 멋대로 날뛰며 모든 방면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데 저자는 이들을 '암 덩어리'라고 표현했다.
저자에 따르면, 한 조직 내에서 이런 현상을 쉽게 감지하는 집단은 의사 결정 권한을 지닌 상위 직급이 아니라 오히려 조직 내의 하급 실무자 집단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의사결정 권한을 지닌 팀장 이상 상위 직급의 경우 이미 일종의 노이로제에 걸린 상태인 관계로 오히려 그런 실태를 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신들린 언변으로 초인적인 능력을 뽐내며 호언장담을 하는 유형의 사람에게 심리적으로 의존하면서 자신의 전문 분야에 상세히 개입시키는 방식으로 쉽게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조직뿐만 아니라 어느 조직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익숙한 현상이지만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바로잡기엔 쉽지 않은 이 씁쓸한 상황이 또 다른 일본군 패망의 원인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1945년 연합군이 일본 본토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면서 동시에 반사적으로 선언된 일본의 항복은 사실 전쟁을 준비할 때부터 이미 예견된 상태였다고 봐야 함이 옳을 것 같다. 일본군의 대미 전투 교범은 모두 반세기 전인 러일전쟁 당시의 교육과정을 그대로 가져다 쓰던 수준이었고 승마술, 말 조련법 등이 대부분이었던 이 교범의 내용은 정글 속에서 펼쳐지는 전투를 대비하기에 현실과 상당한 괴리가 있었다. 전투 경험자들로부터 전해 들은 미군의 신출귀몰한 전술과 전략에 탄복하면서도 ‘기백’이라고 불리는 정신 무장 외에는 대응 솔루션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아시아’를 서방 세계로부터 해방시킨다는, 아주 당찬 슬로건 아래 작전이 전개되었음에도 점령지를 통치하기 위한 전문적인 정보지식이 전무했다. ‘숫자’뿐인 보고서에는 필리핀 등지의 동남아 국가들을 삼모작으로 일 년에 세 번의 쌀 수확이 가능한, 식량이 풍부한 ‘농업 국가’로 기록했다. 전선에 배치된 군이 하달받은 ‘식량은 현지에서 조달하라’는 명령은 ‘숫자’ 보고서에 근거한 ‘형식’에 불과한 것일 뿐이었다. 실제로 당시 필리핀은 전 세계의 마(麻) 생산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농산 국가’ 였으며 일 년에 약 300만 섬의 쌀을 수입해 조달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전쟁으로 무역 통제가 분명했을 필리핀에서의 미군 전투 기록에 따르면 ‘아사(餓死)에 의한 일본군 전멸’이라고 보고된 내용이 심심찮게 보였다는 것이 이해가 가는 대목이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몰랐다’ 보다도 더욱 심각한 상황이었는데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는 착각 속에 빠져 있었던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에게 저자는 ‘그들은 미국과 싸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일갈한다.
우리에게는 이 방식이 옳다는 믿음을 줄만한 철학이나 전통은 물론이고 각자 마음속에서부터 절대화할 이데올로기조차 없었다. 스스로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믿게 하기란 불가능하며 상대방의 사회 체계를 완전히 파악한 다음 약점을 파고들 수 있어야만 이런 방법도 가능하다. ‘자전’하는 자신들의 군 조직에도 개입 못하는 일본인이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강력하고 날카로운 문체로 일본군이라는 거대 조직을 진단하는 저자의 문제의식을 해석하며 혹시 일본군이라는 이름을 빌려 ‘기백’과 ‘사물 명령’의 껍데기가 지배하고 있는 일본 사회의 전반적인 현상을 저자는 비판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일었다. 책을 읽으며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의 일면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던 이유와 그것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했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자유’, ‘행복’, ‘정의’와 같은 관념들의 본질을 진지하게 탐구하여 인생의 ‘기둥 철학’을 세우고 나만의 신념을 굳건히 하지 못했다.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정해진 답을 골라내기만 하면 되는 ‘오지선다’ 교육 시스템과 승자가 독식하는 과열된 사회 경쟁 시스템의 틀 속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많은 이들도 이런 점에서는 나와 비슷할 것이다. 압축적으로 빠르게 전개된 경제 발전 속에서 개인과 단체의 사유(思惟) 과정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 사이 우리 사회도 연출된 ‘기백’을 과시하는 일부 ‘쓰지 마사노부 중령’들에 의해 ‘자전’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의와 불합리의 맹공에 눈 뜬 봉사와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나약한 자아에 대한 반성과 이 맹종의 ‘자전’으로부터 벗어나고픈 독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