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타의 책 002. 88만원 세대

세상에 무지했던 88만원 세대의 뒤늦은 반성

by 현자타임

2005년 11월 어느 날, 평소와 달리 이 날은 잠이 오지 않아 긴 밤을 뒤척이다 이른 새벽에 눈을 떴다. 모친께서 챙겨주신 도시락을 옆에 끼고 찹쌀떡을 한 입 베어 물며 짐을 주섬주섬 챙겨 현관을 나섰다. 해가 짧아진 탓인지 내가 일찍 일어난 탓인지 땅거미가 아직 짙게 드리운 골목을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걸으니 몸이 굳어버릴 것만 같았다. 심드렁한 기분으로 그렇게 계속 걷다 보니 어느덧 목적지인 낯선 학교 앞에 다다랐다. 언제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었는지, 같은 교복을 입은 후배들이 교문 앞에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떨고 있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을 반갑게 건네었다. 활기차게 차를 건네는 후배들 옆에서 차분히 격려와 악수를 해주시던 교감 선생님 특유의 희고 단정한 머리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이상하리만치 짙고 검었던 교감 선생님의 송충이같은 눈썹과 쇳가루를 긁어내며 나오는 듯한 마초적인 목소리, 그리고 뜨뜨묵직했던 오른손의 악력은 내 기억 속의 편린이 되어 아직도 이따금씩 떠오르곤 한다.


이 날 치렀던 대학 수학능력 시험은 나를 포함한 55만 명의 수험생들 개인에게 있어서 인생의 성패를 가늠 짓게 할 처음이자 중차대한 관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일류대학의 진학률로 그 명성이 대변되는 수 천 개의 고등학교와 수 만개의 입시학원들, 그리고 소위 '사'자 직종과 굴지의 대기업에 자녀가 취직하길 열망하는 수십 만의 각 가정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연례행사이며 가족행사였다. 그래서였을까, 고삼 수험생들이 필수 과정도 아닌 그저 상위 교육기관에 진학하기 위해 치르는 시험 '따위'에 중고등 과정 6년의 시간을 쏟아부어야만 했던 것과 시험 당일엔 무려 공권력을 동원해 교통량 통제까지 하는 범국가적인 행사가 되어야 하는 것이 타당한 지에 대해서 손톱만큼의 의문조차 가져보지 못한 채 나는 그렇게 '미성숙'한 대학생이 되어버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노력한 만큼에 상응하는 대학에 진학했고 부모님과 선생님의 바람대로 취업에 유리하다는 ‘공학과’를 선택했다. 부끄럽지만 돌이켜보면 내 인생 처음의 20년은 내가 끼어들 여지조차 주어지지 못한 채 정해진 길을 걸어야 했다. 그러나 더 부끄러운 사실은 남은 80%의 인생은 적어도 내가 관여할 여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애석하게도 수험생활로부터의 해방감과 목표 대학에 진학했다는 안도감, 그리고 당시에 있었던 독일 월드컵이라는 아주 좋은 상황적 핑계가 안겨주는 쾌락에 삶의 주도권을 제3의 누군가에게 또다시 빼앗겨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기득권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기성사회가 견고하게 구축해놓은 '젊음의 착취' 물결에 표류하듯 휩쓸리며 방향을 잡지 못하고 이른바 '스펙 쌓기'와 '열정 페이' 사업에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던 우리가 얼마나 한심해 보였을까. 이런 우리 세대를 '88만 원 세대'라고 일컬으며 우석훈 경제학 박사는 나를 비롯한 당시의 20대와 사회를 뼈아프게 진단하며 동시에 통렬하게 비판했다. 반면에 세상에 대해서는 물론 나 자신에조차도 무지했던 나는 이 책의 존재 역시 알지 못한 채 출간된 지 11년이 지난 2018년, 한층 더 '미성숙'한 직장인이 되어버린 오늘날에 와서야 '88만 원 세대'를 찾아 읽어보게 되었다.


책의 내용은 적잖은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무의식적으로는 느끼고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누군가로부터 '착취'나 '이용'당하고 있다고 의식적으로 인지해 본 적이 없었고 이로 인해서 세대 내 경쟁뿐만 아니라 세대 간 경쟁에도 휘말려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몰랐기 때문이다. 더욱더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우리 ‘개미’ 들은 개미귀신이 파놓은 개미지옥 같은 사회에서 구덩이에 빠져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 서로 밟고 올라서는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지만 마지막까지 살아남더라도 결국 개미귀신에게 잡아먹히는 신세가 될 뿐이라는 내용이었다. 저자는 우리 세대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경쟁 상태를 개미지옥에 빠진 개미의 예를 들어 이와 같이 표현한 것이다. 확실히 직장에서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토익 점수 10점이 가져오는 결과적 차이는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들보다 토익 점수 10점을 더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던 우리는 그동안 중요한 무엇인가를 놓쳤음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 개미지옥의 설계자이자 개미귀신으로 비유되는 기성세대는 과연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저자는 박정희·전두환 정권 때 10~20대를 보낸 유신 세대와 386 세대를 가리켜 현재 기득권을 가진 기성세대로 분류했다. 1970년대 대한민국에서 북한과의 경제적 경쟁이라는 사회적 동기를 중심으로 유신 체제가 형성되고 있을 때 ‘세계 경제’라는 거대한 공장은 미국식 '포디즘'에 기반하여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활발히 가동되고 있었다. 분업화를 통한 대량생산이 만들어낸 '포드'식 자본주의의 바람은 신흥 시장으로서 이제 막 돛을 올린 대한민국에도 순풍으로 다가왔다. 값싼 공산품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수출하여 역사상 유래 없는 초고속 경제 성장을 경험하면서 '포디즘'과 '북한'이라는 특수한 정치적 상황이 함께 버무려져 다양성보다는 표준화된 것이 선호되고 획일화된 사고방식이 강요되는 문화가 1970년대 유신 세대의 저변에 형성되었다. 또한 이들은 북한의 사상적 위협 앞에서 서로 뭉치도록 검열된 교육을 받았고 정부가 동원하면 기꺼이 자신의 것을 내어놓도록 정치적 훈련을 받았다. 동시대에 함께 이루어진 경제 성장에 대한 향수(鄕愁)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국가에 의해 철저히 통제된 유신 세대의 밑바탕에는 사회적 협의나 대화의 방식보다는 경제적 성장률을 높이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보다 빠르다고 보는 경향이 넓게 확산되었다.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오늘날의 유신 세대는 개별적으로 보면 우리의 부모 세대이기는 하나 사회적으로는 공공과 민간 기업의 주요 요직에서 우리 세대가 누려야 할 경제적 몫을 가장 많이 노리는 착취 세대로 저자는 구분했다.


10·26 사태로 사실상의 유신 체제가 무너지고 1980년대에 들어서며 전두환 중심의 신군부 정권이 대한민국 정권의 메가폰을 잡게 되었다. 당시의 국제 사회에서는 2차 오일쇼크로 인한 경제 불황으로 탈규제, 탈복지, 그리고 재산권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의 움직임이 태동하고 있었다. 서방의 신자유주의자들과는 달리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반대하지 않았던 전두환 정권은 국가 주도 보호무역, 기업의 통폐합 등 지난 정권의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자유주의적 요소를 선별적으로 도입하여 경제 성장을 유도했다. 그러나 동시에 노동자를 탄압하고 임금 상승을 억제하는 등의 반노조 정책을 실시하며 초고속 성장으로 인한 경제적 이익을 실질적으로 고르게 분배하지 못한 채 바야흐로 '재벌의 시대'를 열어주는데 일조하기도 했다. '반공' 프레임을 이용한 사회 시스템의 통제에 이어 일부 기업의 경제적 결과물에 대한 독점으로 이 시기에 20대를 보낸 386세대의 정치적 불만은 극에 달했고 '독재 타도'라는 깃발 아래 그 어떤 세대보다도 굳건한 결집력을 보여주었다. 일찍이 자신들의 대변인을 정치적 정점에 올린 386세대는 굳건한 단결력을 보이며 어느 세대보다 견고한 사회적 보호장치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의 프랑스 '68세대'가 전국의 대학을 국유화하며 자본주의의 성과를 다음 세대와 공유하여 많은 기회를 제공한 것과는 달리 386세대는 오히려 학벌 사회와 엘리트주의를 더욱 강화시켰다. 더욱이 386세대가 아이를 낳게 되면서 '원정 출산'이나 '조기교육' 열풍이 불며 대한민국 사회는 사교육을 매개로 한 무한경쟁에 빠져들게 되었다. 현재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다음 세대'와 관련한 여러 문제들의 절반 정도는 지금의 386세대가 부모가 되면서 생겨난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저자는 진단했다.


화려했던 경제적 황금기를 보내며 IMF 이전에 이미 사회 곳곳에 진출한 유신세대와 386세대는 오늘날의 경제 성장이 예전 같지 않자 상당히 많은 조직에서 그 문을 걸어 잠그고 다음 세대가 참여할 기회를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책 전반에 걸친 자조적인 문체를 통해 읽어낸 저자의 생각을 보면 기본적인 생활의 비용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입으로 생활하면서 앞 세대들과 경쟁해야 하는 우리 '88만 원 세대'를 동정하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선배 세대가 만들어놓은 개미지옥 같은 함정에 스스로 빠진 채 혼자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밟고 짓누르는 우리 세대 내부의 현상을 관찰하며 이 세대 간의 '착취 현상'이 고쳐질 것이라는 전망에 회의적이다.


나는 유신 세대의 부모를 두고 386세대의 선배를 둔 평범한 88만 원 세대의 일원이다. 중고등 교육과정 6년을 대학입시를 위한 공부에 시간을 쏟았고 좋은 성적을 거두어 일류대학에 진학하는 것을 지상 최대의 미덕으로 삼았다. 학교는 물론 가정에서도 유신 정권에 대한 긍정적인 내용을 위주로 교육받았고, 선거철이면 대중매체들은 더욱 노골적으로 잘못된 지역감정을 선전하여 나는 '나'를 통해서가 아닌 '그들'을 통한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법을 먼저 배우게 되었다. 독서를 통한 사유의 기회는 입시와 학원이라는 핑계로 쉽게 포기해야 했고 대신 그 자리를 참고서와 학습서로 대체하고 말았다. 대학에 진학은 하였으나 주입식 교육으로 인한 지적 소화력의 상실은 급변하는 사회에 대한 면역력과 386 선배 세대들과의 경쟁력을 한 단계 떨어뜨렸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무엇인가에 쫓기고 있다는 생각을 항상 마음속에 품은 채 사회가 요구한다고 생각하는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뛰어왔다. 달리는 가운데 점점 뒤로 처지는 주변의 동료들을 보며 안타까움보다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나보다 앞서 있는 사람들을 향해 더욱 박차를 가했다. 나를 비롯한 우리 세대의 많은 사람들은 이 '비인간적인 레이스'에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명확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안정된 직업을 갖기 위해 '의대'와 '법대'를 진학하고 높은 연봉이 보장된 대기업에 '취업'하기 위한 학과를 선택했던 우리들의 목표와 명분이 철저한 개인주의에 의해 정의된 것이라면 우리의 '다음 세대'는 더욱 고통스러운 레이스를 겪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달리던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이 출간된 지 정확히 11년이 지났다. 당시 20대였던 '우리' 세대를 향한 사회의 부당함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나와는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우리 세대의 다수는 기본적인 생활의 해결조차 어려울 정도의 월급을 받으며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용케도 모르고 지냈다. 그만큼 우리 세대는 386세대만큼의 단결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유신 세대의 결집력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저자는 우리 세대를 '88만 원 세대'로 규정하며 기회가 균등하게 작용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 문제에 대한 일차적 해결책이 다름 아닌 우리 세대에게 있음을 시사했다. 개미지옥에 빠진 개미들에게는 함께 힘을 합쳐 개미귀신과 대적하여 싸우는 방법만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죄수의 딜레마'가 불러오는 현실적인 한계가 집단의 결속에 치명적인 작용을 한다는 점을 들어 이것이 현실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함께 전달했다. 그래서 저자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한국 자본주의가 배우는 것'이야말로 이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을 푸는 첫 번째 단초라고 강력하게 주장을 펼치며 글을 맺었다. 유신 세대도, 386세대도 시간이 흐르면 결국은 기득권의 지휘봉을 우리 '88만 원 세대'에게 넘겨줄 것이다. 이 지휘봉을 또 다른 착취의 시대를 열기 위해 휘두를 것인가, 유럽형 사회들이 갖추고 있는 것처럼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시대를 개척하는 데 사용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우리의 손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