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타의 책 004. 노자와 21세기

1. 들어가며

by 현자타임

작년에 첫 아이가 태어났다. 신기하게도 약속이나 한 것처럼 예정일에 맞춰 세상에 나와 울음을 터뜨려주었다. 아빠가 되어가는 과정이랄까, 생활의 포커스가 나에게서 아기에게로 옮겨감을 느꼈다. 육아를 하면서도 독서와 글짓기는 멈추지 말자며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었는데, 손바닥 만한 놈이 어찌나 손을 많이 타는지 초보 아빠의 자유시간은 그렇게 오롯이 아기에게 집중되어야만 했다.


사실 남이 쓴 책을 읽고 거기에 대한 감상이랍시고 몇 줄 적어낸다는 것에 특별할 것이 없지만서도 아기가 어지간히 보채다보니 이제 글과는 자연스레 멀어지나 싶었다. 그런데 어느날, 우연한 계기로 보게된 유투브 영상 하나가 나에게 지금 떠오르는 생각들은 꼭 글로 남겨야 한다고 쩌렁쩌렁한 외침을 주는 것만 같았다. 삼국지를 주제로 한 신작게임의 오프닝 영상이었다.


https://youtu.be/QX-jSyH27B4



어린시절부터 원체 삼국지를 즐겨 읽었던 터라 흥미롭게 영상을 시청했는데, 영상의 전반에 걸쳐 흐르는 노래의 가락이 며칠동안 귓전을 계속 멤돌던 것이 아닌가. 급기야 가사를 외워 혼자 흥얼거리다가 아내도 함께 외는 지경에 이르러 버렸다. 이쯤 해서 잠깐 2분 남짓의 영상을 보고 오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음악도 음악이거니와 영상의 내용 또한 우리가 익히 알고있던 것과는 사뭇 다른 관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자,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지러움이 극에 달했던 후한말(後漢末)의 시대로 잠시 눈을 감고 떠나보자. 국가가 부패하고 제 기능을 상실하자 백성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았고, 각지에서 도적떼까지 들끓었다. 내 기억 속에서 황건적이라 불리던 이 도적떼는 야망을 품고 뛰어든 군벌들의 세력만 키워주고 두들겨 맞다가 사라져버리는 - 그러니까 분위기를 띄울 요량으로 오프닝 무대에 잠깐 출연하고서 퇴장해버린 - 사이비 종교단체이자 나쁜 악당 정도로만 각인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2분 남짓의 영상은 피폐해진 삶을 참다 못한 농민들이 황색 두건을 쓰고 봉기할 수밖에 없었던 정황을 황건적의 수장인 장각(張角)의 시선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고, 이들을 단순한 도적떼로 치부했던 나는 이 영상을 보고 꽤나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그렇게 삼국지를 읽어댔음에도 눈으로만 보았지 마음을 통해 읽지를 못했고, 그랬기에 살아서 꿈틀대는 인간사의 숨결을 느낄 수가 없었던 것일까. 단순한 도적떼의 무리였다면 어떻게 중국 대륙 전체를 아우르는 저항으로 번질 수가 있었을까. 부끄러운 마음에 조금 더 검색을 통해 찾아보니 황건적, 즉 태평도의 난에 대해 사학계에서는 이미 다채로운 평가가 있어 왔음을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역사 교과서에 ‘황건적의 난’이 아니라 ‘황건기의(黄巾起义)’라고 부르며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내용도 찾아볼 수가 있었다.



그래서 배경에서 흐르던 노래 한 곡이 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나 보다. 노래가사도 찾아보지 아니할 수가 없다!



大道废、有仁义
智慧出、有大伪
六亲不和、有孝子
国家昏乱、有忠臣。

큰 도가 없어지니 인의가 있게 되었다.
큰 지혜가 생겨나니 큰 위선이 있게 되었다.
가족 간에 불화가 있으니 효가 생겨나게 되었다.
국가가 혼란하니 충신이 있게 되었다.



바로 노자 도덕경의 18장에 해당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갑자기 왠 노자인가? 아이러니컬하면서도 묘하게 다가오는 이 글귀가 자꾸만 나에게 『노자』를 읽어보라고 손짓을 하는 것만 같았다. 별 것 아닌것 같은 이 우연한 경험을 통해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깨우친 것도 모자라 『노자』까지 찾아보게 될 줄이야.



2부에서 계속..







막간(幕間)


한때 나에게 2020년은 굉장히 머나먼 미래였다. 이 때가 오면 자동차가 하늘을 날아다니며 로봇이 사람처럼 거리를 돌아다니는 세상으로 변해 있을 것이란 상상을 자주 했었다. 그리고 이런 세상이 오면 굉장히 재미날 것만 같아 괜히 콧바람이 나곤 했다. 제법 천진했던 것 같다. 세월이 흘러 한 아이의 아빠가 된 2020년의 오늘, 영화 장면처럼 세련되진 않지만 문명은 이미 자동차를 하늘에 날리는데 성공했고 로봇을 사람처럼 말하게 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생각까지 하게끔 만드는 데 도전하고 있다. 게다가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어 우리는 손바닥보다 작은 초소형 컴퓨터를 가지고 언제 어디서든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고 원한다면 지구 밖의 소식까지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어릴 때의 바람 이상으로 발전한 이 세상을 과연 신바람나게 바라보고 있는가? 그 때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의 나도 2050년의 바뀌어 있을 모습을 부푼 기대를 안고서 그리고 있는가?



‘아니, 도대체, 왜! 이유없이 불안하지?’



우연한 계기로 노자를 접했다 싶었는데, 가만 보니 그동안 스스로에게 이 “왜”라는 질문을 허공 속으로 던지는 과정에서 노자와의 만남은 필연에 가까워지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노자를 주제로 선별한 몇 권의 책들 중에 도올 선생의 책을 골라 읽어보기로 했다. 노자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중학교 때 잠시 스쳐간 ‘무위자연’이라는 말 밖에 몰랐기 때문에 책을 고를 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으로 신중을 기해야 했다. 다행히 도올 선생의 책은 상당히 많은 지면이 도입부에 할애되어 있었고, 거기서 2천 년도 더 지난 고대(古代) 철학과 21세기 독자(読者)들의 부드러운 랑데뷰를 위한 선생의 츤데레스러운 배려를 느낄 수가 있었다.



다시 처음의 고민으로 돌아와야겠다. 지금까지 유래없는 풍요로움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기쁘고 행복하다고 단언하는데 나는 왜 주저했던 것일까. 그 답을 찾기 위한 길었던 고민의 끝자락에서 이제 노자의 지혜를 빌려 나만의 통찰을 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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