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를 하면 누가 좋아지는가? 많은 사람들이 용서를 ‘관대한 선택’ 혹은 ‘도덕적 행동’으로 바라보지만, 용서의 본질은 단순한 선행이 아니다. 용서는 결국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이며, 동시에 상대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행위다. 용서를 통해 관계가 회복되거나, 서로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용서가 꼭 상대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궁극적으로 나를 위한 것일까?
우리는 종종 용서를 하고 싶으면서도 하지 못하는 순간을 경험한다. 머리로는 용서하는 것이 나에게도 도움이 될 것임을 알지만, 가슴으로는 여전히 상처받은 감정을 붙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용서가 어려운 이유는 단순히 상황이 복잡하기 때문이 아니다. 사실, 용서의 핵심은 내 감정과 마음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있다. 상처받은 감정을 정리하고, 분노와 억울함을 내려놓는 것이 진정한 용서의 과정이다.
용서는 어찌 보면 이타적인 행위를 통해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용서할 때, 우리는 상대에게 자유를 주는 동시에 스스로를 감정의 속박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다. 용서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과거의 상처에 얽매이고, 분노와 미움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결국, 용서는 상대를 위한 것이면서도,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이 된다.
한편, 용서는 반드시 상대에게 전달되어야만 성립하는 것일까? 우리는 이민을 가서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 연락이 끊긴 사람, 혹은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을 향해서도 용서를 할 수 있다. 이럴 때 용서는 상대가 받아들이든 말든 상관없이 나의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감정의 정리가 된다. 직접적인 화해가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용서를 통해 상처를 정리하고, 미움과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결국, 용서는 나를 위한 것이며, 나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감정의 정리 과정인 셈이다.
하지만 용서는 결코 강요될 수 없는 감정이다. 제삼자가 나를 대신하여 상대를 용서할 수 없듯이, 용서는 철저히 개인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나의 감정을 내가 주도해야 하며, 용서의 주체는 언제나 ‘나’여야 한다. 그렇다면, 용서는 오직 나를 위한 것인가? 어쩌면 이 질문의 답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일 것이다. 용서는 내 감정을 위해 시작되지만, 그 영향은 상대에게도 미친다. 하지만 반드시 상대가 알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용서를 통해 내가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그것이 곧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닐까?
용서는 단순한 관계의 회복을 넘어, 나 자신을 위한 치유의 과정이기도 하다. 나를 위한 용서가 결국 더 넓은 의미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과정이 될 수도 있다. 용서는 상대를 위한 것이면서도,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