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믹스견
3일 후..
판교의 통장님께서 카톡을 보내셨다. 동네방네 돌아다니시면서 수소문을 해 보았지만.. 레트리버 혹은 누런색 대형견을 찾고 있는 곳은 없었다고 한다. 만감이 교차했다. 내가 과연 이 녀석을 데리고 와도 될까.. 키울 수 있을까.. 지금 사는 곳에서 쫓겨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 맞다.. 사료.. 병원도 데리고 가야 하겠다.. 이래저래 고민을 하던 중 통장님께서 카톡을 보내셨다.
"이 녀석이 줄을 끊고서 도망가려고 했네요"
"두꺼운 목줄 가지고 오셔야 할거 같아요"
"아.. 그리고.. 혈뇨가 아주 심하네요.. 소변이 아니라 그냥 피만 나오는 것 같습니다"
혈뇨라는 말에 고민은 더 깊어졌다. 심각한 병이면 치료비가 엄청날 텐데... 그 당시 나는 형편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사실.. 형편이 좋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이래도 되나.. 먹고사는 것도 힘든데.. 내가 정말 이래도 되나.. 고민을 하다 보니 어느새 통장님이 운영하시던 카페 앞에 도착해 버렸다. 차에서 내려서 뒷마당에 묶여있는 녀석을 보니 복잡하던 머릿속이 더 복잡해져 버렸다.. 다소곳이 앉아서 꼬리를 천천히 흔든다.. 날 본건가.. 차에서 내려서 보니 3일 전 보다 더 커진 것 같다..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그냥 갈까.. 하던 찬라, 통장님이 나오셨다.
"오셨어요~"
"아무래도 유기된 듯하네요.. 이 동네가 인적이 드물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여기다가 개들을 많이 버려요.."
통장님의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상황이었다.. 어마어마하게 커다랑 덩치의 그 녀석은 무기력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한 가지 마음이 놓였던 것은 그 녀석이 나와 눈을 마주치는 것.. 대부분 사람들과 눈을 주시하는 반려견들은 머리가 좋고 훈련이 용이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나는 가까이 그 녀석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한껏 냄새를 맡은 녀석은 꼬리를 흔들기 시작했지만 불안한 표정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얼마나 불안하고 무서울까.. 생판 모르는 사람이 자기를 데리고 가려고 하는 이 상황이.."
이 녀석의 덩치와 냄새, 몸을 털 때마다 날리는 어마어마한 털들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자세히 보니 눈 주변의 털들은 고르지 못했고 얼굴은 부어있는 듯했다. 머리가 상당히 큰 반면 몸통은 그에 반해 조금 말라있는.. 엉덩이 뼈가 보일 듯 말 듯하였고 척추는 선명하게 손에 잡혔다. 색이 바랜 코 끝에서 시작되는 하얀색 줄은 콧등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옅은 노란색으로 덮여있는 녀석의 오른쪽 갈비뼈가 있는 부위에는 손가락 반 마디 정도 되는 점이 있었다. (유독 그 부분에만 검은 털이..) 이 녀석의 꼬리는.....
레트리버의 꼬리가 아니었다! 래브라도 레드리버의 경우 꼬리가 짧고 갈퀴가 없이 뾰족한 꼬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 녀석의 꼬리는.. 길다.. 게다가 갈퀴까지 무성했다..
"뭐지 이 녀석은?"
그렇다.. 이 녀석은 믹스견이었다. (역시 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덩치가 아주 큰.. 머리도 큰.. 나름 잘 생긴 믹스견이었다.
통장님과 인사를 마치고 이 녀석을 차에 태우려고 보니.. 이 녀석은 차를 타본 적이 한 번도 없는 듯했다.. 헉헉거리며 조수석 의자에 엉거주춤 앉은 그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한참 가고 있을 무렵.. 이 녀석의 행동이 이상해졌다.. 고개를 밑으로 쭈욱 빼고는 마치 무엇인가를 되새김 질을 하는 듯한 행동을 하더니.. 오전에 먹은 사료를 그대로 토해냈다.. 자동차 시트는 물론이고.. 기어봉까지 토사물로 뒤 덥혀 버렸고.. 지옥문이 열렸다.. 차를 멈출 수도 없는 상황에 이 녀석은 토사물을 깔고 앉아 문대기 시작했고.. 차 안은 사료 냄새와 개 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오피스텔로 도착했지만 나는 선뜻 이 녀석을 데리고 차에서 내릴 수가 없었다.. 토사물에 범벅이 되어버린.. 게다가 이렇게 큰 녀석을 데리고 엘리베이터에 타는 것도 엄청나게 부담스러울 뿐만 아니라 혹시라도 누군가 신고를 하게 되면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쫓겨날지도 모르는 걱정이 앞섰다..
나와 이 녀석의 첫날은 이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