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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임투티 Jul 21. 2016

마음이 아팠다.

날씨가 안좋으면 나도 아프다.

이직을 하고 딱 하루가 지났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을 지혜롭게 이겨내겠다 다짐했고 역시나 소문이 자자했던 사람이 있었지만, 맞딱드린 순간 화부터 나고 마음먹은대로는 되지 않았다. 어제까지 행복했던 꽃농부 시절이 그리울 수 밖에 없었다. 딱 하루사이 누군가 내 스위치를 바꾼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날씨가 안 좋으면 기분은 더 좋지 않다. 비가 오는 날이면 이상하게 나는 더 기분이 안 좋아진다. 시애틀의 부슬부슬했던 비는, 비에 대한 생각을 많이 바꾸었지만 여전히 비는 그리 탐탁치 않다. 그래서인지 텁텁하기까지한 장마철은 더욱 싫다. 장마인데다가 더위가 더해지고 본업에 집중까지하니 기분은 오늘 영 별로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닌 거 같았다.



장마가 싫다.

장마는 나만 싫은게 아니었다보다. 이 더위도 그렇다. 내가 애지중지 매일 돌보는 아이들도 힘겨워하고 있었다. 누나가 힘드니 너네도 힘든거 맞지?

내 1호 다육이로 데려온 벽어연. 장마철이라 그런지 쭈글쭈글하다. 사실은 물을 못마셔 더워서 그런줄 알았는데 물을 주고도 계속 쭈글쭈글하다. 한동안 노랗게 무른 잎도 있었지만 지금은 노랗게 변한 잎은 없는걸 보니 그래도 장마철이라 쪼그라들었나보다싶다.



<왼쪽 일주일 전/오른쪽 오늘>

축전이다. 다육이 중 탈피를 하는 녀석인데 하트모양이 매력적이어서 늘 갖고 싶던 녀석이다. 가을에는 꽃도 피운다고 하는데 탈피 시간이 꽤나 오래 걸리는걸 보면 더워서 그런 듯 하다. 집 안에서 애지중지 키우다 햇볕이 부족할까 싶어 데리고 나왔는데 갑자기 걱정이된다. 그래도 비교해보면 제법 옷을 많이 벗은 걸 보니 덥긴 더운가보다.


이녀석도 1호 라울. 너무 좋아하던 녀석인데 목이 길어졌다. 해가 부족한 것도 아닌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렇게 목이 길게 자라는게 맞긴 한듯 한데.. 괜찮은거지? 농원에 가보아도 라울들이 최근 찾기 어려운걸 보면 모든 라울들이 힘들어하고 있는 것 같다. 조금만 힘내자 얘들아!


이녀석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왼쪽이 라울인데 내가 도대체 어떻게 대해줬길래 이렇게 마르고 야위었는지 너무 미안할 정도이다. 미안. 조금만 더 버텨줘.


오층탑. 이녀석 이름 외우기 정말 어려웠다. 크기는 제법 큰 걸 보면 열심히 자라나고 있다. 1호인데 처음 데려올때 조막만하더니 크기가 쭉쭉 크더니 갑자기 붉은색으로 변했다. 아무래도 물이 든 모양인듯한게 만져보아도 단단한 것이 물이 든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직까지 초록빛이 도는 오층탑들이 더 많으니, 이 녀석만 물이 든 이유를 도통 모르겠다.


오층탑 이전의 모습들인데 색감이 더 탁해진걸보면 붉게 물든 것보다는 아픈게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로 칙칙한 느낌이 든다. 이전 모습들은 그냥 푸릇푸릇하거나, 붉게 물든 정도의 느낌이니까.


옥로금. 사실은 이녀석을 보고 깜짝 놀라 오늘 한놈씩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옥로금은 3호다. 아직도 기억나는게 분명 너무 예쁜 투명한 색감에 녀석을 데려왔던걸로 기억한다. 아뿔싸, 바쁘게 살아온 그동안 녀석은 많이 아파보였다. 영롱하기까지하던 투명한 색감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잎도 떨어지고 옆에 같이 자라던 아가들도 아파보였다. 부디 장마가 끝나면 다시 영롱했던 그 모습이 되었으면 좋겠다.


파핀 바위솔인데 진짜 예뻤다. 크고 듬직한 모습에 활짝 피어 좋았는데 어째 조금 움츠러 든 것 같다.


녀석의 이전 모습은 굉장히 푸릇푸릇하고 끝이 보랏빛이 아주 진하다. 싱싱해보이기까지 했는데 위에 큰 사진을 보면 왠지 모르게 잔뜩 움츠러든 느낌이 확실히 든다.



<왼쪽 예전모습/오른쪽 오늘>

1호 월동자. 예쁜 모습에 반해 데려왔는데 고생이란 온갖고생은 다해서인지 잔뜩 오므렸는데 그 이후로는 몸 한번을 안 핀다. 처음엔 아파서 끝인가 싶었는데 잎은 단단한걸 보면 아직 살아있는 듯 하다. 이대로 지난지 벌써 4개월은 된 듯 한데 어떻게 해줘야할지 고민이 참 많다. 지난 달에도 오므리고 있다 생각했는데 지금 비교해보면 더 많이 오므린 것이 걱정이다.


홍옥은 잘못 자란것이 맞는 것 같다. 바깥에서 키워 제법 해를 많이 본 것 같은데 웃자라면서 뿌리가 바깥으로 나와 버리고 말았다. 이녀석도 1호인지라 애지중지인 녀석들인데 수염을 보고나니 신경을 못 써줘 덥수룩해진 것 같아 미안해졌다. 역시나 1호들이 고생이 많다.


마블. 2호다. 많은 녀석들이 오다보니 전부 기억할 수 있을까 싶다가도 1호부터 3호까지는 정확히 다 기억나는 듯 하다. 마블은 푸릇푸릇 정말 잘 자라더니 장마철이 되니 누구한테 한대 맞은 냥 멍까지 들어 볼품없어졌다. 전부 그런걸 보니 분갈이를 하나씩 떨어트려 한 것이 문제인가 싶지만, 일주일전까지만해도 푸릇푸릇했으니 조금 더 기다려봐야겠다. 쭈글쭈글한 것이 물이 부족한 것 같기도 하지만 물을 준지 얼마 안되어 조금은 참기로 했다. 

마블도 굉장히 푸른색. 엄청 푸릇하던 녀석들이 어디서 맞고 온 것처럼 파랗게 멍든걸 보면 내 새끼 못 지켜준거 같아서 마음이 뜨끈뜨끈할 지경이다.



닫힌 마음.

마케터로 길게 지내왔고, 좋은 제안들도 많이 받았다. 하나를 선택해 이직했지만, 한달도 아니고 하루만에 말이 안통하는 사람을 만나고나니 그간 쉬면서 농부생활을 했던 마음이 꽉 닫혀버리는 기분이었다. 난 분명 행복했는데, 도대체 이렇게 말이 안통하는 사람은 어떻게 이겨내지? 위에 사람이면 "꼰대하고는" 하고 지나가버리겠지만, 아랫사람이 그러니 한대 치고 싶을정도로 기분이 나쁠 정도다. 그렇지만 지혜롭게 극복하자. 

이녀석 연꽃이다. 집앞에 돌절구에서 키우는데 분명 아침까지는 꽃을 활짝 피우고 있었다. 퇴근할 무렵 입을 꼭 다물고 있는게 마치 핀적이 없다는 듯이 꽃을 닫고 있는데 신기할정도다. 분명 아침에 아주 보라색 꽃을 피우고 있었는데 아무일 없다는 듯이 입을 꼭 다물었다. 퇴근무렵 그랬으니, 오늘 아침에 나갈때와 들어갈때의 내 마음을 녀석이 알아차린 기분이다.



안도의 한숨.

계속해서 1호부터 3호까지 장마철이 되어 아픈 것 같아 조금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을 하나둘 만져주다보니 모기한테 잔뜩 뜯겼는데도 전혀 몰랐다. 너희도 힘드니? 나도 갑자기 힘들다.

그런데 이 와중에 괜찮은 녀석도 있다. 1호로 데려왔던 불야성. 알로에 모양인데 뾰족한 이빨이 특징이다. 두터운 이빨인데 생긴것과 다르게 만질만은 하다. 이녀석들 둘이 좁다고 난리여서 이사를 해 독립시켜준게 엊그제같은데 둘다 쑥쑥 컸다. 게다가 앞에 녀석을 보면 알겠지만 위에 오층탑처럼 새빨갛게 변해 나를 놀래켰다. 물 든지도 모르고, 순간 벌써 죽는가 싶어 걱정했는데 단단한 잎에 물든 거라 나중에 되서야 잘 살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장마철이 된 요즘 오랜만에 자세히보니 붉은 물이 거의 빠지고 다시 초록빛이 돌기 시작했다. 두 녀석 모두 쑥쑥 커주고, 더욱 파랗게 변해 잘 자라는 녀석들을 보니 제법 안심이 되었다. 



그래, 힘든일만 있지않아. 더 단단해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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