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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임투티 Aug 16. 2016

직장인, 외롭고 고독한 존재

함께, 다같이는 어려운걸까?

사람은 누구나 함께 지내야 좋다. 혼밥족, 나혼자산다 등 아무리 혼자하는 것이 트렌드라지만 역시나 혼자보다는 함께가 조금 더 나은 것 같다.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이니까.


뭐 가끔은 나도 혼자인게 좋다. 누구와도 얘기하기 싫은 날도 있고, 나 또한 스트를 많이 받는 날이면 주말에 혼자 농장에서 노는 것이 좋으니까. 그렇지만 혼자이다가도 각자의 농장 업무(?)를 마치고, 두런두런 모여 앉아 함께 새참을 먹는 시간이 오면 혼자있던 시간보다 조금 더 재미있고 활기차다.



오랜만에 돌아간 회사는 역시 외로웠다. 다시 돌아가는 만큼 많은 이들의 우려가 이어졌다.


헤어진 연인에게 다시 돌아가봐야 헤어지게 되어있어.


옳소. 나도 동의한다. 헤어진 연인은 다시 만나는게 아니지만 회사는 헤어진 연인이 아니라 말그대로 '회사' 이기 때문에 다르다. 나는 내 주어진 역할을 다하고 그러한 여러 역할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는 곳이니까. 그렇지만 회사라는 공간은 또 누군가는 승진하고, 누군가는 저평가되는 아주 무서운 '사회'이기도 해서 좋은 조건으로 돌아간 내게는 외로운 시간이 이어졌다. 10일만에 말도 안되는 업무를 해결해야해 밤새 업무를 지속해도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 아무래도 단단히 화가 났던 모양이다. 그리고, 의미있는 행사에서 작은 도움을 요청해도 나를 도와준건 나와 친한 부사수 한명 뿐,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 아무리 SOS를 쳐도 그들에겐 이 곳은 '회사'일 뿐이었다. 그래서 내가 내 스스로에게 말했던 대로 회사는 '연인' 이 아니라 '회사'인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선인장을 새로운 화분에 심어주는데 이녀석 참으로 동그랗고 예쁘지만 홀로 있는 것이 외로워보였다.


다른 녀석 한 녀석을 붙여보니, 이녀석들 제법 잘 어울린다.

혼자는 외롭지만 둘은 더이상 외로워보이지 않았고, 조화를 잘 이루고 있었다.


회사생활에서 딱히 누군가에게 잘 보일 필요도, 견제할 필요도 없지만,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조화를 나는 바랬던 것인데, 헤어진 주제에 돌아와놓구선 너무 바랬던가 싶기도 하다.


여기에 세녀석이 합해지니, 이거 제법 멋드러지는 기분이다.

하나하나 제 역할들을 잘해주고 있고, 화분이 달라도 셋이 잘 어울린다.


나는 내 자신을 호불호가 갈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나를 굉장히 싫어할 수도 있지만, 좋아하는 호도 있다. 그래서 나를 좋아하는 호들과 어떻게 잘 어울릴지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곤 한다. 이번 행사에서도 그랬다. 동료들은 오랜만에 돌아온 내게 손을 건네주지 않았지만, 함께 밤을 새준 대행사들은 누구보다 내 곁에서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굳이 일을 안해도 되는 디자이너 부사수는 끝없이 뛰어다녀주었다. 우리는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버텼다.



우리는 이렇게 붙어있는 선인장을 군생이라고 부른다. 군생은 서로 모여있는 식물들을 군생이라 부르는데 한 종이지만 다 다르게 생겼다. 그런데도 붙어있어 함께 자라는 녀석들이다.


내가 신입이던 시절, 내게는 정말 멋진 세 선배들이 있었다. 이렇게 힘든 순간, 혹은 막다른 사회생활에 몰리고나면 나는 내 선배들을 떠올리곤 한다. 신입시절 패기 넘치는 나를 하나씩 열심히 가르쳤고 NO를 외치는 법도 없었다. 혼나는 상황은 단 한순간, 마케터로 살아가면서 부정부패가 넘치기 때문에 절대로 범해서는 안된다는 아주 작은 규율까지도 가르쳐줄때 말고는 단 한번도 나를 그르치지 않았다. 엉뚱한 아이디어를 가져올때에도 한결같이 들어주었고, 방향을 지시해 스스로 디벨롭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런 선배들 밑에서 자랐으니, 지금같이 외로운 순간은 더욱 처참한 기분이 든다. 요즘, 특히 행사 전날 새벽에 혼자 텅빈 무대를 바라보는 순간 선배들이 미친듯이 보고싶고 울컥했다.


나 또한 그런 후배들을 만들어보려 욕먹을 상황에서도 눈 감고 나서보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조금은 억울한 기분까지 들정도인데 내 선배들은 어떻게 이런 나를 받아주었을까 하며 되돌아보곤 한다. 그러면, 억울한 기분은 사라지고 이해를 하려 노력하기 시작한다.


사회생활을 해보면, 가끔 아주 고독하고 외로운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좋은 직장동료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내 곁에는 좋은 직장동료, 클라이언트, 대행사 등 너무도 좋은 사람들이 곁에 많이 있다. 지금도 한결같이 응원해주는 나의 든든한 회사 선배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함께' 이기에 또 다시 버텨나갈 수 있는 것 같다. 가끔은 미친듯이 고독하고 외로운 기분이 들지만, 어느날은 정말 가득차고 꽉 찬 기분으로 함께 해나가기도 하는 것이다.


함께라는 것.


참 따뜻하지만 어려운 단어인듯 하다.

서른살에 만난 '함께' 라는 단어는 아무래도 조금 더 어려워진듯 하지만 또 다시 그 '함께'를 꿈꾸며 오늘도 열심히 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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