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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MO Jun 18. 2017

천상의 화원 소백산

늦은 봄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동산

소백산(小白山)은 1987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충청북도 단양군과 경상북도 영주시 사이에 걸쳐있는 거대한 산이다. 민족의 영산인 태백산(太白山)이 최근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것과 달리, 소백산은 일찍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곳이다. 태백산보다 먼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데는 소백산이 상대적으로 많은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으며, 산을 터전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강원도에 속해있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태백산 주변은 탄광지대로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기엔 많은 강원도 주민들의 생계가 걸려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태백산에 자리 잡은 오래된 사찰이 없는 것도 원인일 것이다. 소백산은 태백산과 달리 부석사, 구인사, 희방사와 같은 유명한 사찰이 자리 잡은 곳이며, 단양과 영주는 꼭 산에 살지 않더라도 농업과 공업을 기반으로 주민들이 살 수 있기 때문에 일찍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듯하다. 소백산이 오랫동안 관리되고 보존된 덕분에 소백산에 오르면 주목군락지와 능선 위의 넓디넓은 초원, 철쭉 등을 감상할 수 있다.

내가 소백산에 처음 방문했을 때는 2011년 겨울로, 눈꽃 산행을 즐기고자 하는 목적으로 등산을 했다. 등산하기 전날 때마침 눈이 내려 산에 오르면 눈으로 뒤덮인 소백산 능선과 눈꽃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산에 올랐다. 설악산이나 태백산이 강원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철저히 준비를 하고 등산을 했던 것과 달리, 소백산은 충북과 경북 사이에 있는 산이라 겨울에도 오르기 쉬운 산이라 판단하고 단양 다리안 관광지에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소백산의 정상인 비로봉은 높이가 1439.6m나 되긴 하지만 길이 순하기 때문에 등산이 어렵진 않았다. 고지대로 오를수록 나무들이 사라지고 능선에 도달할 때쯤, 나의 안일한 태도는 온몸을 에워싸는 추위로 바뀌기 시작했다. 소백산은 사계절 내내 칼바람으로 유명한 곳으로, 겨울이라고 등산객을 봐주지 않는다. 날씨에 나오는 온도만 믿고 갔다간 큰 코 다치는 곳으로 방심하고 오르면 절대 안 되는 곳이다. 칼바람 덕분에 능선을 따라 연화봉을 거쳐 종주하겠다는 내 계획은 좌절되고 비로봉에 오르자마자 급하게 영주 비로사 쪽으로 하산했다.

소백산 최고봉인 비로봉으로 가는길
원래 계획은 능선을 따라 걸으며 소백산을 만끽하는 것이었다.
칼바람의 흔적. 바닥의 눈을 보면 소백산의 칼바람이 얼마나 엄청난지 짐작할 수 있다.

6년 전의 아픔을 뒤로하고, 2017년 5월 말에 소백산을 다시 찾았다. 소백산의 봄은 많은 등산객들이 기다리는 순간으로, 능선을 따라 철쭉들이 화사하게 피어있는 기간이다. 단양군과 영주시도 이때를 맞이하여 소백산철쭉제를 개최하며, 많은 행사가 단양읍내와 풍기읍내에서 각각 열린다. 나는 단양에서 소백산을 올라 철쭉을 구경했지만, 영주에서 오르더라도 철쭉이 주로 피어있는 곳이 단양과 영주의 경계인 소백산 능선이라 어디서 오르든 철쭉을 만끽할 수 있다.


천상의 화원, 소백산

어의곡 입구에서 본 소백산 안내판. 소백산의 상징은 철쭉이다.
어의곡으로 가는 길에 본 남한강. 단양군 주민들은 남한강을 끼고 생활한다.

소백산 국립공원이 백두대간을 따라 넓게 걸쳐져 있기 때문에 택할 수 있는 등산로도 다양하다. 내가 선택한 코스는 이른 아침에 단양읍내에서 어의곡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늦은맥이재, 상월봉, 국망봉을 지나 비로봉까지 도달한 후, 연화봉, 제2연화봉을 따라 죽령으로 내려오는 것이었다. 20km에 달하는 거리였지만, 악(岳)이 포함된 산들을 등산하는 것보단 훨씬 수월할 정도로 소백산은 오르기 쉬운 산이었다. 아침에 등산길로 택한 소백산 어의곡 코스는 등산로 옆에 계곡이 있기 때문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자연을 만끽하면서 즐겁게 산을 오를 수 있었다.

어의곡. 가뭄임에도 끊임없이 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어의곡을 지나 늦은맥이재로 오르니 서서히 철쭉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만 2017년 봄이 가뭄인지라, 철쭉들이 예년처럼 화사하게 피지는 못한 것 같다. 가뭄의 영향 때문인지 만개시기를 못 맞춰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몇몇 철쭉들은 드문드문 꽃을 피우고 있었다.

늦은맥이재에서 처음 본 철쭉
소백산 능선에 도달하면 아름다운 철쭉들을 감상할 수 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철쭉이 알록달록 다양한 색깔들을 띠고 있다면, 소백산의 철쭉들은 전부 분홍색을 띠고 있었다. 색뿐만 아니라 꽃의 크기도 시내의 철쭉보다 훨씬 컸으며 몇몇 나무들은 나보다 키가 클 정도였다. 아침고요수목원에서 본 철쭉들과 비슷하겠지 하고 올랐지만, 소백산의 철쭉은 내가 기대했던 모습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띠고 있었다. 인위적인 모습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철쭉들은 비록 만개하지 않았지만 내가 본 어떤 철쭉보다 아름다웠다.

소백산 능선은 겨울 추운 날씨 때문에 나무가 없어 시야가 확 트인다. 늦은 봄에 오르면 능선을 따라 피어있는 철쭉을 감상할 수 있다.

늦은맥이재에서 비로봉까진 4.5km지만 소백산의 능선이 상대적으로 평탄하고, 나무가 없어 시야를 가리지 않기 때문에 걷는 길이 즐겁다. 게다가 늦은 봄에는 소백산의 상징인 철쭉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걸으면서 전혀 힘들지 않았다. 마주치는 분마다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으며, 몇몇 아주머니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철쭉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겼다.

국망봉에서 비로봉으로 가는 길을 따라 핀 철쭉들. 상대적으로 사람들이 적어 한가롭게 철쭉을 감상할 수 있다.

소백산의 주 등산로가 단양의 다리안관광지 또는 영주의 비로사에서 오르는 길이기 때문에 비로봉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등산객의 수도 점점 늘어났고 한적한 등산도 끝이 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광경은 혼자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다 같이 감상하는 것이 순리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아도 그 나름의 즐거움이 있었다. 비로봉 주변에 핀 철쭉들은 소백산의 장쾌한 능선들과 어우러져 고생한 등산객들의 피로를 풀어주고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철쭉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꼭대기가 비로봉이다. 비로봉 주변은 칼바람과 높은 지대로 인해 키 큰 나무들을 볼 수 없는 초원지대다.
소백산은 철쭉 뿐 아니라 주목군락지로 유명하다. 왼쪽의 나무들이 주목군락지.

비로봉에 도착할 시점이 점심시간이었기 때문에 정상 부근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려고 했지만, 칼바람 때문에 도저히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비로봉 아래 대피소가 세워져 있어 바람을 피하면서 도시락을 먹을 수 있었다. 주목군락지와 철쭉들을 보며 점심을 먹은 뒤, 연화봉 쪽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비로봉에서 연화봉으로 가는 길은 오르고 내리는 것이 심하고 나무가 많아 등산의 재미가 상대적으로 덜했다. 하지만 연화봉으로 가까이 가면 등장하는 철쭉 군락지들이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어 주고 있었고, 철쭉 뒤로 보이는 소백산 천문대의 풍경도 일품이었다.

비로봉에서 연화봉으로 가는 길. 연화봉 위에 천문대가 있기 때문에 거리를 가늠하기 쉽다.
소백산 천문대

연화봉에 도달하면 소백산 천문대를 볼 수 있는데, 국내에서 최초로 현대식 망원경을 설치한 천문대이다. 주간 견학은 천문대 시설에 대한 소개로 이루어지며, 관람 가능 시간은 오후 1시~4시이며, 견학은 30분 간격으로 총 6번 진행된다. 주간 견학이기 때문에 천체망원경으로 별을 관찰할 수는 없으나, 1974년 설립된 최초의 천문대라는 상징성이 있으므로 한 번쯤 방문할 만하다.

제2연화봉엔 최근에 지은 대피소와 기상레이더관측소가 있으며, 대피소에서 풍기읍내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연화봉에서 제2연화봉을 거쳐 죽령으로 하산하는 길은 포장도로로 하산하기 편하긴 하지만, 볼거리도 없고 흙길을 걷는 맛도 없어 빠르게 하산했다. 게다가 죽령에서 단양읍내로 향하는 버스는 간격이 길어 (하루 5번) 한 번 놓치면 꼼짝없이 택시를 타야 했기 때문에 빠른 걸음으로 내려갔다. 다행히 버스 출발 10분 전에 도착해, 오후 3:55분에 죽령에서 단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단양읍내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장다리식당

단양은 경북 의성과 더불어 마늘로 유명한 곳이다. 단양읍내에서 마늘정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는데, 대표적인 곳이 돌집식당과 장다리식당이다. 돌집식당은 예전에 찾아가서 먹은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엔 장다리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장다리식당의 마늘정식 종류는 5가지로, 나오는 반찬의 수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가장 많은 종류의 반찬이 나오는 마늘정식은 흑마늘정식으로, 1인분 가격이 30,000원이지만 그만큼 많은 양의 반찬이 나온다고 생각하면 된다. 반찬이 많을 뿐 아니라 맛도 나쁘지 않으며, 공깃밥 대신 돌솥밥이 제공된다. 꼭 흑마늘 정식을 먹지 않더라도, 마늘정식을 체험해보고 싶다면 온달마늘정식이나 평강마늘정식을 먹어도 괜찮을 듯하다.

단양 마늘정식의 양대산맥 중 하나인 장다리식당. 마늘정식을 주문하면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많은 반찬이 나온다.

단양 소백산 철쭉제

등산이 끝나고 저녁을 먹은 뒤, 강변을 따라 서 있는 축제 행사장을 둘러보았다. 꽃을 주제로 한 축제가 늘 그렇듯, 축제 행사장엔 특별히 볼거리가 없고 길거리 음식을 먹거나 초청가수의 공연을 보는 것이 주가 되는 축제였다.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초청 가수의 공연과 버스킹 공연을 보고, 사람 구경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단양 소백산 철쭉제 메인 행사장
다리안 관광지에서 열린 가족과 함께하는 소백산행과 소백산 산신제

단양 소백산 철쭉제의 주요 행사는 일요일에 열리는 허영호 대장과 함께하는 소백산행이다. 하지만 올해는 허영호 대장의 사정 상, 가족과 함께하는 소백산행으로 변경되어 축제의 의미가 약간 퇴색된 면이 있었다. 행사가 변경되었다는 공지를 홈페이지에서 찾기 어려워, 나는 다리안 관광지에 도착하고 나서야 허영호 대장이 안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실망감은 컸지만 이왕 온 김에 기념품을 받고 소백산 산신제를 본 다음, 가족과 함께하는 소백산행에 참여하였다. 비로봉에 올라 다시 본 철쭉은 어제와 다름없이 아름다웠고, 어제와 역순으로 산행을 진행하여 새밭계곡으로 내려왔다. 새밭계곡에서 다리안관광지로 운행하는 셔틀버스가 12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행이 되고 있었기에 셔틀버스를 타고 단양읍에서 내려 축제의 마지막을 즐겼다.

소백산엔 철쭉 뿐 아니라 수국도 많이 피어있었다.
다시 오른 소백산

철쭉제 기간 동안 단양 문화마루에서는 철쭉테마관이 운영되고 있었는데, 축제의 주제와 부합하는 얼마 되지 않는 행사장 중 하나였다. 철쭉 애호가들이 정성 들여 기른 철쭉들을 감상할 수 있으며, 철쭉뿐 아니라 다른 여러 종류의 꽃들도 함께 전시되고 있었다. 소백산에 피어 있는 철쭉들과 달리 인간의 손을 거친 철쭉들은 색도 다양하고 모양도 제각각 달라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소백산철쭉제 행사장에선 이 외에도 다양한 체험활동을 즐길 수 있으며, 단양에서 생산된 특산물도 구할 수 있었다.


경주식당

행사장 바로 옆에 경주식당이라는 곳에서 끼니를 해결했는데, 단양과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복어요리를 제공하는 곳이다. 은복 매운탕이 인기가 있으며, 복어를 좋아하는 마니아라면 한 번 찾아가 볼만한 곳이다. 대부분의 복어 매운탕이 그렇듯이, 복어로 배를 채우지는 못하고 얼큰한 국물과 콩나물로 배를 채우고 복어 맛을 음미할 수 있었다. 복어를 먹지 않는 사람들은 올갱이해장국을 먹을 수 있으므로, 여럿이 가더라도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식당이다.

경주식당. 단양에서 복어요리로 유명한 곳이다.

단양의 또 다른 매력, 소백산

단양은 최근 패러글라이딩의 성지로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남한강이 굽이굽이 흐르며 마을을 휘감고 있는 풍경을 패러글라이딩을 통해 즐기는 것이 단양의 매력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양이 패러글라이딩으로 유명해지기 전에 사람들을 끌어모은 곳은 소백산이다. 소백산이 품고 있는 구인사, 천동동굴, 고수동굴, 온달관광지를 보기 위해 사람들은 단양으로 향했으며, 나 또한 아름다운 소백산의 풍경을 보기 위해 단양을 찾았다. 단지 패러글라이딩만 즐기고 단양을 떠나기엔, 소백산이 지니고 있는 매력이 너무나 크다. 소백산은 철쭉이 아니더라도 여름에 다양한 야생화들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천상의 화원이며, 소백산 자락을 따라 아름다운 관광지가 곳곳에 위치해있다. 단양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소백산을 반드시 일정에 포함시켜 그 매력을 만끽하는 것은 어떨까. 절대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 될 것이다.

단양군의 상징은 소백산의 철쭉이 아닐까
단양터미널의 모습

* 버스 시간표

단양읍→새밭계곡

6:30

8:55

11:00

13:10

15:25

17:35

19:00

새밭계곡→단양읍

7:05

9:45

11:40

13:50

16:05

18:20

19:35

단양읍→죽령

6:50

7:45

12:55

15:00

17:05

죽령→단양읍

7:25

9:05

14:00

15:5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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