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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MO Aug 10. 2016

부산의 과거를 품은 마을들

영화로웠던 기억을 과거에 품고 사라질 마을들

오전 5시 40분 즈음에 광명역에서 출발하는 부산행 KTX를 타고 부산역에 내렸다. 아침 8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여름 햇볕은 어느 때보다 따가웠고 눈부셨다. 창원에 살면서 부산을 자주 방문했지만, 이렇게 뜨거운 부산은 처음이고 낯설었다. 여름에 부산을 간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운대, 광안리, 송정, 송도, 다대포 같은 부산의 유명한 해수욕장이나 뜨거운 햇볕을 피할 수 있는 신세계 센텀시티, 더베이 101 같은 실내 명소들을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고향이 창원인 나로서는 부산에서 웬만큼 유명한 곳은 다 가보았다는 자부심이 있기에, 일반적으로 방문하지 않는 숨겨진 마을 3곳을 찾아 방문하기로 하였다. 이번에 방문했던 3곳은 부산에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찾지 않는 마을일 것이다. (감천문화마을은 최근 인지도가 높아져서 처음 방문한 여행객들도 많이 방문하곤 한다.) 이 마을들이 나에게 의미 깊었던 이유는 해운대나 광안리가 보여주지 못한 부산의 역사와, 오랫동안 부산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향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부산의 해변이나 화려한 야경, 다양한 식문화와 쇼핑을 충분히 즐긴 사람들이라면 부산의 역사를 느끼기 위해 내가 방문했던 곳을 찾으면 좋을 것이다.

부산역. 수도권에서 오는 여행객들이 부산역을 통해 부산을 방문한다. 부산역은 부산종합터미널보다 시내와 가까워 여행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초량동 이바구길

초량동은 열차를 이용해 부산에 도달한 사람들이 가장 쉽게 방문할 수 있는 곳이다. KTX 종착역인 부산역이 동구에 속해 있으며, 초량동 또한 동구인데다 부산역과는 중앙대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량동은 부산에 사는 외국인 밀집도가 가장 높은 지역으로, 차이나타운이 형성되어 있으며 항구도시답게 러시아인과 중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차이나타운에는 최근 TV에 나온 중국집이 유명세를 타 점심시간엔 줄을 서서 먹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부산항과 가까워 일본인들에 의해 일찍이 개발된 곳으로, 구 백제병원, 초량동 일본인 가옥, 수정동 일본인 가옥, 초량교회 등 주변에 남아있는 근대문화유산들을 찾아볼 수 있다. 바다와 가까운 쪽이 일제시대부터 개발된 곳이라면 산비탈을 따라 개발된 곳은 한국전쟁 후 피난민들이 오면서 개발된 곳이라 할 수 있겠다.

옛 남선창고 터. 우리나라 최초의 물류창고였지만, 2009년에 철거되어 붉은 벽돌로 쌓은 담장만 남아있다. 
구 백제병원. 현재 1층은 브라운핸즈 백제라는 카페가 들어가 있는 건물이다. 부산 최초의 근대식 개인종합병원으로 1927년 건립된 유서깊은 건물이다.
초량교회. 1892년 설립된 유서깊은 교회이다. 조선 말기부터 초량동 일대는 부산항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수정동 일본식 가옥. 일본인이 현란한 주택을 이 곳에 짓고 살았다는 것만으로 초량동 일대가 부산의 번화가였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현재는 문화공감 수정(찻집)으로 운영된다.

초량동이 부산항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기억은 조선 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선교사들이 부산에서 사역을 했던 곳이기도 하고 일본인들이 실제 거주하면서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곳이기도 하였다. 부산항의 중심지로 창고가 필요해 남선창고가 지어졌으며, 늘어나는 인구에 따른 의료시설이 필요해 백제병원도 지어졌을 것이다. 대구나 군산이 근대문화유산을 토대로 관광 시설을 확보하고 리모델링을 통해 여행객들을 확보했다면, 부산의 초량동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할 수 있다. 부산의 수정동 일본식 가옥은 군산이 자랑하는 히로쓰 가옥과 비견될 만한 아름다운 일본식 가옥이며, 구 백제병원 또한 군산의 옛 조선은행만큼 건축미가 빼어난 건물이다. 관광자원을 이미 갖추고 있는 부산이라, 대구나 군산처럼 근대문화유산을 내세우지 않아도 많은 여행객들이 부산을 찾기 때문에 초량동을 홍보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런 부산시의 무관심 속에 초량동 곳곳은 재개발을 위한 공사가 한창이며, 일대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면 이러한 근대문화유산의 가치도 떨어질 것이 뻔하다. 곳곳에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고 길을 잘 닦아놓은 초량 이바구길과 비교하면, 초량동의 근대문화유산은 가치에 비해 푸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초량동 이바구길 진입로. 초량동 산비탈을 따라 형성된 마을의 역사를 잘 보여준다.

초량동의 근대문화유산을 탐방한 뒤, 초량동 이바구길을 따라 부산의 달동네 탐방을 하러 간다. 부산(釜山)이 항구도시긴 하지만 해변가를 제외하곤 대부분 산으로 이뤄진 도시기 때문에 산복도로가 곳곳에 있으며, 많은 수의 사람들이 산 위에 산다. (심지어 해운대 또한 달맞이 언덕에 아파트를 짓고 산다.) 초량동 자체가 부산의 옛 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이 곳에서 자란 유명한 인물들이 많기 때문에 그나마 부산시 자체가 홍보를 많이 하는 편이지, 다른 달동네들은 관광객들이 찾아가지도 않으며 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하기 시작해 빈 집의 수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 초량동 이바구길은 잘 정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잘 찾는 곳은 아니며, 내가 탐방할 때조차 주민들 몇 명만 보았을 뿐 관광객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168계단. 대중교통이 활성화되어 있지도 않았던 시절, 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모습을 생각하니 아찔하기만 하다.

사람들이 부산의 달동네를 떠나는 이유는 자명하다. 산 위에 지어진 마을이기 때문에 가까운 편의점을 방문하려고 해도 계단을 오르락내리락거리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며, 차를 가지고 있더라도 주차할 공간이 마땅치 않다. 원래 판자촌으로 지어진 토대 위에 건물을 올렸기 때문에 생활공간이 좁을 수밖에 없으며, 주택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다니면서 이리저리 부딪히는 것도 싫을 것이다. 부산시는 인구유출과 도심 공동화 현상을 막기 위해 초량 이바구길을 만들었지만, 부산에는 워낙 가 볼 곳이 많은데다 사람들이 달동네를 보기 위해 주로 방문하는 곳은 사하구의 '한국의 마추픽추'기 때문에 아직까진 큰 효과를 보지 못하는 듯하다. 초량동 이바구길이 가진 큰 장점은 모노레일과 전망대다. 168계단이 있지만 관광객들은 바로 옆에 설치된 모노레일을 통해 계단을 오르지 않고도 윗마을까지 갈 수 있으며, 모노레일에서 내리자마자 부산시 전경이 펼쳐지는 전망대가 있다. (하지만, 이것 외에는 볼거리가 크게 없다는 것이 단점이다...)

초량동 모노레일. 168계단 바로 옆에 설치되어 있으며 주민들과 여행객들이 무료로 탈 수 있는 편리한 교통수단이다.
초량이바구길 전망대에서 본 부산의 전경. 보이는 것처럼 부산시 자체가 산 위에 세워진 도시라 곳곳이 산복도로며 달동네다.

모노레일을 타고 초량이바구길을 따라가면 이바구공작소, 장기려 기념 더 나눔센터, 유치환 우체통을 볼 수 있다. 단지 부산시 전망을 보고 싶었던 사람들은 168계단을 내려가거나 다시 모노레일을 타고 내려가면 되지만, 한국판 슈바이처로 불리는 고 장기려 박사의 생애를 보고 싶은 사람은 장기려 기념관까지 들리면 된다. 초량 이바구길은 부산 주민들의 삶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지만, 화려하고 멋진 곳을 원하는 여행자들에겐 맞지 않는 곳이다. 이바구길을 따라 걸으면 부산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느낄 수 있다. 공간이 부족해 주택 곳곳에 좁은 골목길이 뻗어 있으며, 차들을 위한 도로를 만들기 위해 산을 깎아 산복도로를 내는 등 부산 사람들은 산 위에서 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해 왔다. 부산의 주력산업이었던 경공업이 쇠퇴하고, 무역의 중심이 일본과 미국이 아니라 중국으로 넘어가면서 부산은 제1무역항이라는 타이틀도 인천에 빼앗기게 생겼다. 달동네에 살던 많은 사람들이 경공업과 무역업에 종사하면서 한국의 발전을 이끌었던 주역이라는 걸 생각하면 마을들이 쇠퇴하는 광경을 보는 것이 편한 것은 아니다. 부산의 근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초량동 근대문화유산들을 보고 초량이바구길을 걷는 것을 추천한다.


매축지마을

매축지마을은 초량동과 가까운 범일동에 속해있지만, 초량이바구길과 먼데다 산비탈이 아닌 일제가 만든 매축지(매립지)에 형성된 마을이다. 매축지마을은 산에 있지 않아 살기가 그나마 낫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마을 자체가 오래되고 피난민들에 의해 형성되었기 때문에 집 사이사이 골목길은 더 좁고 생활공간 자체가 협소한 주택들로 이루어져 있다. 부산역 철도와 부산항 사이에 있는 마을로 이미 주변 곳곳은 재개발되어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주민들 대부분은 오랫동안 사셨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며 생활의 불편함 속에서도 이웃들 간의 끈끈한 정을 바탕으로 웃으면서 사시고 계시는 듯하다.

매축지마을지도. 그래도 다양한 단체들의 지원으로 마을이 존속되고 있다.
매축지마을의 골목길. 저 좁은 골목 사이로 사람들이 왕래하며 생활한다. 살고 있는 공간 또한 협소한 것이 느껴진다.
몇몇 예술가들의 도움으로 마을의 벽들에 예쁜 그림들이 그려졌다.
매축지마을 곳곳의 주택들은 1960-70년대를 연상시키는 듯하다. 마치 50-60년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매축지마을은 부산의 다른 달동네들보다 사정이 훨씬 열악하다. 초량이바구길 주변의 주택들은 그래도 증개축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동네는 50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해서 가난했던 우리나라 서민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분위기 덕분에 영화 <친구>, <아저씨>, <마더>, <하류인생>이 여기서 촬영되었기도 하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개발이 더딘 곳이 매축지마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곳 주민들의 삶에 도움을 주고, 치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벽화가 그려지고 곳곳에 눈길을 끄는 가게들을 만들었다. 하지만 살고 있던 노인분들이 돌아가시면서 많은 수의 집들이 빈집으로 방치되고 부산 동구 경찰서에선 이 빈집들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여 범죄를 막고자 노력하고 있다.

영화 <아저씨>의 전당포 건물. 영화 초반부가 여기서 촬영되었다.
영화 <아저씨>의 전당포 건물과 촬영장면. 출처: <아저씨> CJ엔터테인먼트

<아저씨>의 촬영으로 한 때 많은 사람들이 찾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발길이 뜸한 듯하다. 전당포 건물 1층의 스완양분식은 당시 찾아온 여행객들이 한 번씩 들리는 식당이었다.

영원히 울리길 바라지 않는 종. 매축지마을에 큰 화재가 났을 때 한 번 울리고 울리지 않는 종이라고 한다. 화재가 나면 종을 울리기 때문에 다신 울리지 않기를 바란다고...

매축지마을 자체가 볼거리다 보니, 마을 한 바퀴 도는 것 자체가 여정이다. 특별히 챙겨 볼 것은 매축지마을의 종으로 화재가 났을 때 인명을 구하기 위해 쓰이는 종이라고 한다. 30여 년 전 큰 화재가 났을 때 이후로 한 번도 울리지 않는 종이라고 한다.

매축지마을 건물들 자체가 옥상이 없고 지붕이 있는 형태라 빨래가 길거리 사이사이에 널린 장면들도 눈에 띈다.
매축지마을 바로 앞에 생긴 위브 아파트가 이 마을의 미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매축지마을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인 부산에 있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 옛 모습을 간직한 마을이다. 오래된 도시일수록 구도심에서 사람들의 이탈 현상이 벌어지면서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고 재개발까지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군산 월명동과 부산의 매축지마을은 거기까진 이어지지 않은 듯하다. 매축지마을의 빈 집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 걸로 보아, 이 마을 또한 보존과 철거의 갈림길에 서게 될 것이다.


감천문화마을

감천문화마을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부산의 달동네다. 그만큼 규모도 크고, 다른 달동네보다 해발고도도 높아 바다에서 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집들의 파노라마가 멋지기 때문에 '한국의 마추픽추'라 불리는 듯하다. 좁은 산비탈을 따라 펼쳐진 풍경은 부산의 여러 마을들 중 가장 멋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부산시에서도 감천문화마을을 관광명소로 강력하게 밀고 있다. 유명세를 탄 뒤 몇몇 예술가들도 마을에 입주했으며, 이 곳에 머물기 원하는 여행자들도 많아 게스트하우스도 만들어졌다. 감천문화마을은 안내소가 따로 있으며 여기서 지도를 구입해 스탬프를 찍으며 탐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감천문화마을은 부산 서구청 앞 버스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여섯 정류장 정도 가면 도착할 수 있다. 버스 운행이 가히 묘기라 부를 수 있는데 산비탈을 따라 꼬불꼬불 이어진 언덕길을 버스 운전사 아저씨는 요리조리 속도를 안 줄이고 잘 올라간다. 감천문화마을 입구는 버스를 타고 도달하는 가장 높은 곳에 있으며, 여기서부터 여정이 시작된다. '문화마을'이라는 이름답게 곳곳에 예술작품들이 설치되어 있으며, 이 작품들을 보면서 여행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감천문화마을 입구 정류장에서 본 마을 전경

감천문화마을 정류장이 감천2동 고개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마을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감천문화마을의 크기는 상상 이상으로 어마어마해 처음 보는 사람들이 한 번씩 놀랄 법하다. 산 전체를 조그마한 주택들이 겹겹이 쌓여 메우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해발 200~300m 사이에 위치한데다 주택의 행렬은 감천문화마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감천항까지 이어진다. 감천문화마을의 모든 골목길 구석구석을 하루 만에 탐방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므로, 여행자센터에서 2000원을 주고 구입할 수 있는 지도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 지도에선 2가지 코스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 코스를 따라가다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중간에 다른 길로 빠져도 괜찮다. 지도를 들고 방문 시 공짜로 엽서를 주는 곳 2곳은 하늘마루와 행복발전소이니 반드시 들리는 것이 좋다.

감천문화마을. 왼쪽, 오른쪽 어딜 보아도 산비탈에 있는 집들을 볼 수 있다.
감천문화마을의 달라진 모습은 도로를 따라 늘어선 상점들에서도 볼 수 있다.

감천문화마을은 앞에서 들렸던 두 마을과 달리 중국인, 일본인들도 방문하는 관광명소가 되어 있었다. 도로를 따라 늘어선 세련된 샵과 카페들은 이 마을이 침체기에서 벗어나 자생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길을 따라 늘어선 예술 작품들을 보는 것도 감천문화마을이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고, 몇몇 작품들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서는 진풍경도 연출되었다. 미친 듯이 더운 날씨 속에서도 여행객들은 마을의 골목길을 따라 걸으면서 즐 거어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주민들 또한 친절하게 사람들을 맞아주었다. 역시 사람이 살아가는 마을의 주인은 예술 작품이나 건물들이 아닌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감천문화마을에서 보이는 감천항. 등산을 해야 볼 수 있는 광경을 감천문화마을에서 볼 수 있다.
산비탈을 따라 자연스럽게 지어진 건물들이라 산의 능선이 그대로 살아있다. 오른쪽에는 승효상이 설계한 건물도 보인다.

산복도로를 벗어나 사람만 지나갈 수 있는 골목길로 들어서면 편의시설을 찾기 힘들고 감천문화마을 주민들의 삶과 마주하게 된다. 이 좁은 골목길 사이로 어떻게 냉장고나 에어컨을 설치했는지 참으로 신기할 뿐이다. 마을에 살고 있는 학생들은 통학을 위해 골목길을 비집고 들어가고 수많은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줄서서 사진찍는 어린왕자
예술가들이 입주한 감천문화마을의 거리들

골목길 곳곳에 예술가들의 흔적이 남아있으며, 여기서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의 집도 방문할 수 있다. 공방체험과 더불어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한 전시관들도 눈에 띈다.

특별한 볼거리는 없어도 부산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성장해왔는지 알 수 있다.

대부분 산지로 이루어진 부산에서 평지에 살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산에 집을 지으며 살아왔다. 감천문화마을을 비롯한 부산의 오래된 마을들은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예술가들에 의해 마을이 어떻게 살아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예다. 지금처럼 아파트에 살면서 옆집에 사는 사람도 잘 모르는 시대와 달리, 이 곳 사람들은 좁은 골목길에 몇 가구가 어우러져 살면서 이웃들과 이야기 나누며 살고 있을 것이다.

충무동교차로에서 감천문화마을까지 가는 마을버스. 꼬불꼬불한 산길을 잘 타고 감천문화마을까지 승객들을 태워준다.

감천문화마을의 코스를 따라 이동하면 감천마을 입구 버스정류장으로 다시 오게 된다. 산을 따라 형성된 마을이라 오르막길 내리막길을 수도 없이 따라 걸으며, 여름엔 땀을 한 바가지 흘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천문화마을은 대한민국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특별한 즐거움을 선사해주며, 부산의 굴곡진 역사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


부산 마을들의 미래

부산에서 적은 수의 여행객들이나마 찾는 마을 세 군데를 방문해보았다. 감천문화마을이 전국에서 몰려든 여행객들 뿐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에서 온 외국인들도 찾는 것을 볼 때, 이 마을은 오랫동안 지속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세 마을 모두 머지않은 시간에 주민들 대부분이 빠져나가 개발과 보존의 갈림길에 설 것이다. 우선 살아가는 것이 너무 불편한데다, 주민들 대부분이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다. 10~20년이 지나면 주민들이 떠나지 않더라도 적지 않은 수의 집들이 빈 집으로 방치될 것이다. 또한 부산이라는 도시 특성상 젊은이들이 일할 곳이 없어서 새로운 주민들을 받아들이기도 힘든 형편이다. 관광으로 활성화된 감천문화마을 조차도 일부 상인들만 이득을 볼뿐, 마을 전체 주민들의 삶이 나아질 거라고 기대하긴 힘들다. 세대가 바뀔수록 편리함과 돈만 추구하는 현상이 두드러짐을 볼 때, 가까운 미래에 이 마을들을 보존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감천문화마을은 그래도 오랫동안 지속될 부산의 관광명소지만, 매축지마을과 초량동 일대는 언제 바뀔지 모르는 마을들로 관심 있는 사람들은 최대한 빨리 방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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