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탄 왕국의 시작 트롱사와 미녀들의 천국 붐탕
부탄이라는 나라의 실상을 서서히 깨닫다
새로운 장소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대부분' 즐겁고 상쾌하다. 하지만 전날 강행군으로 몸이 으스러지고 눈 앞에 날벼락처럼 떨어진 돌덩이를 보고 나니, 부탄에 대한 실망감이 더해진다. 이렇게 살아가는 게 진짜 행복인 걸까 하는 의구심이 솟아오른다. 최신 기술로 인한 문명의 편리함을 충분히 맛 본 내가 이 곳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까. 부탄은 한 국가를 평가하는 지표인 GDP (Gross Domestic Product, 국내총생산), GNP (Gross National Product, 국민총생산)과 더불어 GNH (Gross National Happiness)라는 척도를 만들어 국민의 행복을 매년 평가하고 있다. 돈이 최고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들만의 독특한 행복 지표를 만들어 살아가고 있었는 것이다. 그들은 비슷한 산악국가인 네팔 (Nepal)이 여행자들에게 문호를 개방하여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 걸 전혀 부러워하지 않는다. 해외 여행자들이 뿌리는 돈에 의해 국민들이 세속화되고, 그들의 문화가 헌신짝처럼 내팽겨질 것을 우려해서다. 또한 현대 과학기술이 누리는 혜택을 한 번에 받아들이지 않고, 점진적으로 받아들이며 전통문화와 공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람들은 생활의 편리 대신 전통 의상인 고(Gho)나 키라(Kira)를 입고 다니며, 부탄 전역에선 공장 하나 찾아보기 힘들다. 부탄 정부의 목표는 단 하나.
"자신들의 문화를 보존하며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룬다"
제주도에 여행 갔던 수많은 사람들은 아름다운 화산섬에서의 삶을 꿈꾸며 그곳으로 이주하곤 한다. 하지만 겉으로 보이는 제주의 모습은 실상과 너무도 다르다고 한다. 여행과 달리 생활의 터전이 되는 순간 서울에서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치열하게 살아가야 한다. 또한 대도시에서 살아갈 때와 비해 부족한 일자리와 낮은 임금은 '한국의 파라다이스'에서 거주하는 것이 결코 쉽거나 행복한 것만은 아닌 걸 알게 해준다. 부탄 또한 제주와 비슷한 곳은 아닐까. 겉으론 평화로워 보이고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지만, 막상 살아보면 생각보다 힘들고 불편한 곳. 사람은 매일 누리는 문명의 편리함을 맛보지 못했을 때야 그 소중함을 안다. 제주로 이주했다 다시 도심으로 돌아온 사람들 대신 '효리네 민박'처럼 행복한 제주의 삶만이 사람들에게 전해지기 때문에 그 실상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부탄의 삶도 비슷하지 않을까. 여행자로 며칠 살아온 내가 이런 느낌을 받았다면 부탄에서의 생활은 더 고단하지 않을까. 행복해지는 법을 배우러 이 먼 곳까지 왔는데, 생각과는 다른 부탄의 모습에 급격히 우울해졌다. 부탄 정부의 목표를 따르기 위한 불편함과 비효율성이 한국인인 내 입장에선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부탄 왕국의 시작, 트롱사 (Trongsa)
구름으로 뒤덮인 트롱사 (Trongsa)는 너무나 을씨년스러워 내 기분을 더욱더 울적하게 만들어주었다. 분명 어제였다면 "Wow~ Beautiful!"이라는 탄성과 함께 멋지다고 생각했겠지. 같은 풍경이라도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주는 느낌이 너무나 다르다. 그럼에도 트롱사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해 발걸음을 옮긴다. 마을로 향하는 진흙탕 길은 어제의 길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곳곳에 도사린 구덩이를 요리조리 피해 걷는 것조차 너무 힘들다. 문명의 혜택과 기술의 발전에 너무나 익숙해진 나에겐 이런 길이 전혀 반갑지 않다. 게다가 최신 기술을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부탄에서의 삶은 내 직업과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저런 우울하고 잡다한 생각 속에 걷고 있으니 트롱사 마을의 포장된 길이 보인다. 늘 보던 아스팔트 길이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트롱사 (Trongsa)는 해발 2180m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부탄 왕국이 시작된 곳이다. 부탄은 100여 년 전만 해도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스위스처럼 작은 칸톤들이 연맹을 이룬 나라였다. 샵드룩 아래 한 나라를 이룬 부탄은 이후 내전으로 9개의 펜롭 (penlop, 영주)이 치열하게 경쟁하게 되었고, 최종 승자가 된 곳이 바로 트롱사 (Trongsa)다. 제1대 왕인 우겐 왕축 (Ugyen Wangchuck)이 바로 트롱사의 펜롭이었던 것. 왕국의 시발점이 된 마을은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부탄의 상징적인 곳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부탄의 왕자는 왕으로 등극하기 전, 반드시 트롱사의 펜롭으로서 지역을 다스려야 하는 전통이 있기 때문이다.
부탄 왕국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지만, 마을은 너무도 초라하고 조용하다. 한국으로 따지면 천년 왕국 신라가 시작된 곳이지만 지방의 작은 관광도시로 변모한 경주(慶州)와 비교될 만하다. 그래도 수많은 내외국인 여행객들이 찾는 경주가 언제나 시끌벅적한 것과 달리 트롱사는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아침 시장이라고 열린 곳은 몇몇 상인들이 재배한 농산물들을 팔고 있었고, 지나가는 행인들의 흔적도 찾기 힘들다. 마을을 대표하는 트롱사 종 (Trongsa Dzong)이 그 장대함과 아름다움으로 위엄을 뽐내고 있을 뿐. 구름으로 뒤덮인 트롱사 종은 이 작은 마을을 대표하는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숲 한가운데서 절벽 아래로 흐르는 계곡을 바라보며 적의 침입에 대비하고 있는 요새는 과히 철벽(鐵壁)이라 불릴만했다.
트롱사의 랜드마크, 트롱사 종 (Trongsa Dzong)
트롱사 종 (Trongsa Dzong)은 부탄을 건국한 샵드룽 응아왕 남걀 (Zhabdrung Ngawang Namgyal)의 증조부인 응아기 왕축 (Ngagi Wangchuck, 1517-54)에 의해 지어진 요새다. 그는 1541년에 수호신이었던 펠덴 라모 (Pelden Lhamo)의 발굽이 찍혀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 곳에 참캉 (tshamkhang, 기도처)을 지었다. 이후 참캉을 중심으로 휴식처, 절, 은둔처 등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현재 형태의 종이 완성된 건 1644년으로, 부탄 동부를 정벌하러 온 샵드룽의 신하 초겔 밍유르 텐파 (Chhogyel Mingyur Tenpa)에 의해서였다. 17세기에 데시 (desi, 부탄 왕국이 세워지기 이전의 지도자)였던 텐진 랍계 (Tenzin Rabgye)에 의해 요새는 더욱 확장되었지만, 1897년 대지진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고 만다. 이후 부탄의 첫 번째 왕의 아버지였던 지그메 남걀 (Jigme Namgyal)에 의해 요새는 대대적으로 복구되었고, 현재까지 그 원형을 유지하며 부탄 건축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트롱사가 작은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펜롭이 강한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부탄의 중심에 위치한 마을의 위치 때문이다. 부탄의 서부와 동부를 연결하는 유일한 길이 트롱사를 관통하며 나 있었기 때문에 무역의 중심지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 무역을 중개하며 얻은 통행세와 관세는 펜롭에게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었고, 이는 부탄 왕국을 통일할 수 있는 기초가 되었다. 재력의 힘은 어딜 가나 엄청나다. 고작 2000명 정도 거주하는 마을을 다스리는 도청이 이렇게 크고 화려하게 지어질 수 있다니. 트롱사를 보면 작은 섬에 불과한 홍콩과 싱가포르가 눈부시게 발전한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아무런 자원 없이도 전략적인 위치를 선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주니까.
요새 내부에는 절벽 아래 유유히 흐르는 망데 강 (Mangde Chhu)과 옛날 사람들이 트롱사를 지날 때 반드시 지나야 했던 조그만 길이 보인다. 수많은 상인들에 의해 다져진 오래된 길은 트롱사 종의 서문으로 향한다. 이 곳의 영주는 가만히 앉아 통행세를 받으며 떼돈을 벌었을 것이다. 서부와 동부 사이의 유일한 길을 선점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에 만족하지 않은 지그메 남걀 (Jigme Namgyal)은 부탄 서부와 동부의 교역을 담당하면서 아들인 우겐 왕축(Ugyen Wangchuck)이 왕국을 탄생시킬 기틀을 마련했다. 조선 왕조의 태종(太宗, 1367-1422)이 아들 세종대왕(世宗大王, 1397-1450)을 성군으로 만들기 위해 애를 썼듯이.
트롱사 종으로 들어가니 겉으로 보는 것만큼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다. 지형 때문에 길쭉하게 지어질 수밖에 없는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종들과 마찬가지로 가운데 탑 (utse)을 기준으로 신계(新界, 스님들의 공간)와 인간계(人間界, 정치인들의 공간)가 정확하게 나누어져 있다. 길쭉한 통로로 연결되어 있는 종 안에서 바라보는 거대한 자연의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종 내부엔 무려 23개의 하캉 (Lhakhang, 사원)이 있으며, 종을 설립한 응아기 왕축 (Ngagi Wangchuck)을 기리는 초르텐 (chorten)도 보인다. 종 내부에 그려진 벽화는 더없이 화려함을 뽐내며, 트롱사가 작은 마을이라고 결코 무시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듯하다.
트롱사의 상징이 되는 건물은 트롱사 종 외에 트롱사 탑 (Tower of Trongsa)가 있다. 트롱사 종보다 더 높은 위치에 서 있는 망루는 현재 부탄 왕국의 역사와 불교문화를 보여주는 훌륭한 박물관으로 변신했다. 우리가 들렀을 때는 아쉽게도 정전이 되어 내부를 관람할 수 없는 상황. 부탄의 가혹한 현실을 다시 한번 맛보며 돌아오는 길에 재도전해보기로 한다.
내 이럴 줄 알았지
트롱사를 지나자 어제만큼 험난한 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물로 고인 웅덩이는 들어가면 다시는 빠져나갈 수 없는 늪처럼 지나가는 차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며칠 전 내린 비에 더해 공사 중인 인부들이 대책 없이 뿌린 물은 붐탕으로 오는 여행자들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지뢰밭이 되어 있었다. 역시나 단체 여행객을 실은 승합자 한 대가 헛바퀴를 돌며 멈춰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안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타서 무거운데 4륜 구동도 아니니 아무 문제없이 이 길을 통과할 리가 없다. 따시와 파상은 나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허우적대는 차를 구하러 바지를 걷어올린다. 나도 도와주겠다고 나섰지만, 부탄 일은 부탄 사람들이 해결할 거라며 만류한다. 처음엔 힘에 부치는 것처럼 보였지만 때마침 뒤에 따라온 차량에서 내린 부탄 사람들의 힘이 더해지자 차량은 드디어 빠져나가는 데 성공한다. 영웅처럼 자신들의 임무를 완수한 따시와 파상에게 수고했다는 한 마디를 건네지만, 그들의 대답은 냉정했다.
"저 차는 또 한 번 위기에 빠질 거야. 저렇게 많은 사람들을 싣고 이 길을 가는 것 자체가 무리지."
또 하나의 고개, 요퉁라 (Yotong La)를 넘어 드디어 붐탕 (Bumthang)으로
험준하고 꼬불꼬불한 산길을 지나 해발 3425m인 요퉁라에 도착한다. 요퉁라의 알록달록한 깃발들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이 곳이 상징적인 장소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따시는 이 고개가 트롱사 종카그 (Trongsa Dzongkhag)와 붐탕 종카그 (Bumthang Dzongkhag)의 경계가 되는 곳이라고 말한다. 즉, 이 고개를 넘는 순간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붐탕 (Bumthang)에 입성하게 되는 것! 고개를 넘자 흙탕물로 뒤덮인 길은 사라지고 여행히 한결 수월해진다. 따시와 파상은 붐탕에 온 걸 엄청 기뻐한며 나에게 환영 인사를 건넨다.
"미녀들의 천국, 붐탕에 온 걸 환영합니다!"
붐탕 (Bumthang)이라는 이름의 기원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붐탕의 계곡이 부탄 사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붐파 (bumpa, 성수를 담는 주전자)를 닮았기 때문이라는 설이고, 두 번째는 여성을 의미하는 붐 (bum)에서 나왔다는 설이다. 탕 (thang)은 평원이라는 뜻이므로 붐파를 닮은 계곡을 품고 있는 땅 또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많은 땅이라는 의미가 된다. 붐탕에 미인들이 많다는 설은 현재 5대 국왕인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Jigme Khesar Namgyel Wangchuck, 1980-)의 왕비가 바로 붐탕 출신이라는 것에서 뒷받침된다. 따시는 황금빛 지붕이 올려진 집을 가리키며 저곳이 부탄 왕비가 살던 집이라고 이야기해준다.
부탄 왕과 왕비의 사진을 확인하니 연예인에 버금가는 그들의 외모에 놀라게 된다. 특히 5대 국왕의 훤칠하고 잘 생긴 외모를 보니 권력과 재력, 외모 삼박자를 두루 갖춘 그가 새삼 부러워진다. 부탄 국왕을 보니 작년 'Hottest Heads of State'에서 '가장 잘 생긴 국가 원수' 순위를 발표한 것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대한민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잘 생긴 국가 원수 9위에 뽑힌 것. 우리나라 대통령이 상위권에 올라와 있던 걸 뿌듯해하고 있을 때, 더 잘 생긴 8명의 면면을 보니 순위에 대해 반박할 수가 없었다. 오래전이라 기억이 안 나는데 이 잘생긴 분이 순위에 올라와 있던가? 놀라지 마시라.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의 순위는 무려 '3위'다. 북한의 김정은은 199명 중 199위. (출처: https://hottestheadsofstate.com/list/)
붐탕의 전통 옷감, 야트라 (Yathra)
잘 닦인 길을 따라 붐탕의 평원을 보니 아침에 느꼈던 우울함이 서서히 잊히기 시작한다. 아, 이 곳의 포근한 경치가 아니라 붐탕의 아름다운 여인들을 만날 거라는 설렘 때문인가. 부탄 왕비를 닮은 아름다운 여인이 없는지 사방팔방 둘러보지만 한적한 마을에서 인적조차 찾기 힘들다. 따시는 붐탕의 중심인 자카르 (Jakar)에 가면 실컷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날 들뜨게 만든다. 하지만 자카르에 들리기 전 반드시 봐야 할 것이 있다며 중니 (Zungney) 마을의 작은 상점에 들린다.
부탄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 07 - 야트라 (Yathra)
야트라 (Yathra)는 붐탕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수공예품이다. 양털을 손으로 직접 짜서 만든 야트라는 재킷, 핸드백, 스웨터뿐 아니라 전통복인 고(Gho)나 키라(Kira)를 만들 때도 쓰인다. 붐탕에서 야트라가 발달하게 된 이유는 이 곳의 추운 날씨 때문이다. 파로나 팀푸 같은 다른 지방보다 높은 위도에 위치한 붐탕의 추운 겨울을 보내기 위해 사람들은 야트라를 이용한 외투를 필요로 했다. 총균쇠에서 나오는 '발명은 필요의 어머니'라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닌 게 이 머나먼 땅 부탄에서도 증명이 된다. 양을 키우지 않는 부탄에선 야트라의 재료가 되는 양모(羊毛)를 티벳이나 뉴질랜드에서 수입해 왔지만, 최근엔 호주에서 지원받아 양을 사육하기 시작했다. 농업이 국가 산업의 90%를 차지하는 부탄이 자랑할 만한 몇 안 되는 공업 활동이라는 점에서 야트라를 생산하는 공장은 꼭 한 번 들려볼 만하다.
상점에 들어서면 부탄의 전통 축제인 쎄추 (Tsechu)에서 쓰이는 탈들이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 구루 린포체의 여덟 가지 형태를 그린 탈들을 비롯하여 온갖 신기한 모양의 탈들이 벽에 걸려 있다. 탈들을 비롯한 부탄의 각종 전통 공예품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있을 때, 따시는 나를 데리고 상점 안쪽으로 안내한다. 상점 안에는 양털을 이용해 만든 섬유인 야트라 (Yathra)를 이용해 직물을 만들고 있는 여인이 보인다. 수많은 실타래가 걸려 있는 섬유 기계는 다루기 쉽지 않아 보이지만, 이래저래 방향을 돌려가며 야트라를 엮는 모습이 참 신기하다. 그녀는 뒤편에 자기가 만든 융단을 보여준다. 알록달록하게 꾸며진 야트라는 수공예품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교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마치 부탄이 현대 문명을 거부하는 이유를 뒷받침하려는 것처럼.
야트라를 만드는 과정을 보고 나니, 따시가 나에게 최고급 고(Gho)를 입힌다. 우리나라 한복처럼 고(Gho)도 입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한복이 아름답지만 불편함 때문에 외면받는 것처럼 부탄 사람들도 갈수록 고(Gho) 대신 기성복 입는 걸 선호한다고. 어떻게 입을지 몰라 난감해하고 있으니, 따시와 파상이 달려들어 고를 입는 방법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한다. 너무도 복잡하고 어려워 머리 속에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입은 고(Gho)를 입은 내 모습을 보니 부탄 사람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키가 한 뼘 정도 차이가 날 뿐. 기념품으로 구입해도 될 정도로 예뻐서 가격을 물어보니, 따시는 자기가 세 달 정도 일해야 살 수 있는 최고급품이라고 한다. 정확한 가격을 듣고 나니 포기하고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다.
붐탕 지킴이, 자카르 종 (Jakar Dzong)
붐탕의 중심 자카르 (Jakar)는 평원에 위치한 마을이라 파로 (Paro)와 비슷한 분위기다. 물론 규모는 훨씬 작지만. 따시는 마을의 건물들이 비교적 새로 지어진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2010년의 대화재가 자카르의 모든 곳을 불태웠다고 말한다. 마을의 길이 포장이 안 된 건 아직도 복구공사가 덜 끝났기 때문. 따시는 현지인들이 찾는 조그만 식당으로 가서 음식을 주문한다. 최상급의 음식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오후 2시가 넘은 시각에 먹는 늦은 점심은 꿀맛이다. 적어도 며칠간 욕이 절로 나오는 왕두에-붐탕 도로에 갈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더욱 맛있을 수밖에.
오랜 여정으로 지쳐있지만, 오후의 남는 시간을 이용해 자카르 종 (Jakar Dzong)에 오른다. 자카르 종은 붐탕에서 가장 유명한 계곡인 초코르 계곡 (Chokhor valley)을 지켜보고 있는 요새다. 파로에서 들린 드룩겔 종 (Drukgyel Dzong)과 마찬가지로 티벳의 침략을 물리친 걸 기념하기 위해 1667년에 지어졌으며, 현재는 붐탕 지역을 다스리는 도청의 역할을 하고 있다. 자카르 종은 일반적인 종(Dzong)의 건축 형태를 따르지 않고, 중앙탑인 우체(utse)가 요새 가운데 대신 바깥벽에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전설에 따르면, 샵드룩의 증조부이자 트롱사 종 (Trongsa Dzong)을 지은 응아기 왕축 (Ngagi Wangchuck)이 1549년에 자카르 종 (Jakar Dzong)의 기원이 되는 사원을 건설했다고 한다. 왕축이 사원을 지을 장소를 물색하던 중, 갑자기 거대한 하얀 새가 나타나 언덕 위 돌출부에 앉았고 이를 길조라고 여긴 그는 새가 앉은 장소에 사원을 지었다. 자카르 종이라는 명칭 또한 '하얀 새의 요새'라고.
지금까지 본 종(Dzong)은 중앙탑을 중심으로 반은 행정국, 반은 불교국으로 나뉘었지만, 자카르 종 (Jakar Dzong)의 건축 양식은 확연히 구별된다. 일반 주택과 다름없는 좁은 문을 지나면 사무실들이 줄지어 서 있는 마당이 눈에 띈다. 마당 건너편으로 가면 오른편에 외벽과 붙어 있는 우체(utse)가 보이고, 뒤편으로 스님들이 거주하는 공간이 보인다. 서쪽 끝에는 티벳의 침략을 감시하는 망루가 서 있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참카르 강 (Chamkhar Chhu)을 낀 풍요로운 평원이 나타난다. 부탄이라는 나라도 특이하지만, 붐탕이라는 지역은 정말 독특하다. 산악 국가인 부탄에서도 비교적 높은 해발 2580m라는 고도, 부탄의 어느 곳보다 추운 겨울을 가지고 있어 쌀 재배가 불가능한 곳, 수많은 미녀들을 품고 있는 땅. 붐탕의 독특함을 뽐내기라도 하듯, 자카르 종 또한 자기들만의 통통 튀는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부탄 왕국의 끝에서
유목민들이 정착했을 때 느낀 기쁨이 이런 것일까. 울퉁불퉁한 길을 당분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아침의 우울한 기분이 씻은 듯이 사라진다. 하루 만에 지옥과 천당을 왔다 간 느낌이다. 내 기분이 끝에서 끝으로 간 것처럼, 이 날의 여정도 부탄의 시작과 끝으로 간 느낌이다. 부탄 왕국의 시작이 된 트롱사에서 그 끝인 붐탕에 왔으니까. 붐탕이 부탄 왕국의 끝이라는 건 지리적 위치 때문이 아니다. 붐탕에서 태어나고 자란 왕비가 2016년 2월에 왕조의 대를 이을 왕자를 낳았기 때문. 왕국의 역사는 트롱사에서 시작해 현재 붐탕으로 이어지고 있다. 역사적인 현장에 와 있다는 사실은 항상 날 들뜨게 한다. 특히 붐탕처럼 독특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곳에 머무는 건 더욱 즐겁다. 붐탕이라는 곳은 도대체 어떤 곳일까. 다음 날의 여정이 너무도 기대되기 시작한다. 호감 있는 사람에 대해 조금씩 알아갈 수 있다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