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기억에 남을 최악의 하루

부탄의 지옥같은 길, 왕두에-트롱사 로드

by TOMO
고통의 행군길, 펠레 라

눈을 비비고 일어나니 어제 본 풍경은 온 데 간데없고 안개로 뒤덮인 로베사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아니, 안개라기보단 구름에 가까운가. 남한의 최고봉인 한라산보다 높은 곳이니 구름이 맞는 말인 것 같다. 온갖 고생을 하고 지리산이나 설악산에 올라야 볼 수 있는 광경을 이렇게 간단하게 누릴 수 있다니. 전날 호텔에서 제공한 저녁은 부탄에서 경험한 최악의 식사였지만, 호사를 누릴 수 있게 되니 불만이 조금이나마 사라진다. 역시 스트레스를 풀 때는 잠이 보약이다. 자고 일어나 세상을 바라보면 나빴던 기억은 금세 잊히고 오늘 하루는 즐거울 거란 기대감에 들뜨게 된다.

로베사 마을에서 왕두에 포드랑 종카그 (Wangdue Phodrang Dzongkhag)로 가는 길

상쾌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따시, 파상에게도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따시는 오늘은 어제보다도 더 힘들고 긴 여정이 될 거라고 말한다. 즐거운 기분이었던 내가 오히려 그들을 위로하며,

"너네들이랑 함께 장난치고 이야기하면 어제보다 더 재밌게 놀 수 있지 않을까?"

라고 물어본다. 따시는 살짝 웃으며 파상의 어깨를 두드려준다.

"오늘 여행의 모든 건 파상에게 달렸으니, 파상을 위해 기도하자고."

파상은 어제와 달리 약간 굳은 표정으로 차에 탄다. 그에겐 오늘 하루가 정말 힘든 '일' 그 자체였다는 걸 이 때는 몰랐다.

bhutan_map.jpg 부탄 도로 지도. 도로 확장 공사는 Wangdue부터 Trashigang까지 이르는 부탄 전역에서 동시에 진행 중이다.

지도로 대강 살펴보니 오늘 우리가 쉬어 갈 트롱사 (Trongsa)까지는 길어야 50km 정도의 거리인 것 같았다. 파로에서 로베사 마을까지의 여정보다 기껏해야 조금 더 긴 거리를 운전해서 가는 건데 도대체 뭐가 힘들다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불로 타서 재건 중인 왕두에 포드랑 종 (Wangdue Phodrang Dzong)까진 파상도 힘들이지 않고 속도를 붙여 쌩쌩 달린다. 폐허가 된 요새를 지나자 따시가 우려했던 그 장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포장이 되지 않고 맨살이 드러난 산길. 게다가 이틀 전 내린 비로 흙탕물이 곳곳에 고여있는 길. 초등학교 이후로 대한민국에선 한 번도 보지 못한 최악의 길 상태를 보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아니, 이 길을 4륜 구동차도 아닌데 지나갈 수 있다고? 장난?"

펠레 라 (Pele La)

산악 왕국인 부탄에서 고속도로가 있을 턱이 없고 'Main Road'라고 표시된 빨간 길이 그나마 가장 좋은 길이다. 아니 '이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부탄의 경제 발전이라는 목표 하에 부탄 정부는 서부에서 동부로 이어지는 'Main Road'를 2차선으로 확장하기로 결정했다. 수백 km에 달하는 산악 도로 확장 공사를 한 회사가 독점할 수는 없는 일. 인도의 여러 건설 회사들이 각 구간을 나누어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수완이 좋은 회사가 맡은 구간은 거의 다 완공이 되었지만, 한심한 회사 몇몇은 아직도 다이너마이트로 산을 폭파시키고 있다. 2017년 말까지 공사가 끝날 거라고 기대한 부탄 정부지만, 2차선을 달릴 그 날은 아직도 요원하다. 도출 라 (Dochu La, 3140m) 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펠레 라 (Pele La, 3420m)도 한창 공사 중이라 전망을 바라 볼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보이는 가. 끝없이 이어진 진흙탕 길이.
야크를 만나 위안을 얻다

흙탕물에 빠져 차를 밀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 기다렸지만, 우려했던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파상의 놀라운 운전 실력으로 그나마 안전하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던 것. 아무리 뛰어난 운전수라도 절벽을 깎아 만들어진 모든 돌들을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덜커덩거리는 차 안에서 허리에 가해지는 충격이 누적되어 가만히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다. 잠시 내려서 쉬고 싶다고 생각하는 찰나, 따시가 밖을 보라고 말한다.

펠레 라에서 흘러나온 계곡 주변에 야크들이 목을 축이러 앉아있는 모습.

생애 처음 보는 야크들의 모습에 경탄을 하며 그들에게 다가간다. 내가 다가가자 모든 야크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본다. 세상에, 이렇게 늠름하고 잘 생긴 동물이었다니. 외모뿐 아니라 튼튼하고 강인한 그들의 자세는 야크가 왜 부탄에서 가장 사랑받는 동물 중 하나인지 알게 해준다. 따시는 야크가 부탄에서 왜 필요한 지 설명해준다.

"야크는 말과 노새들이 지날 수 없는 높은 산과 눈 덮인 길들을 무거운 짐을 지고 걸을 수 있어. 히말라야 산맥을 오르고 내릴 때 반드시 필요한 소중한 벗이지."

그뿐만 아니라 치즈와 고기까지 제공해 주는 등 부탄 사람들에게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유익한 동물이라고 연설을 한다. 덕분에 아직도 부탄에서는 야크를 필요로 하며,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유목민들이 야크를 전문적으로 기르고 있다고 한다. 계곡의 야크들 또한 유목민들이 기르고 감시하고 있는 중이라고.

계곡에 앉아 경계하는 야크들

가까운 곳엔 새끼 야크들이 풀을 뜯어먹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사나워 보이는 야크들이라도 어릴 땐 귀여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나 보다. 너무도 작고 귀여운 새끼 야크들을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따시가 만류한다. 건너편에 있는 야크들이 여기까지 달려오는 건 일도 아니라고. 눈 깜짝할 사이에 저 세상으로 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따시의 말에 지레 겁을 안 먹을 수가 없다. 적어도 부탄에 한해선 그가 나보단 훨씬 전문가니까. 어쩔 수 없이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신비한 생명을 보며 달콤한 휴식을 취하기로 한다.

건너편에 있는 귀여운 새끼 야크들
트롱사로 가는 길 내내 산이 파헤쳐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부탄에서 먹는 집밥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 종일 차 안에 앉아있었음에도 기진맥진한 상태다. 쉬지않고 롤러코스터를 탄 느낌이랄까. 다행히 멀미를 안 하는 내 체질에 감사하며 점심을 먹으러 노르부 양펠 식당 (Norbu Yangphel Restraunt)에 들어선다. 실내엔 아무도 없었지만 잘 꾸며진 장식과 창문 건너편에 보이는 계곡의 모습이 아름답다. 부탄에는 주택을 항상 전통 양식으로 지어야 하는 법이 있다고 한다. 살아가기엔 다소 불편할지 모른다. 하지만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 때문에 부탄의 어느 식당을 가도 목조 주택에서만 느껴지는 포근함과 옛날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다정함을 느낄 수 있다.

남자가 군 생활을 하면서 휴가를 받아 집에 들어간 느낌이랄까.

이 곳까지 굳이 찾아오는 여행객들의 수도 적은 지, 뷔페 대신 정성껏 차려진 부탄 요리들이 나온다. 집밥처럼 맛있다. 대량으로 만들어진 뷔페 요리를 먹다가 어머니가 해주신 요리를 먹는 기분이었다. 허기를 채우니 다시 한번 자신감이 생긴다. 트롱사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갈 수 있을 거라고.

노르부 양펠 식당 내부와 그 곳에서 먹은 점심 식사
첸뎁지 초르텐 (Chendebji Chorten)

펠레 라 (Pele La) 주변의 고산 지대와 달리 계곡으로 내려오자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곳곳에 보인다. 마을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차량의 수도 많아진다. 덕분에 흙탕물로 뒤덮인 구덩이는 점점 깊어지고 차에서 내려야 할까 봐 다시 한번 조마조마해진다. 옆을 지나치는 포크레인과 거대한 화물차들은 내 공포감을 더욱 증폭시킨다. 밥 먹고 한 다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빨리 트롱사까지 도착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만이 남는다.

악몽을 꾸게 만드는 길 중 하나, 왕두에-트롱사 로드.

다행히 차는 무사히 첸뎁지 초르텐 (Chendebji Chorten)까지 도달한다. 초르텐 양옆으로 펼쳐진 수많은 하다르 (Lhadhar)가 여기가 신성한 장소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인적도 없는 이 곳에 탑이 세워진 데는 이유가 있을 터. 따시는 여기가 '세 개의 능선과 세 하늘이 만나는 곳'이라고 설명해준다. 부탄 사람들은 자연이 만나는 기이한 장소에는 항상 악이 도사린다고 알고 있다. 즉, 또 다른 악마의 힘을 억누르기 위해 탑을 만들어 놓은 것.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이 곳에 사는 악마인 '응갈라 두듬 (Ngala dudm)'을 물리친 뒤, 그의 힘을 누르기 위해 라마 응에숩 첼링 왕축 (Lama Ngesup Tshering Wangchuk, 1645-1726)이 18세기에 지었다고 한다.

하다르 (Lhadhar)로 둘러싸인 첸뎁지 초르텐 (Chendebji Chorten)

첸뎁지 초르텐은 네팔의 카트만두 계곡에 위치한 스와야부나스 (Swayambhunath) 사원을 본떠 지어졌다고 하며, 초기 불교 선교사들이 다니던 초르텐 길 (chorten path)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탑이라고 한다. 불교 성지이자 부탄 민간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곳이기 때문인지, 그동안 보이지 않던 수많은 여행객들이 여기서 참배를 하고 있다. 탑 꼭대기 사방에 그려진 눈동자는 악마 '응갈라 두듬 (Ngala dudm)'을 감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죄수들의 탈옥을 감시하는 교도소의 망루처럼, 첸뎁지 초르텐은 부탄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밤낮 구분 없이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첸뎁지 초르텐 (Chendebji Chorten)은 네팔 양식으로 지어진 탑이다
여행은 고되지만 이따금 보이는 산들의 아름다운 풍경이 위로가 된다.
따시촐링 하캉

계속되는 고된 길을 따라 한 시간 정도 여정을 이어나가니, 따실링 마을 (Taschiling Village)이 나온다. 마을 오른편에 위치한 따시촐링 하캉 (Tashichholing Lhakhang)은 부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절. 그럼에도 내가 따시에게 여길 가자고 조른 것은 승려들이 불교 예술에 종사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원의 문을 지나쳐가니 아니나 다를까, 사원 벽에 벽화를 그리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비록 옛날 그대로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는 건 아니지만, 그들의 정성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땡볕에서 벽화를 그리는 사람들

사원 안의 조그만 건물에선 승려들이 불상을 만들고 비단에 자수를 수놓고 있다. 사원은 경배와 예식의 장소뿐 아니라 '가이랍 불교 예술 교육원 (Gaylab Arts and Crafts Institute)'으로도 유명하다. 승려들이 의식뿐 아니라 각종 불교 예술에도 능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었다. 진정으로 '완성된 승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할까. 더 많은 시주를 받아 절을 꾸미고 불상을 구입하는 일반적인 사고방식을 뒤엎는 이들의 자세에 다시 한번 놀랄 뿐이다. 종교에 대한 내 관념은 항상 똑같다.

'실제로 일해보지 않은 성직자는 일반 서민들의 삶을 논할 수 없고 그들을 위로해 줄 수도 없다.'

절에 상주하면서 자급자족하기 위해 논밭을 가꾸는 스님들.

업무시간에 과일을 팔며 서민들의 고통을 느끼고자 하는 목사님들.

해외에 의료지원을 나가 봉사하는 신부님들.

부탄의 승려들도 내가 존경하는 성직자들과 같은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 감동을 느낀다.

불교 예술에 종사하는 승려들
따시촐링 하캉 (Tashichholing Lhakhang). 아쉽게 사원 내부엔 들어가지 못 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했던가. 길 상태는 점점 더 나빠졌다.
부탄 여행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 06 - 부탄왕국의 형성과 행정 구역, 종카그 (Dzongkhag)

부탄은 왕국이 되기 전 9개의 펜롭 (penlop)으로 구성된 나라였다. 샵드룩 이후 구심점을 찾지 못하고 펜롭끼리 내전으로 혼란스러워 있던 때에 영국이 미얀마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부탄을 침략하게 된다. 부탄은 당시 강대국이었던 영국을 이길 수가 없었고, 영국 또한 아무런 자원도 없는 험준한 산지인 부탄의 가치를 낮게 보고 있었기 때문에 차지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었다. 영국은 단지 그나마 낮은 고도에 위치한 땅들을 탐냈고, 이를 얻기 위해 전쟁을 했던 것이다. 트롱사 (Trongsa)의 펜롭이었던 지그메 남걀 (Jigme Namgyal, 1825-82)은 부탄을 대표하여 전쟁 초기에는 영국 세력들을 몰아내는 데 성공하지만 결국 패하여 지금 인도 영토가 돼버린 암바리 팔라카티 (Ambara Falakati), 데완기리 (Dewangiri), 칼림퐁 (Kalimpong) 같은 주요 도시들을 잃고 만다. (이 도시들은 지금도 인도 영토로 남아있다.)

영국과의 전쟁 중에도 부탄 내부에선 끊임없는 내전이 일어났는데, 파로, 푸나카, 왕두에 포드랑 지방의 펜롭들이 지그메 남걀 (Jigme Namgyal)의 자리를 위협했다. 지그메 남걀은 왕국이 세워질 기초를 세운 뒤 그의 아들인 우겐 왕축 (Ugyen Wangchuck, 1862-1926)에게 그 자리를 넘겨준다. 우겐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힘 있는 펜롭들의 세력을 하나씩 규합하고 1907년 12월 17일 부탄 왕국을 세우게 된다. 트롱사라는 작은 지역의 펜롭이 한 나라의 왕이 된 것이다. 우겐은 중국의 위협을 억제하고 왕국을 유지하기 위해 영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1910년에 매년 10만 루피를 내는 조건으로 영국으로부터 자치권을 얻게 된다.

부탄은 원래 기존 펜롭들이 다스리던 9개의 종카그(Dzongkhag)로 이루어져 있었다. 붐탕, 둑예, 하, 파로, 푸나카, 다가나, 팀푸, 트롱사, 왕두에 포드랑이 9개의 지역인 부탄 왕국이었던 것이다. 1981년 4번째 국왕인 지그메 싱예 왕축 (Jigme Singye Wangchuck)에 의해 지방의 분권화가 추진되기 시작했으며 현재 20개의 종카그(Dzongkhag)가 각 지역을 대표하고 있다. 각 종카그마다 도청에 해당하는 종(Dzong)이 있으며, 부탄의 국회의원 20명은 각각의 지역에서 한 명씩 뽑힌다. (나머지 5명은 국왕이 직접 선발한다.) 종카그는 한국과 비교하면 도(Province)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부탄의 험준한 지역상 다시 네 지역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서부 - 팀푸 (Thimphu), 파로 (Paro), 하 (Haa), 삼체 (Samtse), 추카 (Chukha)
중부 - 가사 (Gasa), 푸나카 (Punakha), 왕두에 포드랑 (Wangdue Phodrang), 다가나 (Dagana), 치랑 (Tsirang)
남부 - 붐탐 (Bumthang), 트롱사 (Trongsa), 젬강 (Zhemgang), 사르팡 (Sarpang)
동부 - 루엔체 (Luentse), 몽가르 (Mongar), 트라시강 (Trashigang), 트라시 양체 (Trashi Yangtse), 파마갓셀 (Pamagatshel), 삼드룹 종카르 (Samdrup Jongkhar)
Zones_of_Bhutan.svg.png 부탄의 20개 종카그 (Dzongkhag)
부탄 건축의 경이로움, 트롱사 종 (Trongsa Dzong)

사원을 나와 다시 시작한 여행길은 점점 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불과 몇 분 전, '아, 이것보다 길 상태가 나쁠 수는 없겠지'라던 내 생각을 뛰어넘는 길이 계속해서 등장한 것. 이제 고통스러운 허리는 안중에도 없고, RPG 게임의 어려운 스테이지를 하나씩 클리어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뷰 포인트 (Viewpoint)에 도착하니 따시가 거대한 트롱사 종 (Trongsa Dzong)의 모습과 우리가 앞으로 묵을 숙소인 양첸 리조트 (Yangchen Resort)를 보여준다. '드디어 다 왔구나'라는 안도감과 함께 트롱사 종을 감상하니 끊어질 것 같은 허리의 고통이 조금이나마 덜어진다. 산의 능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지어진 트롱사 종은 숲으로 뒤덮여 자연과 마치 하나가 된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내일 아침에 부탄 왕국의 시발점이 된 요새로 들어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렌다.

트롱사 종은 마을 규모만큼 거대한 모습을 자랑한다.
트롱사는 마을이 집중되어 있지 않고 흝어져 있다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다

인생은 그렇다. 항상 기쁨이 있으면 불행도 있는 법이다. 자기가 원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더라도, 원치 않는 일을 해야 될 때도 수없이 많다. 가고 싶었던 여행을 떠나더라도, 생각지도 못한 일이 우리를 괴롭히는 일이 허다하다. 좋은 사람을 만나도 생각지도 못한 모습에 실망하는 때가 분명히 있다. 이런 인생의 이치를 알고 있으면 느끼는 고통이 조금이라도 덜어질 법한데, 실제 불행을 맞닥뜨리면 당황하기 일쑤다. 이 날 일정의 마지막이 그랬다.

불과 15분 전에 일어난 산사태로 길이 막혀버린 왕두에-트롱사 루트

부탄의 도로공사는 정말 위험하기 짝이 없다. 우리나라같이 산길 내는데 도가 튼 건설사들은 바위를 폭파시키고 나서도 산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갖가지 작업들을 한다. 펌프로 물이 흘러갈 수 있는 길을 만들고, 돌이 구르더라도 도로에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그물을 만든다. 내가 인도 건설사들이 부탄에서 도로를 확장하고 있는 것을 관찰하니 이런 기반공사는 '전무'했다. 트롱사까지 오면서 본 수많은 돌덩이들도 아마 공사 도중에 굴러 떨어진 것들일 가능성이 컸다. 산사태의 위험성도 너무나 당연했던 것. 뷰포인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산사태가 일어났다는 비보가 전해진다. 그것도 우리 일행 바로 앞에서.

포크레인이 왔지만 우리들의 기대를 한 번에 무너뜨린 일이 발생했다

따시는 우리가 따시촐링 하캉만 들리지 않았어도 지금쯤 호텔에서 맥주를 마시며 쉬고 있었을 거라고 불평한다.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가 없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우리가 조금만 더 빨랐어도 돌덩이 밑에 깔려 저 세상으로 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고 위로하니 따시의 화가 약간 풀린 모습이다. 우리는 차에서 나와 사태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조용히 관찰하기로 한다. 때마침 나타난 원숭이들은 나무 위에서 끽끽거리며 우리 인간들을 놀리는 듯 보였다. 자연을 건든 대가를 톡톡히 치루라는 듯.

"저기, 포크레인이 온다!"

누군가 큰 소리로 뒤에서 온 포크레인을 반기고 있었다. 이때 포크레인의 모습은 마치 아이언맨과 같았다. 위풍당당하게 길 앞의 돌들을 치우는 기계의 모습은 당시엔 영화 한 장면처럼 멋졌다. 따시, 파상과 함께 오늘 맥주 먹을 수 있을 거라고 기뻐하고 있던 찰나, 포크레인이 갑자기 멈춘다. 따시가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난 뒤 나에게 건넨 말이 가관이었다.

"기름이 다 떨어져서 이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대."

앞 뒤로 차가 꽉 막혀 있는데 기름까지 없다니... 길에서 꼼짝없이 노숙해야 될 생각을 하니 부탄을 여행지로 선택한 나 자신이 한심하고 서러워진다. 트롱사로 갈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트롱사에서 기름을 배달하고 포크레인에 연료를 채운 뒤 다시 작업을 시작하는 것.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이 방법이 끝나니 사방은 어두컴컴해지고 시간은 벌써 8시를 가리켰다. 위험한 밤길을 헤쳐나가 호텔에 도착하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늦은 저녁을 먹고 아픈 허리를 두드리며 나도 모르게 잠이 드니 지옥의 나락에서 드디어 구제받은 기분이 들었다. 오늘같은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Dzongkhag

출처 - http://www.nationsonline.org/oneworld/map/bhutan_map.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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