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중의 오지, 탕 계곡(Tang valley)에서 전해지는 전설들
이별은 언제나 슬프다
힘들게 찾아온 붐탕이지만, 하루가 지나면 이 곳을 떠나야 한다.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일수록 이별의 시간은 아쉽게 마련이다. 기억에 남을 추억이 담긴 여행지는 떠날 시간이 되면 이 곳에 조금만 더 있으면 안 될까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붐탕은 이틀이면 충분히 다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는 나 같은 여행자에게 특별히 매력적인 곳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기 싫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부탄 왕비를 닮은 아름다운 여성들이 많아서도 아니고, 고된 여행길 끝에 편안하게 쉴 수 있었던 곳이라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매력 있는 사람을 만나면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처럼, 매력 있는 여행지엔 오래 머물고 싶어 진다. 붐탕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든 건, 여행하는 동안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숨겨진 매력을 발견했기 때문은 아닐까.
붐탕 지역은 네 개의 큰 계곡을 따라 사람들이 오손도손 살아가는 곳이다. 가장 큰 마을인 자카르(Jakar)를 품고 있는 계곡이 초코르(Chokhor) 계곡으로, 붐탕에서 가장 유명한 절들이 모여있어 붐탕 계곡으로 불린다. 츄메(Chhume) 계곡은 트롱사에서 자카르로 향하는 길에 있는 곳으로, 부탄의 왕비가 태어나고 자란 것으로 유명하다. 우라(Ura) 계곡은 부탄 동쪽 지방인 몽가르(Mongar)로 향하는 길에 있는 흥미로운 마을이다. 탕(Tang) 계곡은 붐탕 지역에서 가장 외지고 먼 곳에 위치한 계곡이지만, 아름답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곳이다.
자카르(Jakar)에서 부탄 동부로 향하는 길을 달리는 대신 왼쪽으로 꺾어 올라가면 탕 계곡(Tang valley)으로 갈 수 있다. 구루 린포체에 미치진 못 하지만 인기라면 둘 째가라면 서러워할 뻬마 링파(Pema Lingpa)의 고향답게, 곳곳에 그의 흔적이 숨어있다. 뻬마 링파의 고향인 쿤장드락 굄바(Kunzangdrak Goemba), 뻬마 링파가 구루 린포체의 보물을 찾은 멤바르초(Membartsho), 구루 린포체가 남긴 흔적을 기념하기 위해 뻬마 링파가 지은 따 리모첸 하캉(Ta Rimochen Lhakhang)과 같은 성지가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탕 계곡의 끝에는 뻬마 링파와 같이 불교 성물을 찾아 헤맨 돌지 링파(Dorji Lingpa)의 후손들을 만날 수 있다.
붐탕에서 마지막 날은 가장 찾아가기 힘든 탕 계곡을 탐방하며 뻬마 링파와 부탄의 한 가문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이별하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하루 종일 눈과 귀를 열기로 결심하고 파상이 운전하는 차에 오른다. 어제는 둘 뿐인 여행이었지만, 세 명이서 함께하는 여행이라면 더욱 즐거울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파상 같이 좋은 사람과 다시 만나 오늘 하루를 보낸다고 생각하니, 탕 계곡에 대한 기대감이 마음속에서 부풀어 오른다.
불타는 호수, 멤바르초 (Membartsho)
탕 계곡은 붐탕 계곡보다 높은 지대에 있다. 꼬불꼬불한 1차선 도로를 따라 한참을 올라가면 산 중턱 높은 곳에 쿤장드락 사원이 있는 걸 볼 수 있다. 따시는 사원까지 올라가기 위해선 45분 정도를 걸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허락하면 일정의 마지막에 뻬마 링파의 고향인 사원에 갈 거라고 말한다. 사원 대신 먼저 들린 곳은 불타는 호수라 불리는 멤바르초(Membartsho)다.
한국의 서남단 끝에 있는 섬, 진도(珍島)에선 매년 봄 2.8km의 바닷길이 열린다. 모세가 나일강을 가르는 듯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이 장관을 보기 위해 무려 5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먼 길을 달려와 진도를 찾아온다. 기독교인들은 모세가 나일강을 가르며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는 장면을 연상시키며 감동을 얻는다. 하지만 우리나라 민간신앙에선 '뽕할머니'의 슬픈 이야기가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아주 옛날 손동지라는 사람이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중 폭풍을 만나 원래의 목적지로 가지 못하고 진도에 정착하게 된다. 하지만 손동지가 정착한 마을에는 호랑이의 침입이 잦아 사람들이 바다 건너편 모도라는 섬으로 피신을 가게 된다. 미처 같이 섬으로 가지 못한 뽕할머니만 마을에 남게 되었는데, 할머니는 가족을 만나게 해달라고 날마다 용왕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의 꿈에 나온 용왕은 무지개다리를 놓아줄 테니 바다를 건너라고 말한다. 다음 날, 할머니는 가족을 만나기를 고대하며 무지개다리를 따라 바다를 건너고, 식량과 물이 떨어진 주민들도 기쁜 마음에 굿을 하면서 마을로 돌아가게 된다. 다리 위에서 기적적인 상봉을 마친 할머니는 기력이 떨어져 숨을 거두게 되지만,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 문제가 된 호랑이와 할머니를 함께 데려감으로써 이야기는 끝나게 된다.
뜬금없이 저 머나먼 땅 한국의 전설을 꺼낸 이유는 진도 신비의 바닷길에 얽힌 이야기처럼 기적이 일어났다고 하는 곳엔 항상 재미있는 전설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멤바르초(Membartsho) 또한 '불타는 호수'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가 있다. 뻬마 링파는 27살이 되던 해에 꿈에서 계시를 얻어 구루 린포체가 남긴 보물이 숨겨진 장소가 탕 계곡의 깊은 웅덩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대장장이 일을 멈추고 힘찬 물줄기를 뿜어내는 계곡을 찾은 그는, 웅덩이 아래 수많은 문이 달려있는 절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대부분의 문이 잠겨있지만 오직 하나의 문이 열려있는 걸 보고, 뻬마 링파는 저곳이야말로 구루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이라 판단한다. 웅덩이 속으로 헤엄쳐 들어간 그는 절이 있던 자리에 동굴이 있는 걸 찾게 되고, 동굴 안에 들어가 불상을 비롯한 수많은 보물상자들이 성좌 위에 있는 걸 확인한다. 동굴 안에는 보물을 지키고 있었던 외눈박이 할머니가 서 있었다. 그녀는 뻬마 링파가 임무를 완수한 걸 기뻐하며 그에게 보물 상자를 건네주고, 뻬마 링파는 보물을 얻자마자 무사히 호수 가장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첫 번째 테르마(terma, 보물)을 찾은 후, 뻬마 링파는 다시 계시를 받아 호수로 돌아오게 된다. 그가 보물을 찾은 이야기는 이미 널리 알려져 수많은 사람들이 그가 보물을 찾는 걸 보기 위해 호수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당시 붐탕 지방의 펜롭(penlop, 영주)은 그가 속임수를 쓴다고 의심하게 된다. 뻬마 링파는 그가 실제로 이 곳에서 보물을 찾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불타오르는 램프를 들고 외친다. "만약 내가 진실로 보물을 찾는 사람이라면, 이 호수에서 빠져나올 때도 램프는 타오르고 있을 것이오." 그가 물에 들어가 한참을 나오지 않자 영주는 그가 역시 사기꾼이었다고 비웃는다. 하지만 사람들이 기다리는 걸 포기하고 떠나려는 순간, 뻬마 링파는 새로 찾은 보물들과 불이 꺼지지 않은 램프를 들고 호숫가로 돌아오며 그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걸 증명했다. 이후 기적에 감탄한 사람들에 의해 이 곳은 '불타는 호수(Burning Lake)'라 불리게 되며, 지금도 수많은 부탄 사람들이 찾는 성지가 되었다.
멤바르초로 가는 길가엔 부탄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수많은 차차(tsha-tsha, 흙으로 만든 봉헌물)를 발견할 수 있다. 각양각색의 차차들은 이 머나먼 곳에 와서까지 그들의 염원을 이루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가 담겨있었다. 멤바르초를 볼 수 있는 다리 위에는 수많은 룽다르가 걸려있어, 이 곳이 바로 뻬마 링파의 성지라는 걸 금방 알 수 있게 해준다.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니, 깊은 산 중턱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계곡에 불과하다. 영겁의 세월 동안 자그마한 폭포에 의해 만들어진 깊은 웅덩이가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따시는 웅덩이를 자세히 보라고 말하며 나에게 말을 건넨다.
"아래를 봐.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은 뻬마 링파처럼 웅덩이 속 절을 볼 수 있어."
"내 눈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난 악인(惡人) 인가 보네."
"내가 보기에 넌 개과천선할 수 있어. 일단 너도 불자(佛者, 불교를 믿는 신자)부터 되고 보자고."
다시 한번 부처님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따시가 한결같아 피식 웃음이 나온다. 따시는 나에게 많은 걸 안 바란다고 무사히 이 곳을 빠져나가는 걸로 만족한다고 말한다. 멤바르초의 신성함을 무시하고 물놀이를 시도한 외국인 몇몇이 익사한 사고들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란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은 사실인가 보다. 기적 또는 재앙의 장소가 된 이 곳에서 내 소원을 빌고, 죽은 영혼들을 위로하는 기도를 올리며 '불타는 호수'를 빠져나왔다.
바위에 새겨진 역사의 흔적
따 리모첸 하캉(Ta Rimochen Lhakhang)은 구루 린포체가 명상한 장소를 표시하기 위해 뻬마 링파가 14세기에 지은 사원이다. '따 리모첸'은 호랑이 줄무늬 자국을 의미하는데, 절 뒤편 바위에 노란색 줄무늬가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구루 린포체의 곁을 지키는 호랑이의 흔적이 이 곳이 그가 명상을 한 장소라는 걸 뒷받침하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사원 건물 주변 바위 곳곳에 구루와 그의 배우자였던 예쉬 초걀(Yeshe Tshogayl)의 손자국과 발자국이 남아있다. 사원 아래는 구루가 목욕을 한 장소를 비롯해 예쉬 초걀의 엉덩이 자국도 만나볼 수 있다. 가루다 바위가 암컷, 수컷으로 나뉘어 구루의 성지를 지키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따시는 구루의 흔적이 넘치는 사원에 온 것이 얼마만이냐며 나보다 더 흥분한 상태로 차에서 내린다. 평상시 차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기만 하던 파상도 구루를 만나러 함께 그의 흔적을 찾아 떠난다.
"파상을 차에서 내리게 하다니... 여기가 진짜 중요한 장소이긴 한가 보네."
"당연하지. 구루의 흔적을 이렇게 눈 앞에서 바라보며 더듬을 수 있는 곳은 부탄에서도 흔치 않거든."
역시 구루 린포체는 부탄을 대표하는 지도자이자 연예인이다. 그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 아무리 먼 길에 있더라도 한걸음에 달려와 그를 만나러 오는 걸 보면 말이다. 가루다 바위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서니 기도 바퀴를 돌리며 사원을 돌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바위 곳곳에 새겨진 역사의 흔적을 보며 건물 안으로 들어서려는 찰나, 사원을 지키고 있던 스님이 붐탕 시내에 일이 있어 자리에 없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아쉬워하는 나를 보고 따시는 이 사원은 안에 들어가도 별 게 없다고, 돌에 새겨진 구루의 흔적 자체가 중요한 곳이라고 위로해 준다. 별 수 없지. 따시, 파상의 뒤를 따라 사원의 기도 바퀴를 돌린 뒤, 오랜 세월을 한 자리를 굳건히 지킨 가문을 만나러 간다.
시간이 멈춘 마을, 탕 계곡 (Tang valley)
탕 계곡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시간은 거꾸로 흘러간다. 평화로운 논밭의 풍경은 수백 년 동안 세월의 흐름을 비껴간 느낌이다. 길 양 옆에 펼쳐진 황금빛 들판에서 벼를 거두고 있는 농부들, 힘센 소 두 마리를 이용하여 밭을 갈고 있는 농부 아저씨. 서구 자본과 기술을 비껴간 부탄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다. 보기엔 너무도 평화롭고 아름다운 광경이지만, 농민들의 고단한 노동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조금도 덜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각종 농기계를 이용해 보다 편하고 빠르게 농사짓는 우리나라 농부들과 비교하니 반드시 문명을 거부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부탄은 정말 행복한 나라가 맞나요?'라는 의심이 머리 속에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비록 한국에서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을 사진으로 담을 수 있는 건 즐거웠지만.
여기가 바로 부탄의 국립 민속박물관! 우겐 촐링 궁전 (Ogyen Chholing Palace)
탕 계곡의 끄트머리에는 한 자리를 오랫동안 지켜온 낙창(naktsang,농가)이 서 있다. 한 때 트롱사의 영주이자 돌지 링빠(Dorji Lingpa)라는 테르톤(terton, 보물 찾는 사람)의 후손이기도 한 뎁 쵸켸 돌지(Deb Tsokye Dorji)에 의해 16세기에 지어진 집이다. 오겐 촐링 궁전(Ogyen Chholing Palace)이라는 이름을 가진 건물은 비록 농가이지만 권력가였던 집안의 힘 때문인지 마치 궁전 같은 모습을 자랑한다. 지금은 민속 박물관으로 탈바꿈한 건물들은 1897년 대지진으로 파괴된 뒤 다시 지어졌다. 절을 비롯해 우체(utse, 망루), 공연장, 주거 장소, 객사(客舍, 손님들이 머무는 곳)로 이루어진 건물에서 한 가문의 내력과 부탄 귀족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부탄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유물들은 궁전 가운데 거대한 우체(utse)에 전시되어 있다. 유물에 대해 설명해 주시는 분은 가문의 대를 이어 현재 이 곳에 살고 있는 쿤장 초덴(Kunzang Choden) 씨다. 부유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란 그녀는 9살에 인도로 유학을 떠난다. 인도 델리에서 심리학을, 미국에서 사회학을 공부한 그녀는 부탄으로 돌아온 뒤 팀푸의 유엔 개발계획 (UN Development Program)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은퇴한 뒤, 스위스인 남편과 함께 고향인 붐탕에 돌아와 우겐 촐링 궁전을 박물관으로 만들어 가문의 역사와 부탄의 문화에 대해 설명해주고 계신다.
귀족 가문의 주택답게 그동안 볼 수 없었던 부탄의 신기한 유물들을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축제에 쓰이는 가면을 비롯해 수호신처럼 집을 지켜주는 인형들이 곳곳에 서 있다. 2층에선 이 귀족 가문이 이웃나라인 티벳과 어떻게 교역을 했는지 상세하게 알 수 있다. 오겐 촐링 가문은 담배, 쌀을 비롯한 농작물을 들고 가 티벳으로부터 중국 차, 사금, 소금 등을 얻어왔다. 현재 교환한 물품들이 아직도 남아있어 생생한 역사를 전하고 있다. 층마다 전시되어 있는 물품이 달라 항상 새로운 기대를 갖고 계단을 오른다. 귀족들이 사용한 화려한 생활품들을 비롯해 보자기로 싸여 보관되고 있는 예언서들이 보인다. 섬뜩한 표정을 짓고 있는 탈들은 마치 가문의 보물을 훔쳐가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쿤장 초덴 씨의 설명이 끝난 뒤 조그마한 절로 들어가 본다. 절은 원찰(願刹, 가문의 사찰) 답게 작은 규모지만, 깔끔하게 보존된 벽화와 오래된 불상들은 이 절 또한 예사롭지 않은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알려준다. 오겐촐링 가문 사람들은 대를 이어 이 절에 봉헌을 하고 가문 구성원들의 명복을 빌었다. 재력이 있는 귀족 가문답게 화려한 벽화를 그릴 수 있었고, 정교한 불상도 절에 모실 수 있었다. 절이 오랜 세월 동안 원래 모습 그대로 언덕 위를 지키고 있었던 것은 오겐 촐링 가문이 부처님의 공덕을 이해하고 이를 실천했기 때문이 아닐까.
오겐 촐링 가문의 내력을 알아본 뒤, 쿤장 초덴씨의 남편을 만날 수 있었다. 쿤장 초덴씨가 UN에서 일했기 때문인지, 스위스인과 만나 결혼한 것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남편의 이름은 왈터 로더(Walter Roder)로, 고향인 스위스를 떠나 수십 년 동안 부탄에서 살고 계셨다. 레드 판다라는 환상적인 맥주를 부탄에서 탄생시킨 프리츠 마우러(Fritz Maurer)와도 아는 관계냐고 물으니, 같은 스위스인으로서 그의 사업이 잘 되도록 열심히 도와줬다고 한다.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부탄에서 살아가는 것이 힘들지 않냐는 물음에 그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부탄은 스위스와 비슷한 산지라 마치 고향에서 살아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아요. 게다가 제 옆엔 사랑하는 아내가 있으니 살아가는 것이 힘들 리가 있나요."
궁전은 언덕 꼭대기에 있어 짧은 트레킹을 즐기기엔 제 격이다. 계곡 건너편에 펼쳐진 산들은 보니 왈터 씨의 말 대로 마치 스위스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감상에 빠져 걷고 있으니, 가까운 사원에서 두 아이가 뛰쳐나와 우리를 따라온다. 한 아이는 스님이 될 교육을 받고 있는 듯한 옷차림이고, 다른 아이는 일반적인 농가에서 온 것처럼 보였다. 나이가 들면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관계가 될 터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은 그저 해맑게 웃으며 재미있게 놀고 있다. 아이들의 행복해 보이는 웃음을 보니 부탄이 행복한 나라일까라는 의심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보면 행복 저렇게 보면 불행. 여행의 막바지엔 결론을 내야 할 텐데 큰 일이다.
사람의 때가 묻지 않은 탕 계곡을 건넌다.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물을 보니 발을 담그며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부탄답게 강 옆에는 거대한 초르텐이 서 있다. 초르텐 옆을 지나자 이 일대의 강과 숲을 관리하고 있는 아저씨가 등장한다. 초록색 옷을 입은 아저씨는 친근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며 이 곳만큼 점심을 먹기 좋은 곳은 없다고 말한다.
"점심 먹을 곳을 찾고 있지? 여기만큼 좋은 곳도 찾기 힘들 거야."
계곡을 바라보니 때마침 몰려온 부탄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어, 그런데 사람이 많네요. 그늘은 벌써 꽉 차 있고... 땡볕에서 먹어야 될 거 같은데요 ㅠ"
"그러네? 언제 사람들이 저렇게 많이 왔대. 보통은 이렇지 않은데 운이 없구먼."
"괜찮아요. 아마 따시가 더 좋은 곳을 알고 있을 걸요? 하하"
따시를 슬쩍 보니 난감한 표정이다. 이 곳 외에 다른 장소는 미처 생각을 못 한 것 같다. 아저씨도 따시를 바라보더니 폭소를 터뜨린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산림청에서 일하고 계시는 공무원이랄까. 너무도 유쾌한 아저씨를 만나고 나니 잠시나마 허기가 가신다.
만날 수 없으니 바라만 보는 것으로 만족하다
따시와 파상은 점심 먹을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이 곳 저곳을 둘러본다. 탕 계곡을 따라 자카르로 향하는 길 위에서 한참을 달리니 쿤장드락 사원이 보이는 전망대가 있다. 시간이 허락하면 돌아오는 길에 뻬마 링파의 고향인 사원으로 올라가 볼 예정이었지만, 이미 두 시가 넘은 시각이었고 점심을 먹고 나면 남는 시간이 없을 듯하다. 대신 전망대에서 사원을 바라보며 붐탕이 낳은 위대한 인물에 대해 떠올린다. 만날 수 없으니 바라만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돗자리를 깔고 따시가 싸 온 점심을 먹고 나니 한 숨 자고 싶어 진다. 따시와 파상은 자기 집 안방인 양 벌렁 드러누워 있다. 에라 모르겠다. 나도 잠시 쉬어가야지. 뻬마 링파의 기운을 느끼며 탕 계곡에서 쉴 수 있는 것도 소중한 경험이니까.
자카르로 돌아오는 길에 쿤장드락 사원 대신 비구니들의 사찰인 뻬마 텍촉 쵤링 셰드라(Pema Tekchok Choeling Shedra)에 들린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건물은 산 위에 있는 사원답지 않게 놀라운 규모를 자랑한다. 2층으로 연결된 건물은 긴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고 방 어디서든 넓은 안마당을 마주 보도록 설계되어 있다. 여자 스님이 나와 본당을 열어주고 안을 둘러보라고 안내해준다. 역시나 새로 지은 사찰이라 내부는 보잘것없었다. 수많은 여자 스님들이 살고 있다는 상징성만 기억에 남을 뿐.
붐탕의 지는 저녁놀을 바라보며
붐탕을 떠나기 전 마지막 저녁놀을 바라보자며 따시는 자카르가 한눈에 보이는 높은 언덕으로 나를 데리고 올라간다. 붐탕 답게 닝마(Nyingma) 사원인 로드락 카르추 굄바 (Lhodrak Kharchu Goemba)는 1970년에 지어진 역사가 짧은 사원이다. 400명이 넘는 승려가 거주하는 사원 강당에는 거대한 구루 린포체, 죽지셰, 석가모니 상이 서 있다. 사원 앞마당에선 자카르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니 평생 다시 오기 힘든 이 곳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그동안 붐탕이 들려준 수많은 이야기들이 서서히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걸 느낄 수 있다. '천일야화'의 술탄이 셰에자라드 왕비의 이야기가 끝을 맺으며 사람이 변한 것처럼, 나에게도 큰 변화가 올 지 궁금했다. 그런데 1001일이라는 시간과 고작 이틀의 시간이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짧은 시간의 경험으로 변화를 바라거나 결론을 내리는 것은 섣부른 행동이다. 부탄에서 고작 2주를 보내면서 이 사람들이 정말 행복한 지에 대해 판단하는 것도 위험한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탄에서 수십 년 살아온 왈터 씨 정도는 돼야 '부탄은 행복한 나라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아직도 나는 확실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그저 붐탕을 떠난다는 사실에 아쉬움만 가득할 뿐이었다. 아쉬움을 위로하기 위해 자카르의 한 가게에서 피자를 씹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