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부탄의 지상 낙원, 폽지카!

더 이상 사원은 그만! 부탄의 자연에 푹 빠져 보자.

by TOMO
부탄의 숨겨진 매력, 폽지카

여행을 떠나면 항상 무엇인가에 대한 기대감을 품고 떠나기 마련이다. 일본에 갈 때 마음가짐이 유럽이나 동남아시아에 갈 때의 그것과 다른 것처럼, 여행지에 따라 품는 기대도 확연히 다르다. 여행지의 매력이 각기 다르지만, 어딜 가든 내가 가장 먼저 찾는 곳은 각 나라의 역사적 명소다. 유적지를 먼저 찾는 이유는 국경 너머 다른 나라가 가진 역사적 배경과 문화에 대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여행 트렌드와 뒤떨어진 구시대적 사고방식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문화 유적 탐방은 나에게 다른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흥미롭다. 서로가 품고 있는 생각과 배경을 공유하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 여행을 떠날 때도 마찬가지다. 각 나라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를 찾은 후에는 여행의 시야가 훨씬 넓어진 것을 깨닫게 된다. 맛집 탐방이나 액티비티 같은 최근 여행 트렌드를 느끼고 체험하는 것은 그다음 단계다.


그런데 부탄은 뭐랄까. 가이드를 따라다니는 여행을 하다 보니 부탄이라는 나라에 대해 충분히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사원 탐방은 끝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역사∙문화 마니아라지만 일주일 내내 절만 들린다면 지겨울 수도 있지 않겠는가. 맛집 탐방은 부탄에서는 꿈도 꿀 수 없으니, 부탄의 자연을 둘러보며 트레킹이나 래프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나 간절해졌다. 이제 역사와 문화는 충분히 알았으니, 부탄의 자연환경이나 식문화에 눈을 돌릴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기도 했고. 초상화를 처음 감상할 때는 인물에 집중하다가 나중엔 배경에 눈이 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 면에서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부탄의 문화 탐방을 잠시 쉰 뒤 만난 폽지카 계곡은 나에겐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여행의 재미를 지속하게 만드는 윤활유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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폽지카 마을의 환상적인 아침 풍경

폽지카(Pobjikha)는 해발 2,900m에 위치한 산골마을로 (부탄의 모든 마을이 산골이긴 하지만), 지그메 싱예 왕축 국립공원 (Jigme Singye Wangchuck National Park)의 경계가 되는 블랙 마운틴즈 (Black Mountains) 왼편에 있는 평원이다. 폽지카는 부탄의 여느 마을과 달리 구루 린포체나 뻬마 링파의 흔적을 따라가는 곳은 아니다. 폽지카의 가장 유명한 사원인 강테 굄바 (Gangte Goemba)가 뻬마 링파에 의해 지어지긴 했지만, 이 마을의 주인공은 부탄의 국보와 다름없는 새인 검은목 두루미 (black-necked crane)다. 평원을 가로지르는 나끼 강 (Nakey Chuu) 주변으로는 야생동물들이 살아가는데 최적인 늪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먹고 마실 것이 풍부한 환경을 품고 있는 폽지카에는 검은목 두루미뿐 아니라, 문착(Muntjac)이라는 사슴, 멧돼지, 물사슴, 시로, 아시아 흑곰, 표범, 붉은여우 등의 야생동물이 살고 있어 과히 천국이라 불릴 만하다. 이 곳에 살고 있는 부탄 사람들은 야생동물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강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아간다. 폽지카는 부탄의 여느 지역과도 다른 환경을 가지고 있는 곳이라, 이 곳 주민들은 강텝(Gangteps)이라 불리며, 헨케(Henke)라는 사투리를 즐겨 쓴다. 부탄이 인도로 수출하는 주요 품목 중인 하나인 강테 감자도 이 곳에서 재배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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폽지카에서 서식하는 야생동물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문착, 시로, 표범, 붉은 여우, 아시아 흑곰, 물사슴
폽지카의 늪 한가운데를 걸으며

내가 폽지카에 첫눈에 반할 거라는 따시의 예상은 정확했다. 아침에 일어나 바라본 평원은 짙은 구름이 쫙 깔려 영화 <사일런트 힐>과 같은 몽롱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걷는 듯한 느낌으로 산책을 떠났지만, 아침 해가 뜨고 구름이 걷히자 폽지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나를 포근하게 안아준다. 인적 없는 길은 사람을 겁내지 않는 강아지들이 차지하고 있고, 길 건너편에는 소와 말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 모습이 보인다. 좁은 공간에서 사료를 먹으며 사는 가축들을 생각하면 폽지카는 지상 낙원이 분명하다. 아침 이슬로 촉촉해진 풀들을 먹는 소들의 눈망울은 우리 안에 갇혀 있는 소들과는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부탄은 사람들뿐 아니라 동물들도 행복을 느끼는 나라라는 걸 알려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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폽지카의 산책길을 걷는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마을을 걷다 보니 스님들의 예불 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주위를 둘러보니 일반 주택과 다른 독특한 지붕을 한 담첸 하캉 (Damchen Lhakhang)이 눈에 들어온다. 어린 승려들이 사원 주위를 맴돌며 아침 의식을 준비하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들어가도 되냐고 물어보지만, 내 말을 이해하지 못 한 스님들은 손가락으로 입구를 가리킨다. 흙벽으로 된 오래된 사원 내부는 향과 과일, 수많은 스님들의 체취가 섞여 사찰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유한 냄새를 풍긴다. 몇몇 스님들이 나를 신기하듯이 쳐다본다. 마치 외국인은 처음 보는 것처럼. 마룻바닥에 잠시 동안 앉아 불경을 읊는 소리와 악기 소리를 조용히 감상하기 시작했다. 잠깐만이라도 부처님의 보살핌을 받으며 마음을 정화시켜야 신성한 장소인 폽지카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IMG_6968.JPG 담첸 하캉 (Damchen Lhakhang)

사원에서의 짧은 명상을 끝내고 계곡 건너편 마을인 킨가탕(Kingathang)으로 가기로 한다. 폽지카 계곡은 자연 그대로를 보존하기 위해 사람들의 접근을 허용하고 있지 않지만, 사이사이로 작은 길들이 나있어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언덕을 내려와 강으로 접근하니 늪지대가 나온다. 사람에겐 위협이 되는 늪지대지만, 동물들에겐 물과 먹이를 제공해주는 천국과도 같은 곳이다. 푸른 하늘을 캔버스에 담은 것처럼 나끼강 (Nakey Chuu)은 에메랄드빛을 띤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를 맞아준다. 나무판자로 대충 만든 다리를 겨우 건너고 나니 뜨거운 태양을 피할 수 있는 숲이 나온다. 그늘 아래서 폽지카 계곡의 환상적인 모습을 감상하고 있으니, 이 나라에서 찾고자 했던 행복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느낀다.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을 나만 간직할 수 있었다는 이기심에서 비롯된 건지, 한국에서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멀리 벗어난 안도감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폽지카에서 내가 행복했다는 기억만 간직하면 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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폽지카 계곡의 작은 마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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폽지카 평원을 가로지르는 나끼강 (Nakey Chuu)

행복에 취해 정신이 없을 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니 어느덧 오전 8시가 넘어있었다.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트레킹을 시작하기 위해선 서둘러야 했다. 빠른 발걸음으로 호텔을 향해 허겁지겁 걷는다. 눈 앞에서 폽지카의 풍경이 차례대로 변하기 시작한다. 군데군데 솟아있는 언덕 위의 마을과 행사를 위해 모인 폽지카 주민들, 폽지카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는 강테 굄바 (Gangte Goemba). 고작 반나절밖에 없는 시간 동안 천국과 다름없는 이 곳을 기록으로 담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내 오른손은 정신이 없다. 평생 다시 이 곳을 밟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 속에 셔터를 눌리느라 바빴지만, 이 날의 산책은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행복한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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폽지카의 초원은 야생동물이 서식하기에 최적인 환경이다.
아침을 먹으며

호텔에 들어가니 나를 위한 아침식사가 따로 준비되어 있다. 붐탕과 달리 폽지카의 데와첸 호텔(Dewachen Hotel)에선 유럽 각지에서 온 수많은 여행객들을 볼 수 있었다. 연인, 단체, 혼행족 등 다양한 사람들이 폽지카에 모였지만, 그들 모두 부탄에 온 목적이 폽지카에 방문하기 위해서란다. 며칠 동안 이 곳에 머물고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트레킹을 즐기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다. 역사와 문화로 따지면 붐탕에 비해 초라한 폽지카였지만, 폽지카에서 느낄 수 있는 아늑함은 부탄 어느 지역과 비교해도 꿇릴 것이 없다. 굳이 머나먼 붐탕까지 가지 않고 폽지카에 며칠간 머무르기로 한 그들의 선택은 현명했다. 지옥과 다름없는 왕두에-붐탕 로드 때문만은 아니다. 폽지카 계곡의 주인공인 검은목두루미 때문도 아니다. 폽지카만이 줄 수 있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부탄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행복함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IMG_7348.JPG 데와첸 호텔 (Dewachen Hotel)
부탄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 09 - 검은목 두루미 (black-necked crane)

검은목 두루미는 우리나라에서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멸종위기종이다. 몸은 회색빛을 띠지만, 머리∙목∙다리는 검기 때문에 검은목 두루미라고 불린다. 키는 100~130cm, 무게는 4.5~6kg으로, 북유럽과 서아시아 등지에 분포하고 겨울이 되면 아프리카와 남유럽으로 이동하는 철새다. 폽지카가 유명해진 이유는 티벳 고원에서 살고 있는 희귀한 새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선택한 곳이 폽지카 계곡이기 때문이다. 10월 말에 폽지카로 온 검은목 두루미는 2월 중순과 3월 중순 사이에 다시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티벳으로 향한다. 주민들 말에 따르면 검은목 두루미는 강테 굄바 위를 세 바퀴 돌아 경의를 표한 뒤, 티벳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검은목 두루미를 관찰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10월 말에서 이듬해 3월 사이다. 두루미들은 폽지카 계곡 주변에서 밤을 보내기 때문에 새벽녘과 해 질 녘이 이들을 관찰할 수 있는 적절한 시간이다. 10년 전에는 212마리 정도가 군집을 이루어 부탄으로 넘어왔지만, 주민들의 노력이 결실을 이루어 현재는 450마리 정도가 매년 겨울에 폽지카를 찾아온다고 한다.
검은목 두루미를 만나다

10월 중순은 검은목 두루미가 부탄으로 넘어오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아직도 티벳 고원은 이들이 지내기에 따뜻한 곳인 듯했다. 검은목두루미 안내센터를 찾으면 망원경으로 계곡을 관찰할 수 있는데, 두루미는커녕 야생동물 한 마리 눈에 띄지 않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때마침 개의 습격을 받아 날 수 없게 된 검은목 두루미 한 마리를 센터에서 보호하고 있었다. 무리에서 벗어나 홀로 외롭게 서 있는 검은목 두루미의 모습이 너무도 처량하다. 난생처음 보는 검은목 두루미는 너무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지만, 초점을 잃은 듯한 눈동자에서 그의 슬픔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따시는 이 새가 다시 무리를 만나 티벳으로 넘어가게 되면 나에게 말해준다고 약속한다. 그 날이 오기 전에 다시 한번 부탄으로 오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IMG_7382.JPG 검은목 두루미 (black-necked crane)
강테 사원을 만나러

나처럼 폽지카에 하루만 머무는 여행객들은 수많은 트레일 중 가장 아름답고 유명한 강테 네이처 트레일 (Gangte Nature Trail)을 따라 걷는다. 평원 한가운데서 트레킹을 시작해 언덕을 오르며 폽지카 계곡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멋진 루트다. 다른 나라 같았으면 진작에 개발되었을 풍요로운 땅이 태초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니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길을 같이 걷고 있던 따시는 내가 웃고 있는 걸 보자, '거봐, 역시 넌 폽지카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잖아.'라고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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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테 네이처 트레일 (Gangte Nature Trail)을 걸으며 만날 수 있는 풍경

따시의 말에 동의하며 조용히 폽지카 계곡을 바라보고 있으니, 한국에도 비슷한 풍경이 있다는 걸 떠올린다. 폽지카처럼 사람의 접근 자체가 차단이 되어 야생동물의 천국이 된 곳. 바로 DMZ(비무장지대)다. 분단의 상징이 된 비무장지대 곳곳엔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풍경이 펼쳐진다. 휴전선을 따라 곳곳에 설치된 전망대에서 감상할 수 있는 풍경 또한 폽지카와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답다. 임진강을 가로지르면 북한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는 파주, 해금강과 더불어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해변을 끼고 있는 고성도 있지만, 폽지카와 가장 비슷한 곳은 철원(Cheorwon, 鐵原)이다. 철원은 한국전쟁 이전에는 북한의 영토였다. 하지만 3년에 걸친 전쟁 막바지에 이 곳에서 격전이 펼쳐졌고, 한국군은 철원 땅을 휴전선 이남으로 확정 짓는다. 철원이 풍요로운 땅이라는 걸 알고 있던 김일성은 이 소식을 듣고 피눈물을 흘렸다고 하는 일화가 전해진다. 하지만 농사를 짓기에 최적인 철원평야 대부분은 아픈 기억을 간직한채 버려진 땅으로 남아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철원평야는 인간에겐 버려진 땅이지만 지금은 철새들이 겨울마다 찾아오는 낙원으로 변해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철원 땅은 폽지카와 너무도 흡사하다. 10여 년 전부터 철원에도 검은목 두루미가 찾아오는 걸 보면 '한국의 폽지카는 바로 철원이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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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정도 오르면 언덕 위 거대한 사원이 눈 앞에 펼쳐진다

강테 굄바(Gangte Goemba)는 트레킹의 최종 목적지인 거대한 사원이다. 폽지카라는 작은 마을에 어울리지 않은 장대한 규모는 부탄에서 이 사원이 차지하는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사원의 영역에 들어가면 불교 용품을 팔고 있는 상인들이 줄지어 서있다. 강테 굄바는 스님들이 거주하는 공간이 높은 벽을 이루어 절을 둘러싸고 있는 형태다. 마치 종(Dzong, 요새)에서 행정국만 뺀 형태라고나 할까. 벽을 빙 둘러가면 사원의 입구를 지나 본당을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다. 본당은 18개의 거대한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3층짜리 건물로, 부탄에서 가장 큰 건물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사원의 역사는 15세기에 뻬마 링파 (Pema Lingpa)가 폽지카를 방문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폽지카 계곡을 둘러본 후, 현 위치에 사원이 지어질 거라고 예언했다. 한참이 지난 1613년, 뻬마 링파의 손자이자 그의 환생체 중 하나인 뻬마 틴리 (Pema Thinley)는 할아버지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 이 곳에 닝마 사원을 지었다. 두 번째 환생체인 텐징 렉삐 덴둡 (Tenzing Legpey Dhendup)이 사원을 확장하고 마무리 공사를 끝냄으로써 남아있는 형태가 지금의 강테 굄바인 것이다. 닝마 사원답게 본당 안으로 들어가면 뻬마 링파의 환생체들을 기리기 위한 초르텐(chorten)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강테 굄바를 떠나 팀푸로 향하게 되면 더 이상 닝마 사원을 보기 힘들다. 붐탕에서 멀어질수록 뻬마 링파의 발자취가 옅어지기 때문이다. 아마 이번 부탄 여행에서 마지막으로 들릴 닝마 사원이 이 곳이 아닐까. 앞으로 남은 여정을 무사히 끝내고 내 허리(?)가 온전한 상태로 보전되길 원하며 기도를 올린 뒤, 사원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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폽지카의 거대한 사원, 강테 굄바 (Gangte Goemba)
다시 로베사 마을로

폽지카를 떠나 다시 로베사 마을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폽지카를 들리지 않았더라면 내 허리는 남아나지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자, 폽지카에 대한 고마움이 더욱 커진다. 폽지카 계곡과 강테 굄바의 아름다운 풍경을 머리 속에 간직하려 애쓰며 심호흡을 한다. 로베사까지 가는 길 상태만 좋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다행히 맑은 날씨 속 마른 길은 이전보다 훨씬 나은 상황이었고, 창 밖에서 보이는 풍경도 눈을 즐겁게 해준다. 허리가 아픈 상황에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자, 같은 곳을 여행하더라도 전혀 다른 것을 볼 수 있다는 진리가 와 닿는다. 점심을 해결한 쿠엔펜 식당(Kuenphen Restaurant)에서 본 부탄의 수많은 산들, 강으로 둘러싸여 탈출이 절대 불가능할 것만 같은 교도소가 하나씩 뇌리에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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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펜 식당 (Kuenphen Restaurant)에서 바라본 풍경
IMG_7710.JPG 부탄의 교도소. 행복한 나라에도 범법자들은 있기 마련이다.

생각보다 일찍 로베사 마을에 도착하니, 발아래 펼쳐진 계단식 논을 보면서 맥주를 마실 시간이 생긴다. 지금까지 여정을 무사히 마쳐서인지 따시는 자기가 맥주를 대접할 거라고 말한다. 넉넉지 않은 자금 사정에도 나를 위해 배려를 해주는 그의 씀씀이가 고맙기만 하다. 부탄 여행에서 앞으로 남은 일정은 4일밖에 없다. 푸나카(Punakha) 팀푸(Thimphu)를 들리고 나면 다시 방콕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른 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내가 곧 부탄을 떠난다는 사실에 아쉬워하자, 따시는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법화경>의 말씀을 예로 든다.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헤어진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 그는 우리가 반드시 다시 만날 거라고 말하며 절대 아쉬워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지구 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 우리가 만나 2주라는 긴 시간을 함께 보낸 건 전생에 좋은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따시의 말에 힘을 얻고 먼 훗날 다시 부탄을 방문할 거라는 다짐을 한다.

"다음에 올 땐 우리 히말라야 산맥을 따라 걸어보자. 야크랑 같이 눈길을 트레킹 하는 건 부탄에서밖에 할 수 없는 경험이라며!"

"그래. 그런데 다음엔 절대 혼자 오지 말고 연인이랑 함께 와. 널 생각해서 이러는 건 아니고, 혼행족을 상대로 한 여행은 수지가 잘 안 맞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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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묵었던 로베사 마을에서 다시 하루를 쉬어간다


야생동물 이미지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Main_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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