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덴마크 사람들>을 읽고
오랫동안 한국을 떠나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해봤다. 세계 각국으로 여행을 떠났지만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은 한국만큼 살기 좋은 나라는 찾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잘 산다는 미국은 국민에게 가장 기본적인 의료조차 제공하지 못하는 한심한 나라였으며, 한국인들이 떵떵거리고 살 수 있다는 동남아시아는 한국보다 부패가 심한 나라이며 국민들 또한 이러한 부패를 즐기고 당연시하고 있었다. 유럽은 어땠을까. 내가 가 본 유럽 국가들 중 G7에 드는 국가는 이탈리아가 유일했다. 이탈리아의 살인적인 물가와 높은 실업률, 관광∙패션∙농업이 중심인 이탈리아의 산업 구조는 IT에 종사하는 나 같은 사람이 살아가기엔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물론 어느 정도 소득이 보장된다면 이탈리아∙스페인∙그리스 같은 남유럽 국가는 내가 지내기엔 최고의 나라가 될 것이다. 오랜 역사 속 그들이 만들어낸 수많은 건축물과 경탄하지 않을 수 없는 미술 등 도시에 가만히 앉아있어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도시 중 하나가 이탈리아와 그리스의 도시였다.
하지만 남유럽 국가들은 어느 정도 부가 축적된 다음에야 이민을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내가 가서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IT의 중심이 된 미국은 국민들의 안전에 대한 보장이 전혀 되어 있지 않은 나라이므로 살고 싶은 마음은 1도 없었다. (물론 그들도 나를 받아주지 않을 테지만) 미국으로 떠난 수많은 한국 지식인들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는 이유는 너무나 자명해 보였다.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린 스티브 유 같은 사람들 또한 온갖 욕을 먹으면서도 계속해서 한국으로 돌아오고자 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부의 불균형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한국만큼 약자에 대한 보장을 해주는 나라는 전 세계 어디를 뒤져봐도 얼마 되지 않는다. 심지어 선진국이라 불리는 일본과 비교해도 우위에 있다. 특히 이번 코로나 사태를 보면서 한국이라는 나라가 갖춘 시스템이 얼마나 대단한지 깨달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때마침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면서 집이나 주변 카페에서 넷플릭스를 보거나 책을 읽는 시간이 늘어나고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관심이 있어 구매했지만 읽지 못 한 수없이 많은 책들을 읽을 기회가 생겼는데, <덴마크 사람들>도 그중 하나였다. 세계에서 가장 복지 제도가 잘 갖춰진 스칸디나비아 국가들 중에서도 단연코 제일이라 불리는 덴마크는 과연 어떤 국가일까. 보통 사람들이 글로서 접한 것과 직접 겪은 현실 간에서 괴리를 느끼고 절망하곤 하는데 덴마크엔 그런 것이 전혀 없는 것일까. 그동안 생각해 온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틈틈이 책을 읽었고, 덴마크를 간접 경험함으로써 이 국가에 대해 약간이나마 알 수 있었다.
<덴마크 사람들>은 영국 출신의 부부가 덴마크에서 일 년 동안 살면서 겪은 경험담에 대해 쓴 것이다. 각 장은 1월~12월로 구분되어 있으며, 덴마크의 얼음장 같은 추위로 유명한 겨울부터 시작해 해가 거의 하루 종일 떠 있는 여름을 거치는 등 혹독한 기후를 거친다. 덴마크인의 삶의 방식, 그들이 갖춘 교육과 의료 제도, 높은 세금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복지 제도, 일과 여가 시간의 균형 등 덴마크에서 사는 것이 행복할 수 있는 근거가 수도 없이 열거된다. 이들이 갖춘 시스템 속에서도 높은 자살률과 국가 경쟁력의 상실 등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으나 덴마크 사람들은 그때마다 새로운 해결책을 찾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저자인 헬렌 러셀은 덴마크식으로 사는데 열 가지 팁을 제안한다.
1. 신뢰. 즉 주변 사람들을 믿으려고 노력하라.
2. 휘게에 들어가라. 혹독한 겨울 속에서 집에서 지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라.
3. 몸을 움직여라. 다양한 활동을 통해 살아있음을 느껴라.
4. 미적 감성을 깨워라. 될 수 있는 한 주변 환경을 아름답게 꾸며라.
5. 선택권을 단순화하라.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선택권은 스트레스를 줄 수 있는 요소 중 하나다.
6. 자랑스러워하라. 당신이나 당신 고향 사람들이 정말로 잘하고 그들만이 가진 것을 찾아라.
7. 가족을 존중하라.
8. 남녀가 하는 일을 똑같이 존중하라.
9. 놀이. 자신을 위한 활동을 사랑하고 될 수 있는 한 자주 하라.
10. 나누어라. 나눔은 삶을 쉽게 만들고, 나눔이 당신을 더 행복하게 만든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대한민국이 덴마크와 가진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좁은 땅덩어리에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사는 것이 복지 국가를 만들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 중 하나이며, 반도체와 IT 등 몇몇 국가들만 할 수 있는 산업 구조를 갖추었기 때문에 복지를 위한 기반은 이미 충분히 갖추었다.
대한민국이 덴마크처럼 될 수 없는 가장 큰 원인은 제일 먼저 언급된 신뢰 문제다. 즉 우리는 주변 사람들을 '전혀' 믿지 못한다. 덴마크는 부부가 장을 보러 슈퍼마켓에 들리면 아이가 든 유모차를 입구에 잠시 두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고 한다. 900만 원 이하의 저소득층만 세금이 면제되고, 그 이상은 37%의 높은 소득세를 부과받으며 다양한 부가가치세가 매겨짐에도 덴마크 사람들은 이에 대해 큰 불만이 없다. 그들은 정부를 신뢰하고 자신들이 낸 세금이 더 나은 국가를 만드는 데 쓰일 것이라고 믿고 있다.
여당∙야당 가릴 것 없이 권력을 잡으면 사적인 이득을 취하려고 발버둥 치는 정치인들, 어떻게 하면 세금을 회피하며 국가의 돈을 부정 수급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서민들을 보면 한국이 더 나은 국가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해 서로 남 탓을 하기보다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편이 낫다. 우리는 왜 덴마크처럼 될 수 없는지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한 신뢰를 늘리고 자신부터 떳떳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더 나은 국가를 만들어가는 첫걸음인 것이다. 덴마크가 모든 이들이 부러워하는 복지국가가 될 수 있었던 건 20세기 초부터 신뢰도가 높은 국가를 구축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뢰' 다음으로 생각해 볼 만한 건 역시 일과 삶의 불균형이다. 한국인들은 일에 너무 매달린 나머지 위에 제시된 팁들 중 서너 개는 실현 조차 불가능하다. 이는 직업에 따른 소득 불균형 탓이 크다. 넓게는 직업에 따른 소득의 차이가 있으며, 좁게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환경 차이를 들 수 있다. 반면 덴마크는 모든 사람이 괜찮은 임금을 받고, 모든 사람이 보살핌을 받고, 모든 사람이 내가 내 몫을 내는 것처럼 그들의 세금을 낸다. 이는 직업을 선택하는 데 있어 한국인과 덴마크인의 시각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적성에 맞지 않더라도 돈을 더 잘 벌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지만, 덴마크 사람들은 그들이 즐길 수 있는 일을 선택한다. 공부가 하기 싫은 아이들이라도 밤늦게 학원에 다니는 것이 필수처럼 되어 버린 한국과는 너무나 다른 현실이다. 어떤 직업을 가지더라도 존중을 받으며 여가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사회가 진정한 천국이 아닐까. 한국에서는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들, 공무원들 외에는 꿈만 같은 이야기에 불과하다.
하지만 책을 덮은 뒤에 "내가 과연 덴마크에 가서 살면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자신 있게 "예"라고 답할 수는 없었다. 대기업에 다니면서 괜찮은 임금을 받고 있으며, 그 임금을 활용해 여행을 즐기고 만족할 만한 수준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덴마크 수준의 세금을 부과받는다면? 높은 세금으로 인해 지금만큼의 여행은 꿈도 못 꿀 것이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대신 집 안에서 요리를 하며 여가 생활을 즐겨야 할 것이다. 또한 내가 낸 세금이 나에게 돌아가는 대신 정치인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것에 대한 불안과 일자리가 없는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데 대한 불만 등이 많은 양의 세금을 내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 사회의 분업화에 익숙해진 나에게 '평등'과 '신뢰'는 이미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만약 내가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가진다고 상상해보면 덴마크는 천국임에 분명하다. 비록 나는 그런 어린 시절을 겪지 못했지만, 경쟁에 목매달지 않고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일을 하며 충분한 여가시간을 가질 수 있는 아이를 보면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덴마크 사람들>은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많이 안겨 주었으며, 사는 공간이 개인의 행복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만들었다.
아래는 책에서 발췌한 몇몇 인상 깊은 말에 대해 적은 것이다. 책을 읽지 않더라도 아래의 말만으로 덴마크가 어떠한 나라인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덴마크인들은 일할 때 터무니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일 자체를 즐긴다.”
“상호 간의 신뢰가 인생을 단순하게 만들고 번거로움에서 자유롭게 하며 걱정을 줄여줄 수 있었다.”
“사람들은 세금에 대한 보답으로 덴마크가 세계에서 최고의 사회 복지국가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기쁘게 세금을 납부합니다.”
“우리는 효율적인 기관과 부정이 없는 매우 공평한 사회에서 살고 있고, 그곳에서 사람들은 평등하고 공평하게 대우를 받습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가장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로 여겨지는 정치인들 역시 덴마크에서 놀라울 정도로 좋은 평판을 누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