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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MO May 26. 2017

후쿠오카의 축제, 돈타쿠 마츠리 (どんたく祭り)

골든위크에 즐길 수 있는 후쿠오카의 축제

  후쿠오카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일본의 도시 중 하나일 것이다. 2016년 한국인 여행객이 가장 많이 검색한 상위 10개 도시 중 4곳이 일본의 도시인데, 그중 하나가 후쿠오카일 정도로 인기가 많은 곳이다. (오사카, 도쿄, 후쿠오카, 오키나와 순) 오사카처럼 볼거리가 많은 교토와 가깝지도 않고, 도쿄처럼 일본의 수도도 아닐뿐더러, 오키나와처럼 휴양지도 아닌 후쿠오카가 인기가 많은 이유는 다름 아닌 위치일 것이다. 후쿠오카는 경상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끄는데, 부산에서 쾌속선을 타고 갈 경우 3시간이면 도착하며 이용할 수 있는 여객선의 종류도 다양하다. 다른 지역에 사는 대한민국 국민들 또한 가장 가까운 도시가 후쿠오카인데, 비행기를 타면 가장 빠른 시간에 도착할 수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후쿠오카에 볼 게 없는 것도 아니며, 먹을 것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한국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돈코츠 라멘의 원조가 후쿠오카이며, (덕분에 후쿠오카 라면은 아주 유명하다.) 간식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하카타토리몽 또한 후쿠오카에서만 구할 수 있는 특산품이다. 후쿠오카의 볼거리로는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 (福岡アジア美術館), 후쿠오카 성 (福岡城), 캐널 시티 등이 있으며, 규슈 레일 패스를 끊고 규슈 전체를 돌아보는 거점 역할도 하고 있다.


무라타

  하지만 이번에 후쿠오카를 찾은 이유는 네덜란드어로 일요일을 의미하는 zondag에서 유래한 돈타쿠 마츠리를 보기 위해서였다. 2만 명이라는 엄청난 인원이 후쿠오카 시내를 관통하는 메이지 도리를 행진하는 광경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행진은 5월 3일과 4일 양일에 이루어지는데, 각기 내용이 조금씩 달라 이틀 모두 봐도 괜찮은 마츠리일 것이다. (일정 때문에 5월 4일 하루만 보긴 했다.) 밤에 시모노세키에서 기차를 타고 후쿠오카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8시 정도. 원래는 라멘을 먹고자 했으나 가고자 했던 가게가 사라졌기에 급하게 소바로 유명한 무라타를 찾았다. 무라타에서 먹을 수 있는 소바의 종류는 다양한데, 나는 무 토핑이 어우러진 오로시 소바를 선택했다. 무가 많이 들어가서 쓴맛이 강하긴 했지만 소바 자체는 아주 맛있었다. 사실 소바보다 더 맛있었던 건 새우를 튀긴 뎀뿌라였지만, ¥400이라는 가격 때문에 동생이랑 하나씩 먹을 수밖에 없었다.

무라타. 후쿠오카에서 소바로 아주 유명한 곳이다.
무라타에서 추가로 시킨 새우 튀김. 한 개에 ¥400이지만 그만큼 맛있었다. 아래는 오로시소바로 무를 토핑으로 같이 먹는다.

힐튼 후쿠오카 씨호크

  배를 채우고 예약한 숙소로 이동했는데, 후쿠오카 시내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힐튼 후쿠오카 씨호크였다. 가기 전엔 슈페리어 트윈룸으로 예약했으나, 호텔에서 오버부킹을 해버려 도착하기 3일 전 일반 트윈룸으로 바꿔줄 수 있냐고 양해를 구했다. 덕분에 더 싼 가격에 머물면서 아침도 공짜로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기분 좋게 호텔에 도착해서 후쿠오카의 전경을 찍었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두 가지 전망은 후쿠오카 타워 쪽과 야후오쿠돔 쪽인데, 후쿠오카 타워 쪽이 약간 더 비싼 듯했다.

오른쪽에 보이는 높은 타워가 후쿠오카타워다.
힐튼 후쿠오카 씨호크가 위치한 곳은 고급 빌라들과 아름다운 공원들로 가득하다.

  힐튼 후쿠오카 씨호크는 일본 야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야후오쿠돔과 가까운 곳에 묵으면서 야구경기를 관람하기 좋은 곳이다. 오전엔 후쿠오카 시내를 구경하고, 오후엔 후쿠오카 타워를 방문하고, 밤에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경기를 본 뒤 힐튼에 묵는 것이 후쿠오카 관광의 좋은 코스 중 하나일 것이다. 내가 힐튼에 묵은 날은 날씨도 아주 쾌적해서 아침에 일어난 뒤 바라 본 후쿠오카 타워와 야후오쿠돔이 정말 아름다웠다.

낮에 본 후쿠오카 타워와 히타치 건물
후쿠오카는 도쿄나 오사카처럼 아주 붐비지도 않으며 쾌적한 도시라 살기 좋은 것 같았다.
호텔에서 보이는 후쿠오카 타워
반대편에서 보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홈인 야후오쿠돔이 보인다.

  힐튼에서 제공하는 아침은 채광이 잘 되는 2층 뷔페에서 먹었다. 조명이 없고 실내인데도 아주 밝아 야외에서 먹는 느낌이 들 정도로 설계자의 세심한 관리가 돋보인 뷔페였다. 힐튼 객실수가 1052개라, 줄을 서서 대기해야 할 정도로 사람이 많은 건 단점이긴 하다.

힐튼 후쿠오카 씨호크의 2층 뷔페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

  천천히 아침을 먹고 이동한 곳은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이다. 때마침 '루브르의 9번째 예술'이라는 특별전을 개최하고 있어서, 상설전과 특별전 모두 볼 수 있는 티켓을 끊었다. 루브르의 9번째 예술이란 다름 아닌 '망가'로 만화에서 표현된 루브르가 주제인 전시였다. 루브르 박물관이 주가 된 전시답게 프랑스 만화가의 작품들이 많았으며, 프랑스에 관심 있는 일본 만화가의 작품들도 볼 수 있었다. 상설전에선 아시아 출신 예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는데, 주로 제3 국 (태국, 몽골, 네팔 등) 출신 작가들의 작품이 많았다. 평소에 보기 힘든 국가 출신의 작가들이 많아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에서 열린 특별전

이치란 (一蘭)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이 메이지 도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마츠리를 보기 위해 멀리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후쿠오카 라멘의 양대산맥 중 하나인 이치란 (一蘭)을 들렀다. 이치란은 라멘 종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취향에 맞게 여러 가지 옵션 중 하나씩 선택해서 주문을 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워낙 유명한 곳이기에 30분 정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맛집이다. 일층은 전통식으로 앉아서 먹을 수 있는 곳이고 이층은 독서실처럼 칸막이로 되어 있는 곳인데, 직원이 이층이 빠르다고 해서 이층에서 기다렸지만 실제론 일층이 훨씬 빨리 들어가는 것 같았다.

이치란 외관. 1층과 2층은 식당이고, 3층 위로는 사무실이다.

  이치란의 라멘은 내 취향에 맞게 나오는 거라 맛도 내가 기대한 것과 흡사한 맛을 보였다. 후쿠오카에서 유명한 라멘집답게 맛도 좋았지만, 동생은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서인지 다른 곳에서 먹어도 맛있었을 거라며 푸념을 했다. (사실 캐널시티 라멘 스타디움의 아무 라멘집이나 가도 웬만큼 맛은 보장될 것이다.)

이치란에서 먹은 라멘. 육수가 정말 맛있다!

하카타 돈타쿠 마츠리

  3시부터 8시까지 진행되는 마츠리를 보기 위해 도로변은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2시 30분 정도에 자리를 잡고 마츠리를 감상하려고 했는데, 신기하게도 2시 50분이 될 때까지 교통 통제를 하지 않았다! 10분 만에 1.6km에 달하는 거리를 통제할 수 있다니... 일본의 준법정신과 질서는 정말 알아줘야 한다.

전통 복장을 입고 행진하는 사람들
리듬체조를 배우는 아이들의 행진. 일본은 생활체육이 참 잘 되어있는 나라라는 걸 느꼈다.
마칭 밴드. 많은 수의 마칭 밴드들이 행진했는데, 이 날을 위해 서로 모여 많은 연습을 했을 걸 떠올려 보면 일본은 공동체 문화가 잘 발달한 나라임을 느낀다.

  돈타쿠 마쓰리는 전통적인 모습을 강조하기보다 후쿠오카 또는 인접 지역의 일본 국민들이 나와서 함께 즐기자는 성격이 강했다. 정말 다양한 단체들이 이 날을 위해 연습하고 나와서 행진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본은 겉으로 보기엔 조용하고 재미없는 나라일 수 있지만 실상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 느꼈다. 특히 일본 학생들이 리듬체조나 악기를 다루는 모습을 보면서, 이 아이들은 어릴 때 공부만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취미생활도 충분히 즐기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돈타쿠 마츠리는 연예인이나 기타 유명인들이 주가 되는 축제가 아니라 시민들이 주가 되는 아름다운 축제였다.

돈타쿠 마츠리에 출연한 호빵맨
여성으로 분장한 일본 아저씨도 보인다. "아리가또!" "도모!"라고 외치는 아저씨의 모습이 익살스럽다.
코스프레 단체들도 나와서 행진을 했다. 겨울왕국의 안나와 원피스의 도플라밍고도 볼 수 있었다.

  학생들이나 마칭밴드 외에 특이한 취미생활을 즐기는 사람들도 행진에 동참했는데, 일본인들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약간(?) 부끄러울 수 있는 취미들도 자유롭게 즐기고 보여주는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행진에 호빵맨과 세균맨이 등장하고, 여장한 아저씨들도 등장하고, 만화 캐릭터들도 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일본과 한국은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것을 느꼈다.

행진이 끝나면 마무리 행사로 관객들도 나와서 손뼉을 치며 춤을 춘다.

  행진이 끝나도 마츠리는 끝이 아닌데, 관객들도 나와서 주걱을 가지고 노래에 맞춰 춤을 출 수 있는 행사가 있다. 춤을 추면서 일본인들은 서로 하나라는 동질감을 느끼고 같이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나와 동생 또한 머뭇머뭇하고 있는데 일본인 아주머니가 나와서 같이 춤추자고 해서 멋도 모르고 노래 박자에 맞추어 함께 춤을 췄다.


후쿠오카의 명물, 야타이

  돈타쿠 마츠리가 끝난 시각은 오후 8시 정도. 허기가 져서 후쿠오카의 명물인 야타이에서 저녁을 해결하고자 했다. 야타이가 후쿠오카에서 유명한 이유는 길가의 포장마차를 일본에서 더 이상 허가해주지 않기 때문에 생길 수가 없는 데다, 후쿠오카에 남아있는 야타이의 수가 일본 전체 야타이의 반이 넘기 때문이다. 후쿠오카에서 야타이가 모여있는 곳은 텐진역 주변과 나가하마 강 주변이다. 나가하마 강까지 걸어가기엔 머무 멀어서 그냥 텐진역 주변의 야타이 카와잔(河ちゃん)을 방문했다. 때마침 두 자리만 남아있어서 기다리지 않고 바로 음식을 주문했다. 배가 고파서 소 혓바닥 구이, 계란말이, 라멘, 야끼도리 4종류나 주문했지만, 깔끔하게 비웠다. 야타이는 생각보다 깔끔했고, 음식도 정말 맛있었다. 특히 삿포로 맥주와 곁들여 먹으니 일본 미식 여행의 즐거움이 배가 되는 듯했다. 그리고 주방장 아저씨도 정성 들여 요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본 사람들의 장인정신은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텐진 중심가에 있는 야타이 카와잔 (河ちゃん)
야타이 카와잔 (河ちゃん)의 주방장 아저씨. 정말 열심히 일하는게 느껴졌다. 아래는 야타이에서 먹은 소 혓바닥구이, 야끼도리, 라멘, 계란말이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귀갓길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후쿠오카의 상점거리를 지났는데, 행진을 끝내고 돌아오면서도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돈타쿠 마츠리의 여운을 끝까지 느끼기 위해 귀갓길에도 행진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은 돈타쿠 마츠리를 오랫동안 기억하라는 메시지 같았다.

텐진 시내 상점가에서도 악기를 연주하며 귀가하는 사람들

  돈타쿠 마츠리는 분명 일본에서 가장 유명하고 큰 축제는 아니다. 후쿠오카에서도 가장 유명한 축제는 7월에 열리는 하카타 기온 야마카사 마츠리지만, 2만 명이나 되는 시민들이 참여하는 마츠리는 분명 자신만의 특색을 가지고 있다. 골든위크에 후쿠오카를 방문한 사람들이라면 잠시 시간을 내서 후쿠오카의 돈타쿠 마츠리를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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