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다른 매력을 주는 시모노세키의 축제
일본을 좋아하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시모노세키(下關)에 관해 들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일본에 관심이 없더라도 조선통신사가 지나간 통로였던 시모노세키는 한국인들에겐 꽤나 유명한 지명이자 도시이다. 하지만 일본 여행을 좋아하는 한국인들도 시모노세키를 애써 찾거나 들리지는 않는다. 간몬해협을 가로지르면 바로 규슈와 연결되는 관문도시이지만 특별하게 볼거리가 없어서 그런 것일까. 혼슈 서쪽 지방의 도시들 자체가 쇼핑을 즐기기엔 도시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고, 유적이나 역사를 찾기엔 간사이 지방에 밀린다. 하지만, 관광객들이 많은 규슈에서 벗어나 잠시 동안 한적한 곳을 찾고 싶다면 시모노세키를 추천하고 싶다. 혼슈와 규슈를 연결하는 상징성뿐 아니라 보고 즐길 것도 꽤 많은 도시가 시모노세키기 때문이다.
시모노세키를 방문한 때는 2017년 5월 초였다. 한국의 어린이날과 석가탄신일이 일본의 골든위크와 겹쳐서 휴가를 하루 내고 골든위크에 열리는 마쓰리를 찾아보니 시모노세키의 센테이와 후쿠오카의 돈타쿠 마쓰리가 보였다. 5월 3일이 센테이의 주요 축제날이고, 돈타쿠 마쓰리는 3일, 4일 양일에 걸쳐 퍼레이드를 하므로 3일엔 시모노세키, 4일엔 후쿠오카를 방문하기로 하였다. 2일 저녁에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하고 급하게 신칸센을 타고 시모노세키에 도착, 히노야마 유스호스텔로 향했다. (유스호스텔의 curfew time이 오후 10시였으므로) 일본의 유스호스텔은 시설이 낡으면 항상 리노베이션을 하고 청결함을 유지하는 것 같다. 교토의 우타노 유스호스텔에 이어 두 번째로 방문한 일본 유스호스텔인데, 여기는 우타노 유스호스텔이 가지지 못한 교통의 편리함, 관광지와의 접근성, 뛰어난 전망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스태프분들이 친절한 건 덤!
히노야마 유스호스텔에서 아침을 먹을 수도 있었으나, 가까운 곳에 가라토 이치바가 있었기 때문에 아침은 조금은 비싼 가격으로 해결했다. 가라토 이치바는 축제기간이라 그런지 오전 6시 정도에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의 사람들로 붐볐다. 어시장임에도 생선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을 정도로 위생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있었다. 가라토 이치바에서 먹는 초밥은 웬만하면 맛있으니 맘에 드는 가게를 정하고 먹고 싶은 스시 여러 개를 고르면 된다.
가라토 이치바에서 먹은 스시는 맛있긴 하지만, 고급식당의 스시만큼 맛있진 않았다. 하지만 다양한 종류의 스시나 덮밥을 식당에서 먹는 것보다 싸게 먹을 수 있으니 시모노세키에서 가라토 이치바를 들리는 것은 당연한 선택인 듯하다. 다만 일층에선 마땅히 먹을 장소가 없으니 이층에 올라가 가라토 이치바 내부 전경을 감상하면서 테이블에서 편하게 먹는 것을 추천한다.
아침식사를 해결한 뒤, 센테이의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지도에 표시된 출발지점으로 이동했다. 일본 마쓰리의 경우, 자국어로 된 안내서는 많지만 외국어로 된 안내서는 없거나 부실한 경우가 많으므로 여행자센터에 들러서 물어보는 것이 좋다. 나 또한 출발지점이 일본어로 되어 있어서 시모노세키역의 안내센터에 들러 어떻게 가면 되는지 물어봤다. 일본 마쓰리를 처음 경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모르고 무작정 달려갔다. 시모노세키 시내가 한산해서 마쓰리가 열리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웬걸, 출발지점에 도착하니 많은 수의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센테이 퍼레이드는 오전 9시 30분에 출발해서 12시 정도에 아카마 신궁까지 도착하는 스케줄이다. 6km 정도 되는 긴 거리를 화려하게 치장한 여성들이 이동한다. (이동할 때는 바퀴가 있는 손수레에 타고 이동한다.) 퍼레이드 중간지점 몇 군데에는 수레에서 내려 여성분들이 춤사위를 보여주며, 그때마다 일본 관광객들은 탄성을 지르며 박수를 쳐준다. 6km까지 같이 걸어가기엔 너무 먼 것 같아 중간지점까지 마쓰리 행렬과 같이 걸으며 시모노세키 시내 풍경과 어우러진 일본 문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센테이는 홍등가에서 일하며 고생했던 헤이케 여성들을 기리기 위한 축제다. 그래서 행렬을 이루는 사람들 대부분이 헤이안 시대 복장을 입고 화려하게 치장한 여성들이다. 센테이의 주연들이 행진에 참여한 사람들이라면 조연들은 시모노세키 시민들이다. 시모노세키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가라토 이치바 앞을 돌면서 음악과 함께 행진을 한다. 행진을 하는 사람들은 주걱 두 개를 치면서 춤을 추는데, 보는 관객들도 참여하라고 주걱을 나누어준다.
일반인들도 참가하는 일본의 마쓰리를 보면서, 일본인들이 개인의 안위와 행복만을 생각하는 민족이 아닌 공동체 생활을 중요시하는 민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도 다양한 축제가 있긴 하지만, 일반인들이 이런 식으로 참여하는 축제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한국도 우리의 전통복장인 한옥을 행사 때마다 즐겨 입고, 공동체에서 서로 화합하는 기회가 많다면 더 나은 나라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센테이는 시내 퍼레이드로 끝나지 않는다. 아카마 신궁에서 실제로 제례의식이 있는데, 이 제례를 올리는 사람들이 퍼레이드에 참여한 여성분들이기 때문이다. 헤이안 시대 복장을 한 여성분들은 신사 바로 앞까지 도착하기 전 춤을 추면서 이동한다. 이 광경을 보기 위해 일본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며, 사진을 찍으려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야 될 정도로 힘이 든다. 퍼레이드 때보다 비좁은 공간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니 아침부터 미리 자리를 잡고 있지 않으면 좋은 자리를 선점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센테이를 보러 시모노세키에 온 것을 전혀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센테이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축제이다.
의식이 끝난 뒤에 우리나라가 제사상을 나누어 먹듯이, 일본도 의식이 끝난 다음 관객들에게 모찌를 던져주었다. 인파를 뚫지 못해 사진만 열심히 찍고 모찌는 하나도 받지 못했지만, 일생에 한 번 꼭 볼만한 축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사는 오후 세 시 정도에 끝나기 때문에, 가까운 곳에 있는 간몬 터널을 들른 뒤 히노야마 공원을 오르기로 했다.
간몬 터널은 혼슈에서 규슈 또는 규슈에서 혼슈로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해저터널이다. 한국에도 일본이 만든 비슷한 터널이 있는데, 통영시내와 미륵도를 연결하는 통영 해저터널이 그것이다. 해저터널이지만 바닷속은 들여다볼 수 없으며, 중간지점에 도달하면 시모노세키 시와 기타큐슈 시의 경계가 보인다. 해저터널로 기타큐슈까지 이동해도 모지항까지 가려면 꽤나 걸어야 되기 때문에 나오자마자 다시 시모노세키로 향했다. 혼슈와 규슈 사이 가장 가까운 거리를 터널로 뚫었으나, 780m 정도 되기 때문에 왕복 거리는 1.56km이다. 히노야마로 올라가는 케이블카 시간까지 맞추려고 열심히 걷다 보니 다시 시모노세키로 돌아오자 다리 힘이 쫙 빠졌다.
히노야마 공원은 케이블카로 정상까지 갈 수 있으며 편도 ¥300, 왕복 ¥500이 든다. 히노야마 공원에 오르면 혼슈와 규슈를 연결하는 간몬 대교와 간몬해협, 규슈의 모지코를 볼 수 있다. 눈 앞에 펼쳐지는 간몬해협의 풍경은 일본 다른 곳에선 보기 힘든 멋진 광경이다. 반대편을 보면 시모노세키 시내가 보이며, 덤으로 산 위 곳곳에 2차 세계대전 때 지은 요새들도 감상할 수 있다. 시간이 부족해 편도 티켓을 끊었는데, 걸어서 내려가는 길이 마땅치 않아 차도를 따라 내려갔다. (히노야마 케이블카는 왕복으로 안 끊으면 후회막심이다.)
다음 여정을 위해 시모노세키에서 JR을 타고 모지, 모지에서 고쿠라 역으로 이동해 신칸센을 타고 하카타역으로 갔다. 시모노세키에는 하루밖에 머물지 않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장소 외에 다양한 볼거리들이 많다. 시모노세키 성이 있던 구시가 쵸부 (長府), 시모노세키 카이쿄칸 (海響館) 등이 있다. 시간이 없어서 이곳들을 둘러볼 순 없었지만, 다음에 들릴 일이 생기면 쵸부를 들러 성터를 둘러보고 카이쿄칸에서 다양한 어류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센테이를 보고 싶다면 5월 초의 시모노세키를 꼭 방문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