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불란서에서도 갈팡질팡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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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식당에서 저녁타임 알바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알바를 하다가 울었다. 한번 터진 울음이 멈추지 않아 1시간 넘게 사람이 없는 공간에서 울었다. 울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이번 학기부터 두 명이 하던 일을 한 명이 하게 되었고 그 한 명이 바로 나였다. 일을 하던 중에 너무 힘들어서 다른 파트에서 일하던 친구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그러자 상사 한 명이 와서 니가 저 친구한테 도와달라고 했냐고, 왜 도와달라고 했냐고 물었다. 그래서 왜 그러면 안 되냐고 했더니 '왜 그러면 안 되냐고?'라고 곧 있으면 언성을 높일 기세로 말하길래 너무 억울해서 울음이 터졌다.
그러고는 조용한 공간으로 와서 잠깐 대화를 하며 그간 나의 불만을 울면서 말했다. 또 다른 상사의 압박과 인원감축에 대한 부당함 등등. 혼자서 일하기 힘들다고 전에도 말했었지만 결국 바뀌는 건 없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그때그때 도움을 청하라는 말 뿐이었다. 여하튼 그렇게 말했더니 상사는
"진정해. 스트레스받을 필요 없어. 여기는 웃으면서 일하는 곳이야. 너는 항상 잘 웃었잖아. 진정하고 이따가 다시 얘기하자. 그때는 예전처럼 웃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어."라고 했다.
지랄. 스트레스는 지가 줘놓고.
아무튼 그렇게 한 시간가량을 울었다. 그만 울려고 해도 계속 눈물이 나왔다. 1시간 동안 일을 안 하고 울기만 했으니 월급루팡을 한 셈인가. 개이득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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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뒤인 지금도 혼자 일하는 것을 보면 딱히 달라진 것은 없다. 중간중간 힘드냐고 물어봐준다는 점과 이제는 좀 더 당당하게 도움을 요청하게 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정도. 더불어 이제는 일을 좀 대충하려고 노력한다는 점. 어차피 발바닥에 땀나도록 열심히 해봤자 알아주는 인간도 없고 나만 스트레스 받으니까.
그러나 이 일을 계기로 중요한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내가 지금 아주 많이 힘들다는 것. 그날 일하다가 울고, 일 마치고 집에 오면서도 울고 집에 도착해서도 울었다. 그다음 날 아침에는 퉁퉁 부은 눈으로 또 울고. 그래서 눈이 잘 안 떠졌다. 그다음 날 저녁에 일하면서도 울컥울컥 울음이 터질 것 같았고 사람들이 말을 걸어줄 때마다 울음이 나오려고 했다. 그런 걸 보면서 '아, 내가 지금 많이 아프구나'라고 느꼈다. 더 이상 향수병의 문제는 아니었다. 쌓이고 쌓인 심리적인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져버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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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와중에도 나는 내가 일하다가 울었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것도 하루 3시간짜리 알바하다가 울다니. 이런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인간. 이십 대 후반이나 돼서 나보다 한참 어린 애들도 안 우는데 울다니. 너무 부끄러웠다. 심지어는 정말 힘든 게 맞나? 내가 엄살 피우는 게 아닌가? 이게 울어도 되는 일인가?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알바하면서 운 얘기를 할 때 친구들의 반응을 살폈다. 공감해 줄 때는 '그래, 울만 했어'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런 반응이 오지 않으면 '내가 너무 엄살을 피웠나? 내가 미성숙한가?' 하는 생각이 들고 부끄러웠다.
이런 생각들이 나를 좀먹는 것이다. 근데 그걸 몰랐다. 감정을 수용할 줄 모르고 의심하고 비판하고 다른 사람의 공감이 있어야만 정당하다 인정하는 이런 버릇들. 이게 뭐 하루아침에 생긴 버릇이 아니라 수십 년간 지속되어 온 것일 텐데 이런 마음을 품고도 '나는 나를 사랑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내가 힘들면 힘든 거다. 그게 예민하거나 엄살 피우는 게 아니라 그냥 힘든 거다. 심지어는 눈물을 그렇게 쏟아놓고 그게 안 힘들면 뭐가 힘든 거란 말이야?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고 생각이 다른 건데 내가 힘들다고 느꼈으면 힘든거지 다른 사람의 생각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이 당연한 것을 몰랐다가 이번 기회에 알게 된다. 알바는 돈도 주고 깨달음도 준다. 하하.
그러면서 배운 개념이 '자기 자비'라는 개념이다. 자기감정을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이고 평가하지 않는 것. 근데 나는 매번 평가해 왔다. 다정한 말투로 비난을 한다고 그게 비난이 아닌 게 아닌 건데 나는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게지.
그래서 이제는 내 감정을 억누르는 것을 멈추고 이 감정이 정당한 감정인지를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그대로 수용하려고 하는데 역시 지버릇 개못준다고 쉽게 되지는 않지만 일단 문제를 파악한 거부터가 반은 한 셈이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긴장이 되면 '왜 이런 걸로 긴장이야? 이상하네. 긴장할 필요가 없어.'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아, 긴장되는구나.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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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스님의 법문을 듣다가 나와 비슷한 고민을 발견했다.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면 일단 눈물부터 터집니다'라는 제목의 동영상으로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이 고민자도 억울하거나 화가 날 때 눈물부터 나는 게 고민이라고 했다. 그러자 법륜스님께서 화날 때 바락바락 따지면서 성질부리는 거랑 우는 거랑 뭐가 더 낫겠냐고 물어보셨는데, 처음에는 화날 때 성질을 내는 게 낫지 울면 약해 보여서 안된다고 생각했다. 근데 '내가 만약 그날 우는 게 아니라 화를 냈더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봤는데 잘렸거나 상사와의 관계가 안 좋아져서 인사하기도 껄끄러워졌을 것 같다. 그런 걸 보면 차라리 우는 게 나았던 것 같다.
감정이 너무 요동치면 의지만으로 제어하기 어렵도록 인간이 설계된 것은 역시 생존을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감정은 머리로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려주며 수많은 경고 사인을 보낸다. 내가 많이 힘들었다는 것도, 그래서 마음을 챙길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그날 알바를 하다가 울지 않았다면 모르지 않았을까. 다 엄살로 치부해버리고 나잇값 못한다고 다정한 목소리로 비난을 하지 않았을까.
잘 울었다,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