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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손톱 Oct 13. 2024

내향인의 언어 배우기와 실수포비아

10. 불란서에서도 갈팡질팡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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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에서도 알 수 있듯 나는 내향인이다. 

친한 친구들을 만나는 것은 재미있지만 오래 같이 있다 보면 점점 기가 빨려서 파김치가 된다. 혼자 있는 것은 너무 재미있고 편하다. 며칠이고 밖에 안 나가고 집에만 있는 것도 쌉가능이다.

나는 말이 많지 않은 편이고 말하는 것보다는 듣는 것이 더 편하다. 그래서 종종 사람을 만나면 '너도 네 이야기 좀 해봐'라든가 '재밌는 얘기 좀 해봐'라든가 하는 아주 난처한 요구를 듣곤 하는데 이 같은 요구는 오히려 내 말문을 막아버리고 집에 가고 싶게 만든다.

사람을 일대일로 만나는 것보다는 여럿이 만나는 것이 조금 더 편하다. 물론 아주 친한 친구야 일대일로 만나는 것이 좋지만 적당히 친하다면 여럿이 만나는 것이 좋다. 그러면 구태여 할 말을 찾지 않아도 되고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듯 분위기를 좀 더 편하게 즐길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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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까지 나는 활발하고 외향적인 친구가 부러웠다. 분위기를 띄우는 능력이 좋아 보였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모습도 부러웠다. 그래서 내 성격을 탐탁지 않게 여기기도 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내 성격을 긍정하게 되었고 이제 더 이상 외향인들이 부럽지 않다. 심지어 이제는 극소심하고 극내성적인 사람들이 귀여워 보인다. 어떤 마음으로 저러는지가 너무 잘 이해돼서 그런지도 모른다.

다만 가끔 늘지 않는 프랑스어를 보면서 외향인들을 부러워할 때가 있다. 나 같은 성격은 언어 배우기에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프랑스에 있은지 만으로 2년 하고 몇 주가 되었는데 아직 내 언어 능력은 그다지 좋지 않다. '2년? 애걔?! 겨우 그 정도밖에 안 살았으면서 뭘?'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2년을 산 사람의 입장에서는 '2년이나 살았는데 아직도 이 정도밖에 못한단 말이야?'라는 생각이 든다.

같이 프랑스어를 배우는 친구들만 봐도 말하기를 좋아하고 외향적인 친구들은 프랑스어 실력이 좀 더 빨리 느는 것을 알 수 있다. 쉴 새 없이 얘기하고, 사람 만나서 대화하고,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일단 말하고 싶은 걸 어떻게든 내뱉는 것은 외국어를 배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행위이다.

그렇지만 나는 한국말도 길게 생각하고 내뱉는 편이고 사람 만나서 대화하다 보면 기가 쭉쭉 빨려서 집에 가고 싶어지고 무엇보다 실수를 아주 창피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늘지 않는지도 모른다. 물론 공부에 게을렀던 탓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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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배울 때 귀가 닳고 닳도록 듣는 이야기. '실수를 해야 실력이 는다.' 맞는 얘기다. 실수를 무서워하면 안 된다. 그렇지만 실수할 때마다 내가 너무 허접하고 하찮게 느껴지고 때로는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다. 더군다나 실수를 했을 때 상대가 날 무시하거나 반응이 좋지 않은 게 느껴지면 더더욱 자존심이 상하고 창피하다. 그래서 실수를 안 하려다 보니 말을 더 길게 생각하고 내뱉고 그러다 보니 뱉는 말이 더 적어지고, 때로는 아예 입을 꾹 다물고 있기도 하다.

과연 나 같은 사람이 있을까 찾아보았는데 꽤 많았다. 어떤 사람은 이 문제에 대해 스스로에게 '실수를 해야 실력이 는다'고 세뇌시키는 것이 별로 효과적이지 않다고 했다. 이런 사람들은 완벽주의자인 셈이니 차라리 아예 완벽한 문장을 혼자 입에 익도록 연습해서 실제 상황에서 이 말이 튀어나가게 해야 한다고 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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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가 배우고 싶어서 프랑스에 온 것이기 때문에 아직도 프랑스어를 배우는 것은 재미있긴 하다. 새로운 문법과 표현을 배우고, 예전에는 알아들을 수 없었던 유튜브 영상을 이제는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큰 기쁨이다. 또 일을 하면서 내 프랑스어 실력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나 친구들과 대화할 때 말이 잘 안 나오는 것은 책을 펼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다만 프랑스어를 못해서 굴욕을 당하면 갑자기 프랑스어가 미워진다. 말을 못 한다고 사람들이 무시한다든가 가게에서 뭘 물어보는데 내 말을 이해 못 하겠다고 하면서 가버린다든가 하면 나는 공부할 의욕을 잃고 프랑스어를 미워하게 된다. 프랑스어는 언제나 그대로인데 말이지.

앞으로 이곳에서 살아가는 순간순간에 한국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언어적 굴욕과 망신을 겪는 날이 많겠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 어찌저찌 잘 지나가겠지. 이제는 비장한 각오는 없다. 그냥 어찌 되든 잘 지나가겠지 생각만 한다, 언제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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