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향손톱 Sep 29. 2024

인종차별이 문제가 아니라  이상해지는 내 마음이 문제다

09. 불란서에서도 갈팡질팡하는 이야기

1

인종차별.

그것은 어디에나 있고 언제나 있었던 것이지만 나는 프랑스에 와서야 인종차별을 실제로 마주했다. 왜냐? 한국에서 내가 인종 가지고 차별당할 일이 없으니까. 나의 외모는 너무도 한국인과 한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인과 한국인이 낳은 자식과 한국인이 만나 낳은 한국인이니까. 다수에 속하면 차별당할 일은 없으니까.

이곳에 오니 나는 외국인, 소수, 아시아인. 트람 안에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사람이 있는 것도 이제는 놀랄 일이 아니지만 기분이 나쁜 건 여전하다.

사실 프랑스는 이미 다문화 사회이고 바깥만 나가도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프랑스인뿐만 아니라 아랍사람, 아프리카 사람, 아메리카 사람 등등 수많은 외국인과 다른 인종이 있다. 그럼에도 인종차별은 있다. 아, 오히려 그래서 있는지도. 아시아인도 꽤 있기야 하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으니 더 그럴지도. 더군다나 아시아인은 대체적으로 순하게 생겨서 더 그럴지도. 나는 더군다나 체구도 크지 않고 약해 보여서 더 그럴지도.


2

나는 인종차별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는 확실한 인종차별이다.

직접적으로 인종차별 발언을 하거나 행위를 함으로써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아! 이것은 인종차별이구나!'하고 느낄 수 있는 인종차별이다.

예를 들면 길거리를 지나가면서 하는 '니하오, 곤니찌와, 칭챙총' 같은 것들이 그러하다. 이것은 잊을만하면 일어나며 매번 당황스럽다. 나는 정말로 인종차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느 날 밤에 집에 가는 길에는 지나치던 두 청소년 중 한 명이 갑자기 "악!" 소리를 질러서 놀랐는데 그 옆에 애는 낄낄 웃었다. 나는 욕을 읊조렸지만 따지거나 하지는 못했다. 화가 났지만 당황한 동시에 무서웠고 쟤네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고 쟤네와 맞짱을 떠서 이길 자신은 없었다.

길거리에서 인종차별을 하는 놈들은 제정신이 아니라서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 상식과는 다른 상식을 가진 놈들이니 무슨 짓을 할지 모르고 그런 놈들은 내가 혼자 있을 때만 그러기 때문에. 그렇지만 내상을 입는 것도 맞고 화가 나는 것도 맞고 움츠러들게 되는 것도 맞다. 왜 잘못은 그쪽이 했는데 내가 힘들어야 되는 거지?

만약 내가 자녀가 있는데 내 토끼 같은 자녀가 인종차별을 당하고 와서 내게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난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모르겠다. 내가 여기서 애를 키우고 있지 않고 혼자인 게 다행이다.


3

두 번째 타입은 불확실한 인종차별이다.

분명 인종차별인 것 같다고 느끼지만 확실하지 않은 경우다. 마트에서 직원이 내게 불친절하고 내가 말하고 있는 도중 지 동료랑 말을 하거나 말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자리를 뜨거나 하는 경우가 그렇다.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게 불친절하게 굴어서 인종차별이라는 생각은 드는데 당사자가 아니라고 하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될 것 같은 인종차별이다. 이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따져 물어야 할까? 인종차별이 아니라 태도를 놓고 따져 물어야 할까? 아니면 '그래, 너 계속 그런 식으로 살아라'라고 하면서 그냥 내버려 둬야 할까? 모르겠다.

여기 온 이후로 내가 쌈닭이었으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한다. 싫고 불편한 거 바로 따져 묻고 화도 서슴없이 내버렸으면 좋겠다. 화내기의 달인이었으면 좋겠다. 그러기에 실제의 나는 화내는 것도 잘 안 해봤고 갈등 상황이 불편하고 누구와 싸우는 건 너무 싫고 심지어는 무섭다. 아, 난 정말 얌전히 평화롭게 살고 싶은데 왜 자꾸 건드는 걸까? 요즘 <체공녀 강주룡>을 읽고 있는데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당당하게 하는 주인공이 너무 부럽다.


4

사실 인종차별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인종차별 때문에 피해의식으로 위협받고 있는 내 마음이다.

어차피 이 사회는 인종차별을 금하고 있으니 틀린 건 내가 아니라 그들이다. 학교에서 이런 문제가 생기면 신고를 하면 될 일이고(아직까지 학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다행히 뉴스에 나올법한 폭행 사건의 피해자가 되는 일은 없었고 길이나 식당, 마트 같은 곳에서 고객으로 갔을 때 일어나는 일이 전부인데 이런 일은 '에휴, 그런 인생이지 뭐. 그렇게 살면 니 손해지'하고 나와버리면 그만이다.

그럼 문제는 무엇이냐? 피해의식이 심해진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행동과 내가 아시아인이라는 사실을 자꾸 엮어버린다. 내가 아시아인이라서 쳐다보나? 내가 아시아인이라서 신기한가? 내가 아시아인이라서 나한테는 웃질 않는 건가? 내가 아시아인이라서 일을 더 시키는 건가? 내가 아시아인이라서 만만해서 장난을 치나? 하는 생각들. 급기야는 이게 인종차별인지 내 피해의식인지 구분을 못하겠다.

이런 생각들은 나에게 득이 될 것이 없고 오히려 밖을 나가기 무섭게 만든다. 첫해에는 여기저기 쏘다니다가 지금은 오히려 집에 있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아지게 된 것은 비단 내가 집순이여서 만은 아닐 것이다. 밖에 나가면 계속 신경이 곤두서게 되고 방어적이게 되고 마음속에서는 한바탕 논쟁이 이는데 집에서는 그럴 일이 없이 평온하니까.

불교에서는 내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어디에 있든 내 마음이 편하면 거기가 좋은 곳이고, 내 마음이 불편하면 지옥인 것이라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어떻게 편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절에 들어가서 수행을 하고 나와야 하나. 아무튼 이곳에서 나는 위축될 필요가 없는데 자꾸만 위축이 되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20대 후반에 떠나는 유학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