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향손톱 Sep 22. 2024

20대 후반에 떠나는 유학에 대하여

08. 프랑스에서도 갈팡질팡 하는 이야기

1

나는 한국 (구)나이 기준 스물여덟에 유학을 왔다. 첫 해에 같은 어학원에 다니는 한국인들을 몇 명 만났는데, 나와 동갑인 한 명을 빼고는 다 이십 대 초반이었다. 그들은 나의 나이를 들으면 놀라고 나는 그들이 어려서 놀라고. '같은 이십 대인데 뭘' 하다가도 내가 스무 살 때 몇 학년 위의 스물두 살, 스물세 살 선배들을 어렵게 생각했던 걸 보면 스무 살에게 여덟 살의 나이차이란 엄청난 것이겠구나 이해하게 되었다.

그 친구들을 보면서 더 어릴 때 유학을 갔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봤는데 나에게는 스물여덟이 적기였다는 확신이 들었다.


2

물론 스물여덟이 누릴 수 없는 혜택을 스물은 누릴 수 있다. 교통권도 훨씬 싸고 기차표도 더 싸고. 나한테는 해당사항이 없어서 굳이 정보를 찾아보지 않아 잘 모르지만, 26살까지 누릴 수 있는 혜택이 꽤 있다.

더불어 그들의 어린 나이가 가끔은 부럽기도 하다. 이십 대 후반이 이런 말을 하면 더 나이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우습기도 하겠지만, 그들에게는 나보다 더 많은 도전과 실패의 시간이 있는 느낌이다.

80년을 산다고 쳤을 때, 이십 대 후반이나 서른은 아직 너무도 어린 나이이다. 산 날보다 살 날이 더 많은 나이지만, 정작 이십 대 후반의 위치에 서면 그런 것은 보이지 않고 스물이라는 무한 자유의 나이를 지나 서른이라는 어디 한 곳에 정착해 뿌리를 내렸어야 할 나이가 목전인 느낌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뿌리를 내렸나? 어디 한 곳에 터를 잡기라도 했나? 그렇게 자문하고 내 모습을 보면 뿌리 없이 이리저리 나풀거리는 모습뿐이다. 그래서 늘어가는 나이가, 그런데도 좀처럼 성숙해지지 않는 내 정신머리와 존재감 없는 사회경제적 위치가 야속한 것이다. 어린 나이가 부럽고 더 어려지고 싶은 까닭이다.

또 마음에 드는 남자애가 있었는데 걔 나이가 너무 어려서 '아, 내가 좀만 어렸으면 한번 들이대보는 건데'하고 아쉬워했을 때도 있었다. 사소한 부분이지만.


3

그럼에도 나에게는 스물여덟이 적기인 이유는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는 그 나이가 스물일 수도 더 어린 열여덟 일 수도 있다. 나에게는 스물여덟이고.

일단 경제적으로 독립이 되어 있었다. 일하며 모아둔 돈으로 유학을 떠날 수 있는, 즉 엄마에게 손 벌리지 않아도 되는 때였다. 그러니 이곳에서 몸을 갈아가며 공부해서 최단 시간에 목표한 바를 마쳐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할 필요가 없다. '인생, 다 흘러가는 대로 사는 거지' 하면서 유유자적 신선처럼 사는 스스로를 견딜 수가 있는 것이다.

둘째로 정신적으로도 스스로 견뎌낼 수 있는 나이이다. 아마 내가 스무 살 때 혼자 이곳에 왔다면 금방 울면서 비행기 타고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런 걸 보면 어린 유학생들은 정말 대단하다. 그때 나의 멘탈은 참으로 연하디 연했기에 금세 내상을 입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어디 그 멘탈이 몇 년 새에 환골탈태했을까. 그대로는 그대로인데 굳은살이 조금 베긴 정도, 그래서 좀 딱딱해진 정도다. 예전에는 누가 뭐라고 하면 상처를 받았는데, 요즘에는 누가 뭐라고 하면 '저 새끼가' 하면서 욕을 한다.

그리고 경험이 어느 정도 있다는 것, 그래서 어느 정도 나를 파악했다는 것도 이점이다. 이를테면 몇 차례의 메뚜기 같은 이직을 통해서 나에게는 어떤 근무 환경이 맞고 어떤 일이 맞는지 안다는 것 또한 유용하다. 알바를 할 때나 진로에 대해 고민할 때나 이런 정보들을 고려할 수 있다는 것. 알바할 때 상사들이 어떤 유형인지 어렵지 않게 읽히는 것도 지난 사회생활 경험 덕분이다.


4

만일 누군가 이십 대 후반에 유학을 망설인다면 가보는 것도 좋다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는 나이 들었다, 금방 서른인데 어쩌려고 그러냐 말하지만 누가 뭐라고 하든 젊은 건 사실이다. 그러니 나이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진부한 말이지만 '오늘이 너의 가장 젊은 날이다'라고들 하니까.

해외에 나가보면 모든 근간이 흔들리는 느낌이다. 마트에서 물건 사는 것도 긴장되고 간단한 말도 못 알아듣고. 버스에서 내릴 때 카드를 찍는 건지 그냥 내리는 건지 모르겠고.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어른이 되어서 이런 기본적인 것에 당황하는 자신을 버티는 것이 어렵기도 하다. 그런데 그만큼 성취감도 사사로운 일에서 얻는다. '오늘은 마트 직원이 하는 말 알아먹었다', '이제는 버스 타는 거 익숙하다' 이러면서. 한국에서라면 자괴감이나 성취감이나 느끼지 못할 일인데 말이지. 그런 성취감이 모여서 스스로에 대한 신뢰감이 는다. '그래, 나 할 수 있지. 지금까지도 잘했지' 하는 마음.

또 내 구역이 확장되는 느낌이다. 예전에는 '내가 살 곳은 한국, 내가 일할 곳도 한국'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근무 환경이 안 좋고 한국의 직장 문화가 별로라고 하여도 그중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을 찾을 생각밖에는 없었다. 그런데 해외에 나와보니 언어만 된다면 어디서든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언어를 수준급으로 익히는 것은 아주 많이 몹시 매우 어렵지만. 어쨌든 내 활동 무대가 한국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고 그렇다면 가는 궤적이 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 자의식 과잉 유학생으로 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