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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손톱 Sep 18. 2024

자의식 과잉 유학생으로 살기

07. 프랑스에서도 갈팡질팡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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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의식 과잉이다. 내가 대중교통에 타면 모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고, 더군다나 나를 쳐다보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칠 때면 그런 생각이 더 강화된다.

이곳 프랑스에서 그 증상이 더욱 심해졌다. 한국에서야 다 같은 한국사람이고 생긴 게 다르다고는 해도 인종적으로 크게 독특할 것도 다를 것도 없으니 덜했다면, 여기 와서 상대적으로 특이한 외모가 되어버리니 정말 자의식 과잉 인간이 되어버렸다.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는 외국인이 많은 도시이다. 동양인도 꽤 있지만 그렇게 많은 편은 또 아니고, 더군다나 우리 학년에서 나말고는 아시아인이 없다. 그 말인 즉, 동아시아는 물론이오, 서아시아 사람도 없다는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로 특이해 보였을지 모르고 그래서 더더욱 내가 특이하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친구에게 우리 학년에서 내가 유일한 아시아인이라고 말하니 친구왈, '그럼 동물원 원숭이가 된 것 같겠네'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다. 그냥 강의실에 들어와서 쳐다보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내가 아시아 사람이라서 쳐다보는군', '내가 신기하게 생겨서 쳐다보는군' 이렇게 자주 생각했다. 정말 자주. 물론 이들에게 내가 눈에 띄는 존재인 것은 맞을지도 모른다. 나는 얘네를 모르는데 얘네는 나를 알고 인사를 해오는 것을 보면. 뭐 이들에게야 초반에는 좀 그랬을지 모르고 교수님에게도 초반에 좀 눈에 띄는 학생이었을지 모르지만 그 이후에는 그냥 같은 과애1에 불과했을 텐데 나는 한 해 내내 어마어마하게 비대한 자의식 과잉 상태로 다니다가 2학년이 된 지금은 더 커진 자의식 과잉 상태로 다니고 있다.


2

지금은 그리하여 한계에 다다랐다. 이제 새 학기가 시작한 지 2주 차가 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나는 엄청난 문제에 직면했다. 수업시간에 너무 긴장이 된다. 내가 수업을 진행하는 것도 아니고 발표를 하는 것도 아닌데 그저 수업을 듣는 것만으로 너무 긴장이 된다. 그나마 맨 뒷자리에 앉으면 긴장이 덜한데, 그걸 보면 아마도 과친구들을 몹시도 신경 쓰는 듯하다. 이 친구들은 나 따위 이제 안중에도 없고 그저 나는 동기1에 불과하다고, 심지어 내 이름도 모르고 궁금하지도 않은 애들이 수두룩 하다고 되뇌어 보지만 긴장은 가라앉지 않는다. 옆에 잘 모르는 애가 앉으면 침을 꿀떡꿀떡 삼키고 물을 마시는 것도 주저하게 된다. 그냥 가만히 있게 된다. 이렇게 쓰고 보니 미친놈 같은데 정말로 미쳤다. 뭐 여기까지는 어차피 티도 잘 안 나니까 그렇다 치지만 문제는 옆에 애가 이쪽으로 고개를 휙 돌리는 것이 보일 때면 목이 마치 경련이 일어난 듯이 덜덜 떨리고 눈이 놀란 사람처럼 커진다는 것이다. 나는 이번 학기에 처음으로 이 증상을 발견했는데 정말 왜 그런지 모르겠다.

우리가 어떤 물체를 볼 때, 이를테면 수업 시간에 교수님을 바라볼 때 교수님만 보이는 게 아니다. 사람은 옆눈(곁눈)이라는 게 있으니 그 주변에 있는 것들도 보이는 것이다. 문제는 나의 경우 그 주변에 있는 것들이 갑자기 이쪽을 보는 게 느껴지면 고개가 사시나무 떨듯 떨리면서 눈이 커진다는 것인데 나도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르겠다. 그저 극도의 긴장감 때문이라는 것 말고는. 새로운 증상이라 흥미로우면서도 괴롭다. '쟤 왜 저래?' 할까 봐서. 부족함을 들키는 게 두렵다. 아무튼 이 증상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 이번학기의 목표이고,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문제라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러려면 하기 싫은 것들을 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3

이 병의 완치를 위해서 내가 할 것은 '망신당하기'다. 자의식 과잉은 왜 나타나는가? 내가 마치 대단한 뭐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해서가 아닌가? 내가 특별하고 대단하고 멋지고 개쩔고 쿨하고 간지 나고 그렇다고 생각해서 나를 더욱 의식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 이제는 노골적으로 나의 부족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누구한테? 나한테. 나는 졸라 부족한 인간이고 그래서 이렇게 낯 부끄러운 일도 일어나지만 사실 이런다고 내가 죽는 것도 아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이런 나는 남들의 안중에도 없다고. 내가 엄청 부끄럽게 생각했던 일이 사실 별로 창피한 일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럼 무슨 망신을 당해야 하지? 뭐 간단하고 일차원적으로 복도에서 넘어지기 같은 것이 있고 나의 경우는 아직도 프랑스어를 잘 못하기 때문에 부족한 프랑스어를 큰소리로 구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오줌을 지리고 똥을 바지에 싸는 것만 아니라면 다 괜찮다. 그러니까 평소 창피하게 생각했던 것을 해보는 것이다. 당연히도 이것을 하는 것에는 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세상에 망신당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담? 그러니까 자연히도 그런 행동을 하려고 할 때 브레이크가 걸릴 텐데 그럼에도 악셀을 밟아 버릇해야 한다.

그런고로 이미 하나 했다고도 볼 수 있다. 경련이 일어나 덜덜 떨리는 목을 누군가가 목격한 것은 나에게 상당히 쪽팔린 일이니까 하나 했다. 야호. 젠장.


4

나는 신경 쓰이는 사람들 앞에서는 말과 행동을 줄이는 버릇이 있다. 신경 쓰이는 사람이라는 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모두를 포함한다. 왜 그런고 들여다보면 평가당하고 싶지 않아서이고 더 깊이 들여다보면 '안 좋은' 평가를 받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럼 왜 안 좋은 평가를 받아서는 안 되는가? 왜 모든 사람은 나에게 좋은 평가를 해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가? 지가 잘난 줄 알기 때문이다. 쥐뿔 잘난 것도 없으면서. 그러니까 뭔 말을 할래도 이거 문법이 틀린 거 아냐? 발음이 이상한 거 아냐? 다른 외국인이랑 비교되게 프랑스어 못하는 거 아냐? 이 지랄을 떨면서 말을 못 하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못하니까 못한다고 생각하겠지. 근데 뭐 어쩌라는 거야. 프랑스어를 못하는 사람을 보고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슨 놀라울 일인가? 프랑스어를 못하는 것이 누구를 죽이고 돈을 훔치고 때리는 것처럼 악한 짓인가? 하물며 길바닥에 침 뱉는 것보다도 훨씬 낫다.

결국 좋은 평가를 받고 싶은 마음에 '잘해야지' 생각하고 그러다 보니 긴장하게 되는 것이고 남을 너무 신경 쓰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살면 인생이 괴롭다. 발표할 때 손 덜덜 떨고 이래도 발표만 잘하면 상관없는데 덜덜 떨리는 손을 들키지 않으려다가 더 긴장해서 발표를 말아먹는 꼴인 게지.


나 같은 증상이 심하다면 법륜스님의 이 동영상이 도움이 될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r-_gGBbmYIQ


왜 다른 사람이 나를 좋아해야 하고 내 말에 잘 반응을 해줘야 할까?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는 것이고 그건 내가 상관할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몫이라고 한다. 사람의 반응을 너무 신경 쓰는 것은 제 잘난 것을 남에게 검증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생기는 거라고.


마음만 바꾸면 되는 문제인데 마음을 바꾸는 게 참 어렵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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