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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imidtraveler Jul 02. 2019

[낯선세상 02]
낯선 곳에서 내 집을 찾다

어디서든 잠시 머무는 곳도 내 집이 된다.

매일 아침을 눈을 뜨고 눈을 감는 익숙한 내 집을 떠나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나는 그 낯선 여행지에서 잠시 머무르는 곳도 집이라고 부른다. 

계속 머물 곳은 아니지만 

잠시 동안이지만

나의 집이 되어 줄 곳.


여행지에서 하루, 이틀 동안 잠깐 머물더라도 난 항상 호텔, 숙소 이렇게 부르지 않고 집이라고 부른다. 뭔가를 의식해서 이렇게 부른 게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그 말을 쓰게 되었다. 내가 머무르는 모든 곳을 집이라고 생각해야 맘이 편했나 보다.


100년도 더 된 집. 프라하 시내 어느 곳 - 2008.08.16

건물로 들어서는 문, 건물 앞 거리 그리고 건물에 누가 사는지…

특히 유럽에서는 유럽의 오래된 건물들에 경탄했던 기억. 내가 지낸 숙소 건물도 100년이 넘은 건물.


첫 번째 유럽 여행 - 체코 프라하

친구와 나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집을 예약했고, 프라하에 있는 초기에 계속 그곳에서 머물렀다.

지금 기억으로...

민박집은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았고, 젊은 부부와 아이들이 거실 한편에서 살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들은 체코 프라하에서 민박집을 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나 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민박집 이름 그대로 - "밥 퍼주는 아줌마" - 매일 아침 조식으로 진수성찬이 나왔던 기억이 있다. 집에서도 먹지 못한 삼겹살을 아침부터 먹게 해 주시고, 매일 아침마다 든든히 먹고 나가야 하루 종일 구경하고 다닐 수 있다면서 끝없이 챙겨주신 기억이 난다.

처음에 메뉴를 보고는 

"아침부터 삼겹살? 제육볶음? 난 안 들어갈 거 같은데? 내가 강호동도 아니고?" 했지만

난 아침마다 한 그릇씩 뚝딱뚝딱 먹었던 것 같다.


혹시 그 민박집이 아직도 있나 싶어서 - 벌써 10년도 넘은 기억이니 - 인터넷을 찾아보니... 놀랍게도 있었다. 

다행스럽게 더 확장된 모습이었다. 그 당시에도 열심이시던 젊은 부부는 조금 나이가 들었을 것이고 그 노력이 현재까지 여행자들에게 좋은 공간과 식사를 제공하는 공간으로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드니 기분이 좋았다. 


http://www.prahabab.com/


오스트리아 할슈타트에서 머물렀던 할머니집 - 2008.08.21


수많은 사진 속에서 만난 곳. 할슈타트.

함께 간 친구도 그 사진 한 장 때문에 이곳에 가고 싶다고 했고, 나도 사진을 보고 오호~~ 하면서 동의했다. 


우리는 미리 숙소를 예약하지 않았고,

현지에 도착한 후, 관광안내소를 통해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소를 소개받았다.

할머니 집.

할머니 나이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데... 그 당시에도 아마 70세는 족히 넘으셨을 것 같다. 

(벌써 10년도 지난 일이니 할머니는 어떻게 살고 계실까?)

겉으로 보기에 아기자기하고 너무나 친환경적으로 보이는 집.

따뜻한 할머니의 미소.

하지만 그 집에서의 하룻밤은 정말 힘들었다. 누우면 땅으로 꺼질 듯 한 침대와 누워만 있으면 극적 극적.... (물론 난 오랫동안 아토피를 앓아와서 특히나 이런 것에 민감하기도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베드 버그가 아니었나 싶다.

할머니의 체력으로는 - 의도와는 달리 - 집을 깨끗하게, 침구마저도 깨끗하게 관리하는 것은 힘들었을 것이다. 

침대에서 극적인 기억을 제외하면 현지 할머니의 따뜻한 미소와 간소한 아침, 그리고 말은 통하지 않아도 끝없이 챙겨주시려고 했던 일들이 기억에 남는다.

너무나 아름다운 마을... 하지만 밤새 긁적였던 시간들...


오랜 여행으로 지쳐 있을 때 나를 편히 쉬게 해 준 터키 안탈리아 집 앞  - 2011.11.09


2011년 뜻하지 않은 퇴사로 난 10월 11월 2개월간 유럽을 여행했다.

포르투갈, 스페인, 터키, 오스트리아, 헝가리...

거의 한 달 정도 포르투갈, 스페인, 터키 여행을 하면서 난 조금씩 지쳐갔다.

"아... 집에 가고 싶다. 내가 왜 여행을 시작했을까? " 하면서 난 한 발짝도 더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그 당시 장기 여행을 여러 번 해본 친구가 여행이 길어지면 어느 순간 그냥 며칠 정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내가 그 말을 따른 것인지... 아니면 내 몸의 신호를 따른 것인지... 지금도 정확히 모르겠지만... 난 터키 남부 따뜻한 안탈리아에서 며칠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냈다.

그 당시 손바닥 절반만 한 여행 문고판을 2권 가지고 갔는데,

매일 일어나서 밥을 먹고 숙소 테라스에 앉아서 햇빛을 받으면서 그 문고판을 계속 읽었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숙소 주인은 내가 사전으로 단어를 외우고 있다고 생각했단다. 책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았던 것이다.

매일 사진 속 풍경을 바라보면서 책을 읽다 커피를 마시다 밥을 먹다를 며칠 반복하니 오스트리아로 떠날 힘이 생겨났다. (당시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친구가 살고 있었고 난 그 친구 집으로 갔는데, 처음 공항에서 나를 본 친구는 "웬 거지가 오나 했다." 하면서 집으로 데려가 라면을 끓여 주었다. 지친 마음이 거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나 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안탈리아의 유명 장소를 가본 기억이 없다. 

안탈리아는 그저 나에게 휴식의 공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쉴 거면서 왜 샤프란 블루에서 10시간 씩이나 버스를 타고 안탈리아로 갔는지도 모르겠다. )

그 지역의 유명 장소는 한 곳도 가보지 못했지만 나의 기억 속에 안탈리아 해변의 숙소는 마음이 쉬었던 따뜻한 집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네팔 여행. 카트만두 어딘가 큰 맘먹고 좋은 숙소에서 푹 쉬기.  - 2012.10.03


네팔.

카트만두의 지저분하고 혼잡한 거리. 사람들. 비둘기. 수많은 신들... 끝없이 울리는 자동차 경적 소리..

그렇게 며칠을 혼잡한 곳에서 보냈다.

그러다가 여행 막바지 정말로 조용히 쉬고 싶다는 생각에 큰 맘먹고 좋은 집에 머물렀다.

저렇게 조용해 보이는 공간의 문을 나서면 또 혼잡함을 바로 느낄 수 있는 곳.

아무리 가난한 나라를 가도 돈만 내면 좋은 호텔에서 머물면서 그 가난을 등질 수 있는 것이 세상이다.


 다시 찾은 도쿄와 근교 닛코 일본 전통 가옥에서 머물기 - 2014.09.04


첫 번째 일본 여행 이후 혼자 또는 친구와 일본 여행을 갈 일이 있으면 거의 일본 전통 숙소에 머문다. 료칸이거나 호텔이라 이름 붙었어도 일본 전통 다다미방과 목욕탕이 있는 곳.

방에 들어서면 차를 마실 수 있고,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 들어오면 곱게 이불을 펴 주는 곳.

떠날 때는 문 밖까지 나와서 길게 배웅을 해주는 주인이 머무는 곳.


스리랑카 네곰보에서 - 2015.02.12

새벽에 공항 도착.

약간의 두려운 마음을 품고 택시를 타고 찾아간 곳.

도착 때는 불빛 하나 없어서 어디로 끌려가 죽어도 모를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숙소에 도착하니 이른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주인님이 반갑게 맞아 주고 아침에 눈을 떠보니 옆집은 공사 중인 집이고 길은 좁은 비포장 도로.

하지만 커피, 차, 오믈렛, 빵 등 정성스러운 아침.

아침을 서빙하던 소년이 기억난다. 그 소년은 한국에서 온 나를 신기한 듯 대하면서 자꾸 뭔가를 물어보고 싶어 했다. 서로 말이 안 통하니.... ㅎㅎ 며칠 동안 머물고 나니 손짓 발짓만으로도 웃음을 나눴던 것 같다.


 오만 무스카트에서 - 2015.02.27


오만의 집들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튼튼하고, 실용적이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내가 머문 곳도 - 내부 사진은 없지만 - 3층 집으로 옥상에도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과 옥탑방까지 있었던 기억이 있다.

집안 내부는 여행을 좋아하는 주인들이 모아 놓은 세계 여러 나라의 물건들이 조화롭게 있었던 것 같다. 그냥 신기한 물건들도 있었지만 모두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이 더 많았다.

그래서 집에 사는 사람들도 여행객들도 세계의 다양한 물건들을 그곳에 가지 않으면 사용해 보지 못했을 물건들을 직접 사용하는 경험을 주었던 기억이다. 


 몽골 울란바토르와 내륙 지방에서 머문 게르 - 2015.09.25

몽골 초원의 게르...

앞으로 내가 어디 머물던 내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집중 하나일 것이 분명한 곳.

할아버지, 할머니, 손자(처음에는 여자인 줄 알았음)가 살면서 여행객을 맞이하는 곳.

모든 것이 부족하지만 또 풍족한 공간.

아무것도 없는 평원에 홀로 있는 집. 그리고 3명의 식구.

몽골 여행을 하면서 다른 게르에서도 머물렀지만 나의 기억에 가장 깊이 남아 있는 그곳에서의 나의 집 게르.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에서 머물렀던 곳  - 2017.10.07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

내 예상과 달리 너무 깨끗하고 정돈되어 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난 곳.

남매가 운영하는 집은 계속 머물고 싶을 정도로 간소하고 깔끔하고 따뜻했다.

타슈켄트에서 일이 생겨 하루 늦게 도착한 부하라 집. 

집주인은 하루 늦게 도착한 나를 보고는 왜 오지 못한다고 연락 안 했느냐고... 

"어차피 예약을 해서 취소도 안될 거 같았고, 그래서 그냥 손해 보기로 했다." 고 하니 

"아니, 그래도 연락했으면 손해 안 보게 해 드리죠." 하면서 결국 숙박비를 할인해 줬다. 


모든 원칙대로 하면 서로 불편함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나에게 사람의 정이 더 우선임을 느끼게 해 준 곳이다.



우리에게 집은 어떤 공간일까?

아마 개인마다 모두 다를 것이다.

하지만, 휴식의 공간이라는 생각은 공통적이지 않을까?

집 밖에서 치열했던 몸과 마음이 쉬면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곳.

그래서 난 여행지의 숙소를 "집"이라 부르게 된 것 같다.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공간에서 즐겁고 치열하게 보낸 하루를 마무리하고 내일을 위한 에너지를 충전하는 곳.


여행을 다니고 여러 집에 머물면서 

내가 살아갈 집에 대한 생각이 변하고, 공간에 대한 개념이 바뀌고, 단순함이 주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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