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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재 Feb 15. 2016

‘스위스 은행’과의 전쟁

비밀주의를 통한 해외 자본 유치

다른 나라의 세금 확보에 걸림돌

해외 은닉 금융자산에 대한 추적

국제적인 공조 여부에 따라 좌우 


신화(神話)는 가면이다. 본질을 교묘하게 감춘다. 환상을 부추긴다. 스위스 은행의 고객 비밀보호도 마찬가지다. 일부에서는 히틀러 집권후 유태인 고객 계좌를 보호한 데서 스위스 은행의 비밀엄수 관행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꾸며낸 얘기일뿐이다.   


‘금융 비밀주의’는 생존 전략 차원에서 도입됐다. 1929년 대공황이 닥치자 스위스 은행산업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스위스대형은행 8곳 중 3곳은 파산했다. 나머지 한 곳은 공적 자금 투입에 힘입어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나머지는 4곳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스위스 정부는 은행산업을 정비하기로 결정했다. 은행에 대한 규제 및 감독 강화를 추진했다. 은행권은 즉각 반발했다. 정부가 규제를 통해 은행계좌에 대한 접근을 확대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특히 계좌 정보를 세금 징수 목적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걱정이 많았다. 


은행권은 로비에 들어갔다. 정부와 은행권은 타협안을 만들었다. 정부의 감독을 받아들이되 계좌비밀 보호는 더욱 강화하기로 했다. 스위스 은행의 비밀주의가 마침내 틀을 갖췄다. 비밀주의가 마침내 스위스 은행의 핵심 역량으로 자리잡았다. 


스위스 은행법에 따르면 은행 직원이 고객 비밀을 준수하지못했을 경우 2만 스위스 프랑의 벌금이나 6개월 이하의 징역형을감수해야 했다. 최악의 경우 벌금에 징역까지 살도록 만들었다.  


스위스에서는 금융 거래 비밀을 캐내려는 시도 자체를 범죄행위로 규정했다. 일단 자본이 스위스로 들어오면 ‘형법’에 의해 보호된다. ‘깨끗한 돈’은 물론 ‘검은 돈’도 보호했다. 


이런 비밀주의는 자본 유치에 기여했다. 하지만 자본이 빠져나간 나라에서는 반발하는 게 당연했다. 다른 유럽국가들은 스위스를 ‘눈의 가시’로 여겼다. 프랑스도 그랬다.


1932년 6월 프랑스에서는 에두아르 에리오(Edouard Herriot) 중도 좌파 정부가 출범했다. 에리오정부는 대대적인 재정적자 감축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했다. 에리오는 스위스를 이용한 탈세행위가 프랑스재정안정을 위협하는 주범이라고 생각했다. 


프랑스 정부는 마침내 스위스 은행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프랑스 경찰은 1932년 10월바젤 상업은행 파리 지점을 전격 압수 수색했다. 때마침 24만스위스 프랑을 맡기려는 국회의원도 적발했다. 경찰은 2000여명의 프랑스 고객 명단도 확보했다. 국회의원, 군(軍) 장성, 판사, 자동차업체푸조의 대주주 이름도 확인됐다. 


프랑스 정부는 바젤상업은행 이사 2명을 소환한 후 프랑스인 고객들의 계좌 정보를 요구했다. 이들은 요구를 거절했고, 2개월간 징역을 살았다. 프랑스 정부는 스위스 정부에 계좌정보 교환을 위한 계약 체결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 


스위스도 이제는 달라졌다. 미국 등 주요 국가들의 압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주요 국가들은 스위스를 비롯한 세금피난처에 대한 공세를 강화해 왔다. 세금피난처가 탈세 방지를 통한재정 확충에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08년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런 흐름은 대세로 자리잡았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금융비밀주의를 무너뜨리는데남다른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G7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통해 조세피난처의 금융비밀주의를무너뜨리는데 주력해왔다. 캐이맨 제도 등 조세피난처를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방식으로 압력을 행사했다. 스위스와 룩셈부르크는 미국은 물론 유럽연합(EU) 회원국들에도 금융계좌정보를 제공한다. 


정부가 해외은닉재산 및 소득 자진신고제를 도입했다. 자진 신고하면 가산세, 과태료, 형사처벌등을 면제해주거나 경감하기로 했다. 오는 2017년 9월 다자간 조세정보교환 협정이 발효되면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금융재산은 어느 정도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 전에 미리 신고하라는 권유다. 


정부의 기대가 실현될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정부가 탈세를 방지하려는 노력에 못지 않게 규제나 세금을 피하려는 수요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조세피난처는 이런 수요를 노린다. 스위스가 미국 등의 압력에 굴복하면 또 다른 스위스가 나올 수 있다. 두바이, 파나마 등은 금융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들은 금융비밀주의에의존할 가능성이 크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게임은 끝없이 이어질 것 같다.   


참고문헌

Palan, Ronen et al. 2010. Tax Havens : HowGlobalization Really Works. New York. Cornell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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