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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재 Feb 15. 2016

정의를 짓밟은 특권

귀족과 성직자의 면세 혜택 위해 

프랑스 농민들은 막대한 부담 져 

세금 부담의 형평성을 외면하면 

안정적인 사회 발전은 기대 못해  


1648년 8월 파리 시내에서 투석전(投石戰)이 벌어졌다. 숱한 돌이 날아다녔다. 시민들은 원망과 분노를 돌에 담았다. 역사학자들은 파리 시민들의 저항을 ‘프롱드(Fronde)의 반란’이라고 부른다. 


프롱드는 사람의 이름이 아니다. 투석기(投石器)를 가리킨다. 시민들이 왕실 병사들에게 돌을 던지기 위해 투석기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반란을 지휘한 주동자가 없었다는 얘기다. 상당수 파리 시민들이 동시에 반란에 참여했다. 그래서 최초의 시민혁명 시도로 평가되기도 한다. 


세금 문제가 원인이었다.프랑스는 새로운 세금을 시행하려면 반드시 고등법원 등기를 거쳐야 했다. 하지만 고등법원관리들은 이를 거부했다. 백성들이 세금 부담 증가에 거세게 반발한 데다 민족감정까지 작용했다. 


고등법원에서 등기를 거부하면 프랑스 왕은 정책을 수정하거나직접 법원으로 가서 등기 명령을 내리는 게 관행이었다. 그 당시 왕은 루이14세로 열 살에 불과했다. 어머니 안 도트리슈가 섭정으로 프랑스를통치했다. 


안 도트리슈는 스페인 펠리페3세의 딸이었다. 남편 루이13세와의 금슬은 그리 좋지 않았다. 프랑스는 ‘30년 전쟁’에서 스페인의 반대편에 섰다. 프랑스와 스페인은 유럽의 헤게모니를놓고 다퉜다. 


루이13세가세상을 떠나자 안 도트리슈는 프랑스를 손아귀에 넣었다. 정치적 감각은 떨어졌다. 실권을 쥐자마자 마자랭을 재상으로 등용했다. 마자랭은 이탈리아인이었다. 교황청 대사로 파리에 근무하다가 귀화했다. 


파리 시민들은 반감을 불태웠다. 외국인들이 프랑스 백성들에게 증세를 강요하는 모양새였다. 루이14세를 내세웠지만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프랑스인들은 왕은 꼭두각시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고등법원도 이런 정서를 고스란히 반영했다. 안 도트리슈와 마자랭은 루이14세를 앞세워 고등법원에 들어섰다. 이들은 법원에 들어서자마자 증세 등기를 명령했다. 


고등법원 관리들은 반발했다. 관리 한 명이 격정적 연설을 통해 백성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는“프랑스 농민들은 수십 년 동안 지푸라기 더미를 침대로 삼아 잠자리에 들고 있다. 수백만 명의 프랑스 백성들이 겨와 귀리로 만든 빵에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 그것으로도모자라 자신들의 세간을 팔아야 한다. 세금 부담이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왕실의 사치를 위해 자신들을 희생하고 있다”고 외쳤다. 


안 도트리슈는 고등법원 관리들을 체포하라고 명령했다. 이 소식은 곧 파리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파리 시민들이 여기저기서 들고일어났다. 사태가 위급해지자 안 도트리슈는 증세 방침을 철회했다.  


프랑스는 유럽 곳곳에서 군사적 개입을 멈추지 않았다. 귀족에 대한 경제적 혜택도 적지 않았다. 늘 막대한 재원을 필요로했다. 그래서 다양한 세금을 동원했다. 병역면제세, 소금세, 입시세(入市稅), 소비세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성직자와 귀족은 이런 세금 부담을 지지 않았다. 병역면제세는 병역을 부담하지 않는 대신 세금을 내는 것이었지만 귀족들은 모두 빠져나가고 나중에는 백성들만 납부했다. 더욱이 교회는 십일조까지 꼬박꼬박 챙겼다.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찔렀다. 


루이16세가 즉위했을 때는 프랑스 세금제도는 혁명을 통해서만 개혁이 가능할 정도였다. 더욱이 신분 상승 수단도 봉쇄됐다. 계층 상승을 꿈꾸는 평민들은 군(軍) 장교를 희망했다. 루이16세는 4대이상 귀족 신분을 유지하지 못하면 장교가 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분노와 원망이 희망을 대체했다. 이런 분노가 프랑스 대혁명을 일으켰다. 


정부가 종교인 과세 방침을 밝혔지만 무산 가능성이 높은것으로 평가된다. 일단 국회에서 신중론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이미 근로소득자 가운데 면세자의 비율이 50%에 육박한다. 두 명 중 한 명은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얘기다. 아예 낼 돈이 없다면 몰라도 모든 국민이 조금이라도 세금을부담하는 게 맞다. 


여당은 내년에도 확대 재정을 추진할 움직임이다. 이미 재정적자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데도 남의 일로 여긴다. 생색만내면 그만이라는 자세다. 그러면서도 세원 확대 노력은 외면한다. 세금부담의 형평성도 심각하게 왜곡될 수 밖에 없다. 


볼테르는 400년전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나기 앞서 이렇게 일갈했다. “세금 문제에 관한 한 그 어떤 특권이라도 정의에 어긋난다.”


참고문헌

1)   Adams,Charles. 2001. For Good and Evil : The Impact of Taxes on the Course ofCivilization. Maryland. Madison Books. 

2)   막스 갈로 지음. 박상준 옮김. 2013. 프랑스대혁명.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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