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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재 Feb 15. 2016

피렌체의 방역 대책

철저한 격리 통해 페스트에 대응

재산권 침해 주장도 용납치 않아 

신속하고 효과적인 방역을 위해

다소 자유를 제한해도 수용해야   


토르토렐리는 억울했다. 페스트로 매제를 잃었다. 매제와 여동생 사이에는 아이도 없었다. 갑자기 여동생이 결혼할 때 지참금 명목으로 가져간 귀금속이 생각났다. 매제의 친척들이 빼돌릴 게 뻔했다. 그래서 몰래 귀금속을 갖고 나왔다. 


토르토렐리는 감옥에 갇혔다. 죄목은 절도가 아니었다. 피렌체 당국의 전염병 통제 정책을 어겼기 때문이다. 제빵업자 토르토렐리는 1631년 방역 대책 위반을 이유로 투옥됐다. 페스트 환자가 발생한 집에서 물건을 빼냈기 때문이다.


토르토렐리는 “정당한 재산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강변했다. 피렌치시 정부는 단호했다. 피렌체 시민을 위한 방역이 개인의 재산권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 상당수 시민들이 페스트로 사망한 친척의 재산 상속을 시도하다가 감옥에 갇히거나 고문을 당했다. 


1347년 여름 흑해 카파(현재페오도시아)에 기항한 제노바 상선에 쥐와 벼룩이 숨어들었다. 상선이 제노바로 도착하자마자 페스트가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 전역을 휩쓸었다. 페스트는 그 후에도 수시로 유럽전역을 공포로 떨게 했다. 


피렌체도 마찬가지였다. 페스트는 1348년부터 1427년까지 8차례에 걸쳐 피렌체를 덮쳤다. 피렌체 인구는 한 때 10만 명을 웃돌았지만 3만 명 밑으로 줄어들었다. 


피렌체 지도층은 대책을 고민했다. 하지만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감(感)에 의존한 방역대책을 되풀이했다. 로베르트 코흐(Robert Koch)를 비롯한 미생물학자들이 500여 년 후 병원균을 발견할 때까지 이런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신(神)에게 도움을 청했다. 열심히 기도했다. 일부 시민이 신(神)을 모독하는 바람에 공동체 전체가 끔찍한 전염병에 시달린다고 믿었다. 전염병은 신(神)이 분노를 드러내는 불화살로 간주됐다. 그래서 창녀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도시 밖으로 쫓아냈다. 


이런 방법은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피렌체 지도층은 감(感)을 수정했다. 경험과 관찰을 통해 감(感)을 과학화했다. 신의 분노가 아니라 독기(毒氣)를 원인으로 꼽았다. 방역의 초점을 ‘격리’에 맞췄다.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지는 못했지만 보다 효과적인 대책을 수립한 셈이다. 


먼저 공중 위생을 강화했다. 푸줏간 앞에서 버려진 채 썩어가는 고기찌꺼기를 수거한 후 도시 밖에서 처리하도록 의무화했다. 폐수나 분뇨도 시내에 방치하는 것을 금지했다. 


격리 대책도 차근차근 실천했다. 페스트가 발병하면 사람들이 한꺼번에 모이지 않도록 했다. 중세 이탈리아에서는 닭싸움이나 소싸움이 큰 인기를 끌었다. 질병 확산을 막기 위해 이런 볼거리는 금지됐다. 심지어 술집을 폐쇄하기도했다. 


피렌체를 비롯한 이탈리아 주요 도시는 엄격한 격리 조치를 실천했다. 우선 페스트 발병 지역에서 청정 지역으로의 이동을 차단했다. 아울러 사망자는 특정 장소에 매장하도록 의무화했다. 사망자의 개인 소지품은 소각했다. 유품 상속을 방역법 위반으로 제재한것도 이 때문이다. 


페스트 증세를 보이면 즉시 밀집 거주 지역 밖의 임시 가옥에 격리했다. 격리된 환자를 대상으로 시 정부 차원에서 식량을 공급했다.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에서는 전염병 환자가 생기면그 집은 무조건 불태웠다. 


격리 조치는 큰 성과를 거뒀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에서는 17세기 중반부터 페스트가 잦아들었다.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내부격리는 물론 육상 및 해상 통제를 강화한 결과였다. 


메르스가 집단 공황을 일으키고 있다. 일단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는 피하고 본다. 웬만큼 아파서는 병원도 찾지 않는다. 정상적인 사회 생활을 위협할 정도다. 


격리를 통해 초기 대응에 실패한 결과다. 방역 대책이 500년 전 중세 이탈리아 수준에도 못 미친다. 주로 정부와 병원의 안일한 대응을 탓한다. 


이게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자유의 제약을 두려워한다. 동시에 자유를 확대 해석한다. 상당수가 자유를 ‘언제 어디서나 원하면 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한다. 명백히 공동체를 위협하는 것으로 드러나지 않는 한 자유의 제약은 악(惡)으로 간주한다. 정부도 과감히 행동에 나서지 못한다. 


그래서 방역 당국의 ‘자가 격리’ 요구는 의무로 여기지 않는다. 우리는 방종에도 ‘자유’라는 가면을 씌우는데 익숙해져 있다. 시민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격리를 통한 방역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참고문헌 

1)    아노 카렌 지음. 권복규 옮김. 2001. 전염병의 문화사. 사이언스북스

2)    셸던 와츠 지음. 태경섭 한창호 옮김. 2009. 전염병과 역사. 모티브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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