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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재 Feb 15. 2016

한국이 우스운 우간다

금융 경쟁력 나란히 세계 80위권

발전 촉진하려면 혁신 유인 필요 

상업 금융과 정책 금융 분리해야

정합성을 높여 지속적 혁신 낳아 


은행의 시작은 초라했다.‘산업’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민망할 정도였다. 노점상이나 다름없었다. ‘은행(bank)’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벤치(bancos)’다. 한 두명이 벤치에 앉아서 환전 업무를 보는 수준이었다. 


교회는 은행의 성장을 가로막았다. 고리대금업은 물론 은행의 본질은 ‘돈놀이’라는 이유에서다. 교회는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을 죄악으로간주했다.


레위기 25장은“하나님을 경외하여 이자를 챙기기 위해 돈을 꿔주지 말고, 나중에더 많은 식량을 받을 목적으로 식량을 빌려주지도 말라”고 가르친다. 에제키엘서 18장은 “이자 수수 행위는 ‘우상숭배’나 다름없는 죄악”이라고 강조한다.


교회는 “원금이상을 돌려받는 것은 무조건 고리대금업(Quidquid sorti accredit, usura est)”이라고선언했다.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줬다가 적발되면 무조건 파문했다. 영성체를비롯해 모든 종교 의식 참여를 금지했다. 


위험이 크면 보상도 크다. 일부 지역에서는 한 해에 60%의 이자를 받기도 했다. 살인적 금리는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고금리대부업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자금조달 비용만을 반영한 소액 대출 사업을 벌일 정도였다. 


고금리 대부업자의 대체 세력이 등장했다. 바로 이탈리아 상인들이었다. 이들은 십자군 전쟁을 전후로 큰 돈을벌었다. 주로 지중해 교역을 통해서였다. 


교역 증가에 비례해 금융 수요도 늘어났다. 처음에는 금화나 은화를 직접 주고 받았다. 하지만 직접 돈을 갖고다니는 것은 위험할 뿐 아니라 불편했다. 부대 비용도 많이 들었다. 프랑스북부 루앙(Rouen)에서 남부 아비뇽(Avignon)까지현금을 수송하려면 약 3주일이 걸렸다. 현금 수송을 위해무장 호송대까지 붙여야 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다.이탈리아 상인들은 환어음을 활용했다. 이미 템플 기사단이 환어음을 통해 성지 순례자들에게금융편의를 제공했기 때문에 거부감도 별로 없었다. 환어음을 이용하면 루앙과 아비뇽 상인 간의 거래를 결제하는데 8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환어음을 발행하면서 특정시점에 특정 장소에서 원금에다 일정 금액의 이자를 얹어 지급한다는 내용을 명기했다. 


이 과정에서 상인들은 ‘환전수수료’ 명목으로 이자를 챙겼다. 교회의 ‘이자 금지’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환전수수료는 보통 8~12%에 달했다. 대량의 금화 또는 은화를수송하느라 무장 호송대를 운영하는 경비와 비교하면 훨씬 더 저렴했다. 교회도 무역의 필요성을 인정했기에 환전 수수료는 문제삼지 않았다. 


금융의 발전은 교역을 촉진했다. 다양한 통화로 환어음을 발행했다. 베네치아는 ‘두카트’, 피렌체는 ‘플로린’, 밀라노는 ‘테스토네’를환어음 발행 통화로 이용했다. 컨트리 리스크(country risk)때문에 특정 통화를 기피하면 다른 통화로 바꿨다. 


금융업의 성장은 새로운 부자를 낳는 동시에 경제 혁신을가져왔다. 피렌체의 페루치(Peruzzi)나 바르디(Bardi) 가문은 대표적인 은행업자로 떠올랐다. 이들은 메디치 가문이등장하기 전까지 피렌체 경제를 쥐락펴락했다. 


환어음의 활용은 신용창출 효과를 낳았다. 금화나 은화 등 현물 화폐를 주고 받지 않아도 상거래가 이뤄지도록 뒷받침했다.이는 금화 또는 은화 부족에 따른 상거래 위축 가능성을 차단했다. 


발전을 유도하려면 혁신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지난해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전세계 144개국 가운데 26위로 평가했다.하지만 ‘금융시장의 성숙도’는 80위로 평가됐다. 우간다와 비슷한 수준이다. 은행의 건전성(122위), 대출의용이성(120위)은 거의 꼴찌 수준이다. 


정부는 최근 안심전환대출을 시행하면서 은행을 활용했다. 은행이 과거 가계대출을 통해 많은 수익을 올린 만큼 일정한 부담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은행을 직접 동원하기 보다는 간접적인 기금 조성 등을 활용하는 게 바람직했다. 정책금융을 위해 은행에 역마진을 강요하면서 우리은행을 제값에 팔겠다고 나서는 것은 난센스다. 물 먹인 소를 비싼 값에 팔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증세 없는복지’ 주장만큼이나 공허하다. 


WEF가 한국과 우간다를 같은 반열에 올려놓았다고 불만을 터뜨릴 이유가 없다. 우간다 입장에서는 우리가 우습게 보일 수도 있다. 정책의 정합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정합성은 정책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이다. 


참고문헌 

1)   Weatherford,Jack. 1997. The History of Money. New York. Three Rivers Press. 

2)   Howard Means. 2001. Money &Power. New York : John Wiley & S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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